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썸 손잡은 美 시리즈원, 내년 초 국내서 STO 사업 시작
1년 넘게 '규제 사각지대' 방치에 유권해석 사례 늘어난다
한·중 합작 가상화폐(암호화폐) 거래소 지닉스가 끝내 폐업을 선언했다. 지난달 ‘세계 최초 펀드형 거래소 토큰’을 표방한 ‘ZXG 크립토펀드 1호’ 출시 후 채 한 달이 안 지난 시점이다. 오는 23일 운영 종료한다.
지닉스가 선보인 펀드형 토큰은, 해당 암호화폐 펀드를 토대로 발행한 토큰이 현금 기능을 갖는 새로운 형태의 상품이었다. 성적표도 좋았다. 1호는 1000이더리움(14일 기준 약 2억4000만원)을 금세 모았다. 경쟁률 12대 1 수준, 출시 2분여 만에 완판됐다. 모집 규모를 크게 늘린 2호 공모도 계획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금융당국 눈에 펀드형 토큰은 응용상품이 아닌 ‘불량상품’으로 비쳤다. 후발주자로 가상계좌 발급조차 못 받던 지닉스로선 펀드형 토큰 승부수 좌절은 치명타였다. 결국 거래소 문을 닫게 됐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자본시장법 위반 소지를 들어 제동을 걸었다. ZXG 크립토펀드는 일반 펀드(집합투자업)와 유사한 구조다. 그럼에도 금감원 펀드 등록, 투자설명서 심사 절차와 운용사·수탁사·판매사의 금융위 인가도 거치지 않았다고 했다. 금융위와 금감원이 “투자자들의 각별한 유의가 필요하다”면서 검찰 수사를 의뢰한 이유다.
저간의 사정을 세심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금융당국이 “~하지 않았다”고 판단한 절차들이 실은 “~하지 못했다”고 볼 여지도 있어서다. ZXG 크립토펀드는 자본시장법 분류상 특정 유형의 증권 성격과 딱 들어맞지 않는다. 실제로 지닉스는 펀드 출시 전 법무법인에 문의한 끝에 불법 소지가 적다고 판단했다. 현행법에 명시되지 않은 탓이다.
이처럼 암호화폐의 법적 실체를 규정하지 못한 현행법상 금융당국이 세부 조사에 나서기도 어렵다. 따라서 검찰에게 위법성 여부를 가려달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결과적으로 작년 암호화폐 공개(ICO) 전면금지 이후 1년 넘게 정부가 방치한 규제 사각지대를 또 한 번 드러냈다.
암호화폐 사업모델이 문제시될 때마다 적절한 판단기준이 전무한 문제적 상황이 입증되는 형국. 이같은 아이러니(역설)는 갈수록 더 많이 발생할 공산이 크다. 암호화폐 시장이 확대되면서 다양한 파생상품이 출시되기 때문이다.
당장 업계에서 각광받는 증권형 토큰(시큐리티 토큰)도 문제가 될 수 있다. 국내 거래소 빗썸과 손잡고 내년 초부터 한국에서 증권형 토큰 발행(STO) 사업을 시작하는 미국 핀테크(금융기술) 기업 ‘시리즈원’이 여기에 해당한다.
최근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한 마이클 밀덴버거 시리즈원 최고경영자(CEO)는 STO를 새로운 성장 시장으로 봤다. 기존 ICO로 발행한 토큰은 해당 업체의 생태계 내에서만 쓰인다. 업체가 백서상 계획을 실현하지 못하면 토큰의 실물가치도 사라진다. 반면 STO 발행 토큰은 주식 성격을 지녀 차별화된다. 의결권이 있고 배당도 받을 수 있다.
시리즈원은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의 증권거래 인가를 받고 미국 내 STO 거래소 설립을 추진 중이다. 증권형 토큰이니 증권법 규제를 적용받으면 된다. 규제 자체는 엄격해도 명확히 규제가 정립된 덕분에 가능한 사업모델이다.
다만 시리즈원의 STO 사업모델이 국내 시장에서 통할지는 지켜봐야 한다. STO 역시 ICO의 일종으로 분류될 수 있다. 때문에 현행 ICO 전면금지 상황에선 자금조달 수단으로 인정받기 어려울 수 있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 평가다.
김화준 한국블록체인협회 부회장은 “현존하는 위험성에 대한 ‘엄격하고 구체적인 규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두루뭉술한 ICO 허용·불허 방침 이상의 수준을 요구했다. 예컨대 “신원확인(KYC)·자금세탁방지(AML) 규정을 갖춘 거래소에는 신규계좌 발급 허용” 등의 세부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는 얘기다.
김봉구 한경닷컴 기자 kbk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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