[사설] '방만 재정' 견제장치 없는 지방분권 확대는 곤란하다
정부가 지방자치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지방자치법을 고치겠다고 밝혔다. 주민참여 확대, 지자체 권한과 지방의회 기능 강화 등 주목할 만한 내용이 적지 않다. 이에 맞춰 ‘재정분권 추진 방안’도 함께 발표됐다. 모두 ‘중앙권한의 지방 이양 및 재정분권 추진’이라는 문재인 정부의 공약에 따른 것이다.
중앙 정부의 재원을 지방으로 더 많이 넘기자는 ‘재정분권론’은 이 정부 들어 처음 나온 게 아니다. 하지만 국가의 예산운용 문제와 직결되는 데다 세법 체계도 조정해야 하는 등의 어려움이 있었다. 이번에 정부가 지방소비세율을 단계적으로 10%포인트 올리는 정도만 내놓은 것도 그런 사정이 감안된 것으로 보인다. 이것만으로도 내년부터 2년간 늘어나는 지방세는 8조4000억원이라고 한다.
관건은 지방의 재정운용 능력이다. 효율성과 투명성이 무시된 채 방만하게 재정이 운용된 사례가 지자체별로 적지 않다. 이런 폐단이 계속되면 재정분권은 벽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지방에서는 늘 과감한 재정이양을 외치지만 내실을 다지며 국민적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먼저다. 감사원과 행정안전부를 비롯한 중앙의 감시체계도 있고 지방의회도 있지만, 갈수록 커져가는 지자체 살림을 감시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더구나 올해 선거로 많은 시·도, 시·군·구에서 단체장과 의회를 더불어민주당이 동반 석권한 터라 지방의회의 감시와 견제 기능에도 구조적으로 한계가 있다고 봐야 한다.
그렇다고 언제까지나 중앙 정부의 감사나 행정감독을 강화할 수도 없다. 어떤 형식이든 정부의 개입과 간섭은 자치를 위축시키기 마련이다. 결국 단체장을 중심으로 한 각급 지자체 스스로의 비상한 자각과 각오, 방만 운용 예방시스템 구축이 중요하다. 근래 서울시와 경기도, 성남시 등에서 두드러진 포퓰리즘 정책들은 그래서 더 걱정스럽다.
근본적으로 지자체들이 지방소비세나 지방소득세를 올리거나 교부금을 늘리는 것만이 재정분권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는 것이 중요하다. 기업을 적극 유치하고 인구를 늘리면 재정은 절로 탄탄해진다. 재정 자립도를 높이기 위해 단체장과 지방의회가 머리를 맞대고 ‘지역 경쟁’에 나서야 하는 이유다. 재정분권의 성공 여부는 지자체 하기에 달렸다. <한국경제신문 11월1일자>
사설 읽기 포인트
기업들 유치하고 인구 늘리면
지자체 재정 저절로 탄탄해져
예산 효율·투명성도 강화해야
많은 나라에서 오랫동안 많은 논의를 해온 것 중 하나가 중앙(국가)과 지역(지방자치단체 혹은 지방 정부)의 역할과 권한 나누기다. 정답은 없지만, 대체로 지방의 자치와 권한을 확대하는 것이 발전된 형태의 민주주의라는 인식이 주를 이뤄왔다. 대부분 국가에서 이런 방향으로 행정제도를 변화시켜 왔고, 국가의 권한과 역할을 이양해왔다. ‘풀뿌리 민주주의’라는 말도 ‘생활 주변의 일상사는 내가, 지역 현안은 주민인 우리가 해결한다’는 가치 혹은 정신에서 나왔다.
지방분권이 민주주의를 더 고취시키고 완성도를 높인다는 측면에서 각광을 받아왔지만, 이 문제에서도 이상과 현실은 반드시 조화를 이루는 게 아니다. 지방의 자치단체가 그럴 여건과 역량을 갖추었는가 하는 것이 논의의 출발점이면서 현실적 애로다. 한국의 시·도, 시·군·구, 세종시와 제주도 같은 특별자치 지자체도 경쟁적으로 더 많은 분권을 요구해왔다. 가장 절실한 것이 재정분권일 것이다. 재정분권 없는 자치 확대, 지방분권은 허구에 그칠 공산이 크다.
지방분권 확대는 재정분권과 함께 가야 한다. 재정분권은 지자체의 재정 자립도를 높이자는 것이다. 재정적으로 홀로서지 못하면 자유도, 독립도 불가능한 것은 지자체만의 일도 아니다.
재정분권에서 몇 가지 유의해서 볼 일이 있다. 한국의 경우 세법이 복잡하게 짜여 있는데, 기본적으로 지방세의 부족한 부분을 국세에서 많이 메워주는 구조다. 중앙 정부는 징수한 국세를 인구를 기본으로 행정성과 등을 감안해 지자체별로 배분해주면서 세원(稅源)도 점차적으로 이양해가는 과정이다. 이를 단계적으로 확대한다는 것이 정부 방침이다.
이런 맥락에서 정부가 재정분권의 로드맵을 제시했다. 무리 없이 실현되자면 지자체들은 예산 운용 과정에서 효율성, 투명성, 책임성을 강화해 나가야 한다. 그래야 더 많은 재원이 중앙에서 지방으로 순조롭게 넘어갈 수 있다. 중앙의 감시와 감독, 견제에 의한 투명성 제고가 아니라 지방 스스로 이를 해내는 게 중요하다. 하지만 많은 지자체가 예산을 낭비하거나 불요불급한데 쓰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게 현실이다. 선거라도 있을 때면 포퓰리즘 공약은 극성을 부린다.
정부를 향해 돈 더 달라고 떼쓰는 방식이 아니라 스스로 필요한 재원을 적극 마련해 나가겠다는 인식 전환도 중요하다. 경제활동이 왕성하고, 인구가 꾸준히 유입되고, 기업 투자가 늘어나는 지역은 지방세 수입도 늘어나게 마련이다. 지자체 재정이 개선되면 생산적인데 더 많은 투자를 할 수 있을 것이고, 이는 민간의 투자 확대로 이어지며 선순환 구조가 형성된다. 지역이 자발적으로 파이키우기에 나서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게 재정자립도를 높여갈 때 내실 있는 지방분권이 가능해진다. 서울로 경제력이 집중되고 수도권으로 인구가 계속 몰리는 문제의 해법도 될 수 있다.
huhws@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