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라 생활경제부 기자) 문제. 당신 앞에 수확한 지 1년된 쌀과 7년된 쌀이 있다. 어떤 것을 고르겠는가. 100명 중 100명의 한국인은 1년된 쌀을 고를 것이다. 묵은 쌀은 수분이 없고, 퀴퀴한 냄새가 나며 색깔도 누렇게 변해있을 것이기 때문에.
‘햅쌀중심’의 쌀 소비 문화에 돌을 던진 이탈리아 농부가 있다. 북부 피에몬테 지역에서 쌀 농사를 짓는 피에로 론돌리노다. 4대째 쌀농사를 짓고 있는 론돌리노가는 7년간 숙성한 쌀 ‘아퀘렐로(Acquerello)’로 프리미엄 쌀 시장을 평정했다. 세계에서 가장 비싸게 팔리는 쌀을 팔고 있다. 피에로 론돌리노의 둘째 아들이자 아퀘렐로 쌀의 상품 마케팅을 담당하고 있는 움베르토 론돌리노를 지난 10일 서울 여의도 KBS에서 만났다. 그는 “전통 방식 위에 첨단 기술을 활용해 발상의 전환을 할 수 있었다”면서 “숙성을 거친 쌀은 전분이 안정화되고 식감과 맛이 더 뛰어나 세계의 미식가들에게 환영받고 있다”고 말했다.
이탈리아는 유럽에서 가장 많은 쌀을 생산하는 국가다. 파스타와 함께 이탈리아 대표 음식인 리소토는 이탈리아 북부 피에몬테주와 롬바르디아주에서 탄생했다. 이 지역은 알프스 산자락 아래에 있어 좋은 물이 풍부했고, 약 4000년 전부터 쌀을 생산해왔다. 론돌리노가도 피에몬테 지역에서 수백 년간 논을 일구어왔다.
세계화, 산업화는 이탈리아 쌀 농부에게도 위기였다. 대량생산된 저가 쌀들이 수입됐다. 론돌리노는 ‘쌀의 왕’으로 불리는 까르나롤리 품종을 비싼 값에 팔 수 있는 방법을 연구했다. 론돌리노는 “현미의 껍질에 가장 귀한 배아, 좋은 영양소가 풍부하게 들어있고 백미는 이를 정제하는 과정에서 사라진다”면서 “19세기 방식으로 살살 벗겨낸 왕겨에서 배아를 추출해 다시 백미에 섞어 흡수되도록 골고루 섞는다”고 말했다.
아퀘렐로는 총 20 단계의 정제 및 숙성 과정을 거친다. 도정 전에 일단 숙성을 한다. 35℃의 특수 제작된 사일로 안에서 1년이 지나면 쌀 속에 있는 녹말 성분이 95% 정도 안정화된다. 7년이 지나면 99%가 안정된다. 이렇게 숙성된 쌀을 도정하고, 도정 직후에 진공포장을 해 상품으로 만든다. 작은 캔 안에 든 1㎏(7년 숙성)의 쌀은 약 20유로(약 2만5000원). 1년6개월 숙성한 쌀 1㎏도 10유로(약 1만3000원)에 달한다. 현재 국내 시세와 비교하면 10배가 넘는 가격이다.
그는 “리소토에 최적화된 쌀을 만든 것”이라면서 “요리 중에 전분이 덜 나와 조리시간은 짧아지고 쌀이 물을 잘 흡수해 맛이 잘 든다”고 설명했다. 전 세계 흩어져 있는 이탈리안 셰프들은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아퀘렐로 쌀을 찾는다. 리소토는 쌀을 씻지 않고 버터에 볶는 과정을 거치는데 아퀘렐로 쌀 자체에 고소한 풍미가 있어 별도의 부재료를 많이 넣지 않아도 된다는 게 셰프들의 공통적인 이야기다. 론돌리노는 “쌀은 이탈리아 북부에서 삶 그 자체고, 쌀도 사람처럼 다양한 종류가 있게 마련”이라면서 “전통의 바탕 위에 연구개발(R&D) 기술력이 더해지면 고부가가치를 낼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농산물”이라고 말했다. (끝) /destinyb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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