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앞 계곡서 불처럼 타던 단풍이 지고 있다. 낙엽 돼 꽃비로 내린다. 형형색색의 분분한 낙화다. 이제서야 바쁘던 시골살이 일상을 내려놓고 데크에 앉아 그 모습들을 바라본다. 지난 일 년이 바람에 씻겨 날린다. 저물녘 산속 날씨가 제법 쌀쌀하다.
용인서 살던 고창일 강지수 씨 부부가 경기도 양평의 청운계곡으로 이사를 온 것은 작년 이맘때 쯤이다. 준비한 것이라고는 전원생활에 대한 로맨스뿐이었다. 무모한 도전이었다.
남편 고 씨는 용인대 출신의 태권도맨으로 운동밖에 몰랐다. 용인 동백서 태권도 도장을 열어 아내와 함께 운영했다. 25년의 연륜이 쌓이며 체육관은 자리를 잡았고 경제적으로도 넉넉해졌다. 나이 오십을 넘기면서 한 길만 보고 달려온 인생에 새로운 시도를 해보고 싶었다.
부부 둘 다 도시서 자랐지만, 태생은 시골이다. 나이가 들면서 시골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생겼다. 살아보고 싶어졌다.
인생 후반기를 맞았지만 두 부부의 모습은 나이를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젊다. 그렇게 살고 있다. 아무리 시골생활이 좋아도 하던 일을 접고 귀농을 하거나 귀촌을 하는 것은 원치 않았다. 유유자적 시간만 축내는 생활도 싫었다. 열심히 일하는 전원생활을 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처음 생각한 것이 수련원이었다. 도시서 운영하고 있는 체육관과 연계해 시골에 수련원을 차려야겠다는 생각으로 전국의 여러 곳을 돌아다녔다.
그러다 경북 봉화에 경치 좋은 땅을 만나 매입했다. 하지만 막상 수련원을 지으려니 너무 멀고 외졌다. 그곳까지 수련을 위해 오겠다는 사람들도 많지 않았고, 생활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겁도 났다. 손해를 보고 정리를 했다. 한 번의 실패를 통해 일하려면 도시에서 가까워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그러다 지금 양평 청운면의 집을 만났다. 전 주인이 지어 8년간 펜션으로 운영했던 집인데 방문 첫날 계약했다. 부동산 계약을 어떻게 해야 하고 펜션이 뭔지도 모르고 저질렀다. 주변 환경이 좋고 살고 있는 용인의 집에서 가까워 마음에 들었다. 거기에 바로 옆으로 집들이 있고 도로변이라 무섭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
양평의 가장 동쪽 강원도와 경계를 이루고 있는 마을이 청운면이다. 면 소재지에서 6번 국도인 경강로를 타로 강원도 횡성 쪽으로 가다 보면 좌측으로 349번 지방도를 만나는데 몰운고갯길이다. 넘어가면 양평 양동에 닿는데 구불구불한 길 따라 아름다운 계곡이 펼쳐진다. 청운계곡이다.
경강로에서 갈라져 몰운고갯길을 약 1㎞ 정도 가다보면 좌측 산 밑 계곡 앞쪽에 예쁘게 생긴 집들이 몇 채 있는데 펜션들이다. 그 중 한 집이 고창일 강지수씨가 사는 명문펜션이다.
예전에 전원생활을 계획하는 사람 중에는 펜션에 관심이 많았고 실제로 많이 시작했다. 하지만 요즘 새롭게 펜션에 뛰어드는 사람들을 찾기 힘들다. 펜션을 지으려면 투자도 많이 해야 하는데 너무 많아 경쟁이 치열하다. 힘든 만큼 수익은 별로다. 그러다 보니 펜션에 관심 두는 사람들은 많이 줄었다.
하지만 이들 부부에게 펜션은 새로운 세상이었다. 여행객들에게 방을 빌려준다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사람들을 만난다는 것만으로도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까지 체육관을 하며 학생들만 지도하며 살았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대화를 나누며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없었다. 많은 사람을 만난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정말 아무것도 모른 채 시작한 펜션이다.
거기에 전원생활을 하며 수익이 생기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것도 매력이었다. 이들 부부에게 펜션은 사이드 잡이다. 도시에서 하던 일을 그대로 두고 시작했기 때문에 수익에 대해 절박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열심히 할 수 있는 일이 있어야 전원생활이 심심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 정 힘들면 펜션을 쉬어도 생활에는 지장이 없었다. 거기에 언젠가는 수련원을 차릴 계획을 하고 있어 예행연습쯤으로도 생각했다.
그렇게 다양한 복선을 깔고 시작한 펜션인데 해보니 재미도 있고 수익도 짭짤하다. 특히 새로운 사람들을 만난다는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인지를 알았다. 손님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다른 세상을 본다. 친해져서 단골로 오는 사람들도 많다.
여름에는 무지 바빴다. 힘들다는 생각도 했지만 알고 찾아오는 손님들이 있어 일을 놓을 수도 없었다. 힘들게 여름을 지나고 나니 좀 한가해졌다. 요즘엔 단풍이 들고 지는 것을 보면서 즐기는 여유도 생겼다.
자녀가 둘인데 큰아들은 도시에서 생활하고 있고 중학생인 딸은 같이 생활한다. 시골생활을 하면서 가족의 소중함을 새삼 깨닫는다. 부부간 뿐 아니라 아이들과의 대화가 많아졌다. 펜션이 바쁠 때는 도시서 사는 아들도 도우러 내려오고 중학생인 딸도 심부름한다. 그러면서 가족애는 더욱 돈독해진다.
막연한 동경에서 시작한 시골생활이었고 또 할 일을 찾다 만난 펜션이었지만 이들 부부는 인생 후반기에 많은 새로운 것들을 경험하며 배우고 있다. 도시서 다져놓은 생활기반을 정리하지 않고 시작한 시골생활이고 또 펜션을 통해 수익을 얻을 수 있는 구조의 전원생활이라 경제적으로도 한층 여유롭다.
이런 생활도 나이가 좀 더 들면 힘에 부친다는 것을 안다. 그때까지 열심히 바삐 살고 싶은 것이 부부의 전원생활 가치다.
"전원생활이라 하여 꼭 유유자적할 이유는 없잖아요."
간혹 시골까지 와서 뭘 그리 바쁘게 사느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전원생활은 당연히 한가하고 유유자적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그 여유로움이 바쁜 것보다 더 힘들 때가 많다. 전원생활도 도시생활만큼 바쁘고, 바쁜 것도 질 높은 삶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이들 부부의 전원생활에서 배운다.
* 전원생활 문답
[문] 펜션은 아무나 할 수 있나요?
[답] 펜션은 제도권 내에 있는 용어가 아닙니다. 시골서 여행객들에게 방이나 집을 빌려주는 펜션은 민박사업입니다. 민박사업은 농어촌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자신이 살고 있는 집으로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집의 크기가 230㎡를 넘지 않아야 하고 시군청에 신고를 한 후 일정 시간 위생교육을 받아야 합니다.
[문] 도시에 아파트를 두고 시골에 집을 지어 펜션을 한다면 1가구 2주택이 되는데 나중에 팔면 양도세를 많이 내지 않나요?
[답] 도시에 집이 있고 시골에 집을 하나 더 마련했을 때는 1가구 2주택이 됩니다. 하지만 수도권이나 광역시군을 제외한 읍면지역에서 대지 660㎡ 미만, 취득 당시 가격이 기준시가로 2억원 미만인 주택을 2003년 8월 1일부터 2020년 12월 31일 이내에 매입했을 경우에는 양도세 비과세를 받습니다.
주택을 펜션으로 영업했을 경우에는 주거용이 아닌 사업용으로 보아 주택 수에서 제외한다는 국세청의 유권해석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도시에 아파트 1채를 보유해 양도세 비과세 대상인 사람이 시골에 또 하나의 집을 지어 펜션으로 운영하다 도시 아파트를 팔 때는 양도세 비과세 대상입니다. 단 운영하던 펜션을 매매한다면 주택이 아니기 때문에 양도세를 내야 하겠지요.
글=김경래 OK시골대표
정리=집코노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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