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일쌤의 서양철학 여행 (60·끝)] 존 롤스의 ‘정의론’

입력 2018-11-19 09:01  

각자에 몫을 주려면 그 몫을 판단하는 기준 필요
롤스는 자기 처지를 모른다는 '무지의 베일'을 제시




정의란 무엇인가? 서양 철학에서 정의에 대한 고전적 의미는 ‘각자에게 그의 몫을 주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몫’을 결정하는 일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각자에게 그의 몫을 주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각자의 몫’이 무엇인지 밝히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달리 표현하면 ‘각자의 몫을 판단하는 기준은 무엇이어야 하는가’라는 문제에 먼저 답해야 한다. 이 물음은 정의론의 핵심 질문이며 사실 오늘날 정의에 관한 다양한 이론들은 ‘각자의 몫’을 어떻게 정당화할 것인가에 대한 입장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다.

피자를 나누는 방법

롤스는 그만의 독창적인 발상을 통해 ‘각자의 몫’을 어떻게 분배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정의론을 제시하였다. ‘단일 주제의 철학자’라는 별명을 가질 만큼 평생 ‘정의’라는 한 주제만 연구한 롤스가 택한 방식은 어떤 실질적인 정의 기준을 제시하기보다는 정의로운 결과를 도출할 수 있는 절차를 모색한 것이었다. 말하자면 롤스의 절차적 정의는 어떤 정의로운 절차를 정해두고, 이에 따라 나오는 결과들은 모두 정의롭다고 보자는 것이다.

이제 두 사람이 피자를 나누는 예를 통해 롤스의 절차적 정의가 무엇인지 알아보자.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이 경우 절차적 정의는 한 사람은 자르고, 다른 한 사람이 먼저 고르는 방법이다. 그렇게 되면 이 절차에 따라 나온 결과는 정의롭다고 할 수 있다. 피자를 나누기 위해 절차를 거쳐 정의로운 분배 상태를 만든 것처럼, 롤스의 정의론도 정의로운 사회구조를 만들기 위해 거쳐야 할 절차를 찾자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나온 개념이 바로 그 유명한 ‘무지의 베일’이다.

‘무지의 베일’과 자리 배치

무지의 베일이란 롤스가 고안한 가상의 개념으로서 자신의 위치나 입장에 대해 전혀 모르는 상태를 말한다. 일반적인 상황은 모두 알고 있지만 자신의 출신 배경, 가족 관계, 사회적 위치, 재산 상태 등은 알지 못한다는 가정이다. 이는 사람들이 자신의 위치나 입장을 알고 있을 경우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선택하는 것을 막기 위한 장치다. 따라서 무지의 베일 속에서 사회의 기본구조를 결정한다면, 사람들은 공정한 분배 원칙에 합의할 것이라는 것이 롤스의 독창적 발상이다. 왜냐하면 무지의 베일 속에서 개인들은 자신이 최악의 상황에 처할 것을 가정하고 그쪽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합의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전략은 게임이론으로 말하면 ‘최소극대화의 원칙’이다. 롤스는 이로부터 자신의 정의 원칙을 도출한 것이다.

무지의 베일을 동원하면 사회적 갈등을 보다 손쉽게 해결하는 길을 찾을 수 있다. 한 수업 중에 일어난 일로 예를 들어보자. 수업 중 복도 쪽 맨 앞에 앉은 한 학생이 갑자기 손을 들더니 창쪽 맨 앞자리의 학생에게 커튼을 내려달라고 부탁했다. 창쪽 커튼이 올라가 있었기 때문에 햇빛에 반사되어 판서 내용이 잘 안 보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부탁을 들어주리라는 모두의 기대와 달리 창쪽 학생은 그 제안을 거절하였다. 이유인즉 자신은 따뜻한 햇볕을 쬐고 있는데 커튼을 내리면 그 혜택을 잃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른 봄이라서 사실 교실이 춥긴 했지만 그래도 창쪽 자리는 복도쪽에 비하면 꽤 따뜻한 편이었는데도 말이다. 이 경우 누구의 손을 들어주는 것이 정의로운 해결일까?

이 학급에서 무지의 베일이라는 사고 실험을 해보자. 좌석 배치를 제비뽑기로 정하기로 하고 제비를 뽑기 전에 커튼을 올릴 것인지 내릴 것인지를 결정한다고 하자. 그러면 학생들은 자신이 앉게 될 좌석 위치에 대해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고 그쪽을 유리하게 하는 데 합의할 것이다. 이 경우 최악의 상황은 추울 뿐 아니라 칠판도 잘 보이지 않는 복도쪽 자리가 될 것이다. 따라서 학생들은 자신의 최악의 상황을 우려하여 교실 커튼을 내리는 데 합의할 것이다. 이렇게 보면 창쪽 학생은 자신의 위치를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커튼을 내리는 것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롤스에 따르면 그의 주장은 정의롭지 못하다.

현실적이지 않지만

어찌 보면 위의 교실은 사회의 축소판이다. 하찮아 보이는 교실 커튼 문제로 발생한 갈등 해결도 이러한데, 하물며 다양한 입장을 가진 수많은 사람의 이해관계가 얽힌 사회적 갈등의 경우에는 어떠할까? 이에 대해 롤스의 교훈은 이렇다. “더 좋은 사회를 설계하라. 단 네가 그 사회에서 어느 위치에 있을지 모르는 상태에서 말이다”가 아닐까. 하지만 이것은 현실적이지 않다. 때문에 굳이 무지의 베일을 가정할 이유가 있는지에 대한 반문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가상의 상황에서 도출된 정의의 원칙은 적어도 현실의 부정의를 분별하고 정의로운 사회로 나아가게 하는 나침반은 될 수는 있다. 이것마저 없다면 우리는 어떻게 지금의 사회를 평가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 기억해주세요

롤스는 그만의 독창적인 발상을 통해 ‘각자의 몫’을 어떻게 분배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정의론을 제시하였다. 어떤 실질적인 정의 기준을 제시하기보다는 정의로운 결과를 도출할 수 있는 절차를 모색한 것이었다.

김홍일 < 서울국제고 교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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