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영국 런던에서 열린 국제회의에 참석했을 때다. 한 중년 여성의 이름표에 ‘Dora Cameron’이라고 적혀 있었다. 순간 필자는 당황했다. 이분을 ‘미스’로 불러야 하나, ‘미시즈’로 불러야 하나? 당시엔 ‘미즈’라는 호칭이 보편적으로 사용되지 않았다.
남성에게는 결혼 여부에 관계없이 미스터(Mr.)라는 호칭을 사용한다. 여성은 결혼 여부에 따라 미스(Miss)와 미시즈(Mrs)를 구분하고 전자 뒤에는 아버지의 성을, 후자 뒤에는 남편의 성을 붙인다. 여권 운동가들은 이를 성차별적 관행이라고 비판하면서 대안적 호칭으로 미즈(Ms)를 사용하자고 주장한다.
미즈라는 용어가 처음 등장한 것은 1901년 미국의 한 지역신문에서였다. 당시 미즈라는 호칭은 성평등을 위해서 사용된 것은 아니었다. 여성의 결혼 여부가 불분명한 상황에서 초래되는 사회적 실수를 피하기 위해 포괄적인 호칭으로 제안된 것이다. 하지만 이 용어는 상당 기간 거의 사용되지 않았고 일부 학자의 책에서만 언급되는 정도였다.
결혼 여부나 선호를 모를 땐 '미즈'
이 용어가 널리 쓰이게 된 계기는 1969년 마이클스라는 여성 운동가가 뉴욕의 한 라디오 방송에서 언급하면서부터다. 이 방송을 들은 여성운동의 대모 글로리아 스타이넘이 여성운동 잡지 창간호 제호를 ‘미즈’로 정하면서 이 단어는 광범위하게 퍼져나갔다. 1986년 뉴욕타임스는 미스, 미시즈와 함께 미즈를 사용한다고 발표했다.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테니스 대회인 윔블던은 1877년 제1회 대회 이후 여자 선수의 득점판에 ‘미스’와 ‘미시즈’를 사용해왔으나 2009년부터는 호칭 없이 이름만 쓰고 있다. 독일에서는 1972년 이후 미스에 해당하는 ‘프로이라인(Frulein)’을 공문서에서 삭제하고 모든 여성의 호칭으로 미시즈에 해당하는 ‘프라우(Frau)’를 사용하고 있다. 2012년 프랑스도 동일한 조치를 취해 미스에 해당하는 ‘마드무아젤(Mademoiselle)’을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다. 대신 결혼 여부가 불분명한 모든 여성에게 미시즈에 해당하는 ‘마담(Madame)’을 사용한다.
그러나 모든 여성이 미즈라는 호칭으로 불리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상당수 여성은 미즈보다는 미시즈로 불리기를 원한다. 미시즈라는 호칭이 존경과 권위를 상징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여성 호칭을 사용할 때 유의할 필요가 여기에 있다. 우선, 미혼의 젊은 여성을 부를 때는 미스라는 호칭을 사용할 수 있다. 그러나 상당수 미혼 여성은 미즈라는 호칭을 선호한다. 그러므로 상대방 여성의 결혼 여부나 선호하는 호칭을 알 수 없을 때는 미즈를 사용하는 것이 안전하다. 어린 소녀에게는 미즈를 사용하지 않는다.
둘째, 미국에서는 ‘미스트리스(Mistress)’라는 호칭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 원래 미스트리스는 결혼 여부에 관계없이 모든 여성을 지칭하는 호칭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미국에서는 첩이나 정부(情婦)를 뜻한다.
존 애덤스 2대 미국 대통령 때 일이다. 정적들이 그를 음해할 목적으로 근거 없는 소문을 퍼뜨렸다. 그가 4명의 정부(2명은 대통령 몫, 나머지 2명은 찰스 핑크니 장군 몫)를 구하기 위해 핑크니 장군을 영국에 파견했다는 것. 이 소문을 들은 애덤스 대통령은 다음과 같이 일갈해 소문을 잠재웠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핑크니 장군이 나를 속였소. 내게서 2명의 정부를 가로채갔소.” 당시만 해도 미스트리스라는 단어가 사회적으로 광범위하게 쓰였음을 알 수 있다. 오늘날 미국에서는 이 단어가 거의 쓰이지 않는다. 남성의 경우에는 ‘러버(lover)’가 주로 쓰인다. D H 로렌스의 소설 《채털리 부인의 사랑》에서 연인인 사냥터 관리인은 ‘lover’로 표현됐다. mistress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남성 정부를 뜻하는 단어로 ‘mister-ess’가 제안되기도 했으나 큰 호응을 받지는 못했다.
영국에선 'Mx'를 쓰자는 제안도
셋째, 상당수 여성은 이혼 후에도 미시즈를 사용한다. 또 대부분의 여성은 남편 사망 후에도 미시즈로 불리길 원한다. 영국과 영국식 영어를 사용하는 나라에서는 마침표 없는 미스터(Mr)와 미시즈(Mrs)가 쓰인다.
최근 영국에서는 미스터, 미스, 미시즈라는 호칭을 없애고 대신 믹스(Mx)를 사용하자는 제안이 나왔다. 트랜스젠더, 양성애자, 중성애자 등 성적 소수자(LGBT)를 배려하자는 취지에서다. 일부 은행, 정부기관과 우체국 등으로 확산되고 있는 이 호칭이 보편적으로 사용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남녀 구분을 없앤 이 호칭이 사용된다면 아래와 같은 실수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한 사람이 잡지 구독을 위해 잡지사에 전화를 걸었다. 이름을 묻는 질문에 “Cameron”이라고 대답하자 추가 질문이 이어졌다. “미스인가요, 미시즈인가요?” 그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미스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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