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로슈·노바티스의 바이오 혁신
로슈, 맞춤형 치료제로 승부
빅데이터·AI 접목해 환자 맞춤형 의약품 시장 공략
노바티스, 첨단 세포 치료제 개발 박차
백신·복제약 손 떼고 인수합병으로 新성장엔진 장착
[ 전예진 기자 ]
12일 스위스 바젤에 있는 로슈 본사. 엘리베이터를 타고 38층에 내리자 바젤 시내 전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360도 파노라마 뷰’가 펼쳐졌다. 사방이 전면 유리로 된 스카이 라운지에서는 제약회사와 바이오벤처 관계자의 미팅도 눈에 띄었다. 아넷 쿠너트 로슈그룹 미디어 담당은 “라인강 너머 보이는 건물이 노바티스”라며 “로슈의 지분을 보유한 노바티스와는 경쟁자이자 동반자 관계”라고 말했다.
2015년 입주한 로슈 빌딩은 바젤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다. 노바티스가 프랑크 게리 등 유명 건축가를 섭외해 파격적인 건물을 짓자 로슈는 노바티스 본사의 두 배에 달하는 41층짜리 신사옥을 지었다. 두 회사의 자존심 싸움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바젤의 기업유치담당기관인 바젤스위스에어리어의 크리스토프 클뢰퍼 최고경영자(CEO)는 “두 회사가 경쟁하며 세계 제약바이오산업의 혁신을 이끌고 있다”고 말했다.
바이오 넘어 맞춤의료시장 개척
두 제약사의 공통점은 안정적인 수익을 내는 합성화학 의약품에 안주하지 않고 신성장동력인 바이오에 투자했다는 것이다. 로슈는 바이오시밀러(바이오의약품 복제약)의 공세가 예견된 상황에서도 본사 앞에 블록버스터 항암제 ‘아바스틴’ 생산 공장을 증설하고 있다.
글로벌 바이오의약품 매출 1위인 로슈는 바이오시밀러의 등장으로 가장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측됐다. 올 하반기 허셉틴 바이오시밀러들이 유럽에 출시되면서 실적 하락도 현실화되고 있다. 그럼에도 진단과 맞춤 치료제 등 정밀의료분야에 공격적인 투자를 하고 있다. 환자의 생물학적 특성에 최적화된 치료방법을 제시하는 제약사가 의료시장을 선점할 것이란 판단에서다.
이를 위해 정보기술(IT)과 빅데이터, 인공지능(AI) 분야와 접목을 시도하고 있다. 지난해 항암제 전문기업 이그니타에 이어 올초 빅데이터 분석기업인 플랫아이언헬스와 유전체 분석기업 파운데이션메디슨을 인수했다. 혁신 기업 인수를 통해 맞춤의료시장에서 독보적인 경쟁력을 갖추게 됐다는 평가다. 니코 안드레 로슈 글로벌 의학부 총괄은 “우리의 비전은 진단 기술과 신약 개발 역량을 바탕으로 암환자의 치료 패러다임을 바꾸는 것”이라며 “바이오시밀러의 영향력은 커지겠지만 우리가 주도할 환자 맞춤형 헬스케어가 성장을 견인하는 원동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통 제약사업 접고 혁신 치료제 공략
합성의약품 강자였던 노바티스는 세포 치료제 분야를 개척해 혁신 치료제 개발사로 발돋움했다. 지난해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 세계 최초의 CAR-T(키메라 항원 수용체 T세포) 치료제 ‘킴리아’를 승인받으면서부터다. 그 배경에는 안정적인 수익을 내는 전통 제약사업을 과감히 정리하고 미래에 ‘선택과 집중’하는 전략이 있었다. 노바티스는 2015년 동물의약품사업부를 일라이릴리에, 백신사업부를 GSK에 매각했고 컨슈머헬스케어사업과 복제약사업에서도 손을 뗐다. 최근 안과전문기업 알콘을 분리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대신 공격적인 인수합병을 통해 바이오 영역을 확장했다. 올초 방사성의약품 회사인 프랑스 어드밴스드액셀러레이터애플리케이션과 지난달 18일 전립샘암 신약을 개발하는 미국 엔도사이트를 인수했다. 올 4월에는 유전자 치료제 기업 아벡시스를 87억달러(약 9조원)에 인수하는 계획도 내놨다. 자회사 산도즈를 통해 바이오시밀러 개발에도 적극적이다. 산도즈는 인도 제약사 바이오콘과 공동으로 차세대 바이오시밀러를 개발할 예정이다.
박정태 한국바이오의약품협회 전무는 “글로벌 제약사들은 유망 바이오 기술에 전략적 투자를 지속하며 앞서나가고 있다”며 “앞으로 세포 및 유전자 치료제 등 혁신 치료제 분야에서 누가 주도권을 쥐느냐에 따라 글로벌 제약업계의 판도가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
바젤=전예진 기자 ac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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