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얼마나 유쾌하고 밝은 사람인데요."
영화 '여곡성'에서 살벌한 카리스마를 뽐내던 신씨 부인은 없었다. 기자와 마주한 배우 서영희는 크고 동그란 눈으로 반달 미소를 지으면서 쾌활한 매력을 드러냈다. '여곡성'은 죽음이 반복되는 사대부 집에 저주를 막기 위해 한 여인이 들어가면서 벌어지는 일을 담은 작품. 서영희가 연기하는 신씨 부인은 집안을 이끄는 최고 어른이자 저주가 밖으로 세어나가지 않도록 입단속을 하는 캐릭터다. 2016년 7월 득녀 이후 영화 '탐정:리턴즈', SBS '시크릿 마더'까지 활발하게 활동 중인 서영희는 '여곡성'에서 물오른 연기력으로 극을 이끌었다.
올해 20년차 배우인 서영희는 공포 장르인 코미디와 멜로, 스릴러 등 다양한 장르에서 활약했다. 하지만 영화 '추격자'와 2010년 여우주연상을 ?쓴 영화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의 인상이 강했고, 이번 작품도 공포물이다. 때문에 "어두워보인다"는 평을 듣기도 했다. 의도하지 않게 이미지가 굳어진 것에 대해 속상할 법도 하지만 서영희는 호탕하게 웃으며 "앞으로 많이 소통하면 된다"며 "소통하고 싶다"고 거듭 강조했다.
▲ 매 번 쉽지 않은 캐릭터를 연기했는데, 이번에도 어려운 촬영을 마쳤다.
이제는 제가 순탄치 않은 길을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하다.(웃음) 고민해볼 수 있는 걸 즐긴다고 해야하나. 조금 어려운 걸, 고민한 걸 알아줬을 때 뭔가 해낸 거 같고, 뿌듯하다. 도전을 하는 것 같다.
▲ '여곡성'을 선택한 이유도 힘든 걸 극복하고 싶어서였나.
클래식한 느낌이 좋았다. 원작의 부담감도 없었다. 원작이 있었는지 몰랐다가 이번에 알게됐다. 못 본 사람이 더 많아서 아예 새로운 영화라고 새롭게 편하게 다가갔던 것 같다. 다만 보신 분들은 기대하는 부분이 있어서 실망시키지 않기위해서 고민했다. 가장 기대할 거 같은 지렁이 국수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원작에선 모든 게 실제였다. 지렁이 국수의 지렁이, 백태를 낀 눈도. 그걸 이길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최대한 비슷하게, 사실적으로 소품을 준비하고 연기에 임했던 것 같다.
▲ 지렁이 국수를 준비하고, 먹는 걸 옆에서 지켜보는 설정이다. 연기를 하는데 혐오스럽진 않았나.
지렁이 국수의 지렁이는 모양을 본 뜬 젤리였다. 실제 지렁이는 아니었지만 모형 젤리 자체가 맛있진 않아서 힘들었을 것 같다. 제가 직접 먹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이 들면서도, 연기를 하면서 '걱정스러운 눈만 보이지 말자' 이런 생각을 했다. 바로 앞에서 지켜봐야 하니 마음이 불편하긴 했다.
▲ 얘기를 듣다보니, CG가 거의 없었던 거 같다. 어디까지 실제였나.
피토하는 것까지?(웃음) 입이 찢어지는 장면만 CG였다. 얼굴을 뜯는 것도, 닭 피를 먹는 것도 모두 실제로 했다. 동물 피를 흡입하는 장면을 찍을 땐 너무 추웠다. 소품용 피가 호수를 타고 나와야하는데 호수관이 얼었다. 교체하고 촬영해도 바로 얼 정도였다. 손에 묻은 피가 엄청 차갑더라. 동상에 걸리면 이런 느낌이겠구나 그걸 느꼈다.
▲ 사극도 오랜만 아니었나. 2009년 MBC '선덕여왕' 여왕 이후 처음으로 한복을 입은 것 같다.
오랜만이라서 사극 말투를 많이 걱정했는데, 편하게 하려고 노력했다. 말투는 감독님이 톤만 잡아주시고, 저희한테 맡겨준 부분이었다. TV에서 본 사극 말투처럼 안하려고했다. 일상처럼 캐릭터에 맞게했다. 대사 자체의 어휘나 말투가 사극 대사다보니 그렇게 해도 자연스럽게 사극 톤이 됐던 거 같다.
▲ 영화 막판엔 액션까지 선보였다.
실제로 거의 다 제가 했다. 특히 우물에서 (손)나은 씨랑 찍은 액션 장면은 저희가 다 소화한 거라 뿌듯하다. 액션 대역을 하러 오셨던 언니가 그냥 퇴근했다.(웃음) 물 속에서 뒹구는 장면을 보다 효과적으로 보이는 동작을 익히기 위해 액션스쿨도 갔다. 넘어질 때 엉덩이가 먼저 닿으면 예쁘지 않아서 그걸 바로 잡는게 어려웠다. 나은 씨 얼굴에 입으로 진흙물을 내뿜는 장면도 제 입에 호수를 연결해서 다 뿜었다. NG를 내지 않지 위해 더 열심히 입을 벌리고 뿜었던 것 같다.
▲ 촬영을 하면서 여러모로 고생도 많았지만, 특히 어떤 부분에 가장 신경을 썼나. 관객들이 특히 잘 봐줬으면 하는 장면이 있을까.
어떤 작품이든 처음 등장하는 부분이 가장 걱정된다. 캐릭터도 영화에 녹아들기까지 시간이 필요하지 않나. 그런데 이번엔 처음부터 기대감을 주고 시작해서 제 얼굴이 딱 하고 나오는 거라 긴장이 됐다. 걱정도 크고. '위엄과 열정 넘치는 모습을 어떻게 표현할까'가 영화를 찍는 내내 최고의 고민이었다. 예쁘게 봐주셨으면 하는 욕심이 든다.
▲ 영화는 욕망에 대해 말하는데, 서영희 개인의 욕망은 무얼까?
인정받고, 박수받고 싶은 욕망이 항상 있다. 좋은 작품을 많이 만나고 싶은 욕심. 연기를 잘하고 싶고. 끝이 없다. 칭찬을 들어도, 배신하면 안되니까 또 욕망이 생기는 거 같다. '믿고 본다' 이런 말씀을 해주시면 '인생 잘살았다' 싶으면서도 '어떻게 더 잘살까' 걱정이 되기도 한다.
▲ 손나은과 호흡은 어땠나.
나이가 15살 차이다. 그리고 시어머니 역이라 제가 힘든 건 없었다. 손나은 씨는 너무 열심히 하더라. 촬영하는 장면들이 생각보다 붙어있지 않고, 자리도 멀찌감치 떨어져 있어서 막바지까지 가까이 하기 힘들었다. 우물 싸움 장면이 마지막 촬영이었는데, 몸싸움을 하면서 부딪히고 하니까 그제서야 '같이한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같이 한거 같은데 아쉽다'고 그랬다. 다음에 꼭 다시 만났으면 좋겠다. 이번엔 제가 부리기만 했다.
▲ 이렇게 밝은데, 어둡고, 힘든 이미지가 있다.
항상 밝게 사는데 기억해주시는게 어둡다 보니까 걱정도 많이 해주신다. 마트에서 '세상에, 웃기도 하네'하고 가는 분도 있었다. '행복하세요' 하기도 하고. 감사한데, 현실에선 살짝 당황스럽더라.(웃음) 전 유쾌하게, 밝고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다. 보여지는 이미지에 대해선 걱정이 안됐는데, 이젠 욕심이 난다. 이번에 SBS '런닝맨'도 출연하고, 15세 관람가는 '탐정' 이후 오랜만이다. 젊은 친구들과 소통할 수 있을거 같아서 기분좋다. 많이 소통하면 (이미지도) 달라지지 않을까.
▲ 출산 이후 '열일' 중이다.
나름 저는 좋았다. '열일'까진 아니지만 일을 할 수 있어서 힐링이 된다.(웃음) 작년 크리스마스도 촬영장 숙소에서 영화 '라라랜드' 보며 지내는데 행복했다. 무대 인사도 행복하다. 대구, 부산을 간다. 이제 많이 다닐 예정이다. 엄마가 되니 이렇게 합법적으로 밖에 나갈 수 있는게 감사하더라.(웃음)
▲ 소통을 위해 영화, 드라마 외에 예능을 해볼 생각은 없나.
꺼리진 않는데, 제가 말을 정말 재미없게 한다. 보는 건 좋아한다. 요리하는 프로그램, 골목 그 프로그램도 즐겨본다. 요즘은 생활 속에서 벌어지는 예능이 많으니까. 재밌을 것 같다. 백(종원) 선생님 프로그램을 하면 한 번 배워보고 싶다.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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