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프레디 머큐리 살리기

입력 2018-11-15 18:56  

송재훈 < 차바이오그룹 회장·내과 전문의 jhsong@chamc.co.kr >


주말에 영국 록그룹 퀸의 리드보컬이었던 프레디 머큐리의 뜨거운 음악 인생을 다룬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를 봤다. 1970~1980년대 수많은 명곡의 향연 속에 두 시간 동안 의대생 시절의 추억을 잠시나마 되살렸다. 주인공이 45세의 젊은 나이에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으로 요절하는 것을 보면서 ‘지금이라면 다르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현대판 흑사병으로 전 세계에 공포를 안겨줬던 AIDS는 항바이러스 신약 개발로 이제는 통제할 수 있는 만성 질병이 됐다.

미국 39대 대통령 지미 카터는 피부암의 일종인 악성 흑색종이 뇌로 전이되면서 사실상 치료를 포기했으나 새로 개발된 면역항암제인 키트루다를 복용한 이후 거짓말처럼 뇌종양이 깨끗이 치료됐다. 올해 노벨의학상은 면역체계를 이용한 암치료법을 발견한 두 과학자에게 돌아갔다. 이 면역항암제를 투여한 일부 암 환자에게 그야말로 극적인 치료 효과가 나타나면서 항암 면역치료의 시대를 활짝 열었다.

우리 몸속 면역세포인 T세포를 조작해 항암효과를 극대화시킨 ‘CAR-T’ 세포치료제도 혈액암과 임파암에 획기적인 치료 효과를 보이고 있다.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1940년에 개발된 페니실린과 뒤이은 수많은 항생제는 감염증 환자 수억 명의 생명을 구하는 ‘기적의 탄환’이었다.

이런 고전적인 약물 외에도 새로운 개념의 신약이 계속 개발되고 있다. 흔히 유전자 가위라고 부르는 ‘크리스퍼/카스9’를 이용해 잘못된 유전체 부위를 잘라내고 정상 유전자로 치환하는 유전자 치료는 그동안 불치로만 알려졌던 유전병 치료의 새로운 역사를 만들고 있다. 미국의 브라이언 매도는 헌터증후군이라는 유전병으로 생사의 고비를 수없이 넘나들다가 작년 11월에 의학 역사상 최초로 유전자 편집 치료를 받았다. 현재까지 모두 6명의 환자가 이 치료를 받았는데 만약 기대한 효과가 나오면 이는 전 세계 수많은 환자들에게 생명의 복음이 될 것이다.

이렇듯 신약 개발은 한 인간의 생명뿐 아니라 인류의 역사를 바꾸는 중요한 전기를 만들 수 있다. 신약 개발이야말로 바이오헬스케어산업의 꽃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의약학, 생명과학, 나노과학, 공학, 인공지능 등이 모두 융합되는 신약 개발은 우수한 과학자 유입, 효과적인 자금 지원과 창의적인 연구개발 환경, 유연한 규제와 전폭적인 정부 지원이 완전하게 결합할 때만 가능하다. 이 때문에 한 나라의 과학 수준을 대변하는 척도라고 할 수 있다. 우수한 과학자와 의학자들이 어느 나라보다도 풍부하다는 우리나라의 장점을 살려 신약 개발을 새로운 국가 성장동력으로 키워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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