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이른바 '혜경궁 김씨' 트위터 계정(@08__hkkim)주는 이재명 경기지사의 배우자 김혜경 씨라고 결론짓고 사건을 19일 검찰에 넘겼다.
경기남부지방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이날 공직선거법 위반(허위사실 공표) 및 명예훼손 등 혐의로 입건된 김씨를 기소의견으로 수원지검에 송치했다.
경찰은 "그 동안 김씨라고 추정했던 숱한 의혹들 때문에 기소했다고 연관 지어서는 안된다. 정확한 기소근거는 수사상황에 따라 밝힐 수는 없다"며 말을 아꼈다.
◆ 이재명 "혜경궁 김씨, 내 아내 아니라는 증거가 차고 넘친다"
앞서 올 6.13지방선거 당시 이 지사와 더불어민주당 경기도지사 경선에서 맞붙었던 전해철 의원은 지난 4월 트위터 계정인 '@08__hkkim'이 자신과 문재인 대통령에 대해 악의적인 글을 올렸다며 경기도선거관리위원회에 고발하면서 혜경궁 김씨 사건이 시작됐다.
비슷한 시기 이정렬 변호사 역시 "해당 트위터 계정은 김혜경씨 것"이라며 "의견에 동의한 네티즌 1432명을 대신해 고발장을 제출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경찰은 지난 4월 고발장 접수 후 약 30여회에 걸쳐 법원으로부터 압수영장, 통신허가서를 발부 받아 방대한 데이터를 수집 분석한 결과 김씨의 혐의가 있는 것으로 판단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 지사는 논란 이후 첫 출근길 기자들과 만나 "트위터 계정의 주인은 제 아내가 아니다"며 "경찰은 제 아내가 아니라는 증거가 차고 넘치는데도 비슷한 것들을 몇 가지 끌어모아서 제 아내로 단정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카스 계정과 트위터 계정을 가지고 있으면 트위터에 사진 올리고 그 트위터 사진을 캡처해 카스에 올리진 않는다. 바로 올리면 더 쉬운데 굳이 트위터의 글을 사진을 캡처하겠느냐"며 "경찰의 수사내용을 보면 네티즌 수사대보다 판단력이 떨어지지 않느냐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 지사는 "욕을 하려면 이재명을 욕하고 침을 뱉으려면 이재명한테 뱉으라"며 배우자에 대한 경찰수사에 강하게 불만을 제기했다.
이 지사는 그러면서 "경찰이 제 수사의 10분의 1만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사건이나 기득권 부정부패에 관심 두고 집중했다면 나라가 지금보다 10배는 좋아졌을 것"이라고 화제를 돌리기도 했다.
그는 "저열한 정치공세의 목표는 이재명으로 하여금 일을 못 하게 하는 것"이라며 "그래서 지금보다도 더 도정에 집중해서 도정 성과로 저열한 정치공세에 답을 해드리겠다"고 각오를 전했다.
◆ 이재명 "경찰이 휴대전화 증거제출 요청 안했다"
이 지사는 김혜경 씨의 휴대전화를 제출해 결백을 입증할 생각이 있느냐는 물음에는 "지난 4월 3일 그 일이 있고 난 뒤 이상한 전화가 많이 와 정지시키고 2∼3주 후에 새로 폰을 만들었다. (정지시킨 폰은) 선거운동용으로 쓰다 지금은 없다"며 "초반 요청을 했으면 제출했을 테지만 7개월간 요청안하고 기소 송치를 결정한 뒤 변호사를 통해 제출 요청이 왔다. 저희도 당황스럽고 아쉽게 생각한다"고 답했다.
이어진 "야권 및 여권에서도 의혹이 사실일 경우 사퇴하라는 압박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뇌물을 받았다면 처벌받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무고한 사람에 죄지었다고 하는 것은 프레임"이라고 규정했다.
지난 4월 3일 혜경궁 김씨는 트위터에 '전해철 때문에 경기 선거판이 아주 똥물이 됐다'고 글을 써 같은 달 8일 전해철 의원이 혜경궁 김씨 계정주를 선거관리위원회에 고발하는 계기가 됐다.
트위터 본사에 혜경궁 김씨 계정이 배우자 명의인지 확인을 요청할 생각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그게 상식적으로 가능하지 않다"며 "그 계정은 제 아내의 것이 아닌데 어떻게 물어보나. '그건 내 것이다'라고 인정하는 건데. 그게 프레임이고 함정이다"라고 했다.
이 지사는 앞서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08_hkkim이 김혜경이라는 스모킹건? 허접하다"며 "국가권력을 사적,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이 최악의 적폐이다. 촛불정부 경찰 전체에 누 끼치는 일부 경찰이 참으로 안타깝다"고 경찰을 비판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내의 이메일이 도용 당했고 그 때문에 자신의 정치적인 처지가 많이 불편해졌는데도 불구하고 그를 적극적으로 해결하려는 의지없이 그저 자신은 책임이 없으니 상관 않겠다는 식의 발언은 혜경궁 김씨 논란이 증폭되는 요인이 아니었냐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혜경궁 김씨에 대한 의혹 제기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이 지사 측이 억울하다면 그것을 단번에 해소시킬 수 있는 휴대전화를 먼저 제출하지 않고 '경찰이 요청을 안해 제시하지 않았다'는 답변도 설득력이 떨어지는 상황이다.
◆ '혜경궁 김씨=김혜경' 결정적 단서는 이지사 대학입학 사진
문재인 경선 후보를 폄하하고 노무현 전 대통령 지지자들을 노골적으로 자극한 내용이 담긴 과거 게시물들이 논란에 휘말리자 증거수집 사이트인 ‘혜경궁닷컴’이라는 홈페이지까지 만들어졌다. 지방 선거를 앞둔 5월엔 현상금이 내걸린 신문광고까지 등장했다.
이 지사 측은 당시 "혜경궁 김씨는 누구입니까"라는 세 차례에 걸쳐 신문 광고가 실리는데도 불구하고 적극적인 해명을 하지 않았다.
현재까지 공개된 바에 의하면 경찰이 '혜경궁 김씨' 트위터 계정 소유주를 김혜경 씨로 결론 내린 데에는 과거 이 계정에 올라온 이 지사의 입학사진이 결정적 증거가 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진은 이 지사가 대학교 입학 당시 이 지사의 어머니와 함께 찍은 것이다. 이 지사의 가족이나 지인이 아니라면 사실상 가지고 있기 어려운 사진이라는 것이 경찰 측의 판단이다. 이 사진은 김씨의 카카오스토리→혜경궁 김씨 트위터→이 지사 트위터 순으로 올라왔다.
김씨는 당일 오전 10시40분 자신의 카카오스토리에 '울신랑 대학입학식에서 어머님이랑~중·고등학교 교복 입는게 부러워서 대학교복을 맞춰 입었단다"라는 글과 함께 사진을 올렸다. 이어 10분 뒤인 오전 10시50분 '혜경궁 김씨' 트위터 계정에 '어떤 카스에서 본 대학 입학식의 이재명 시장님과 어머니. 교복 입은 게 인상적'이라며 동일한 사진을 업로드했다.
이 지사는 이어 오전 11시16분 자신의 트위터에 '대학 들어갈 때 아무도 안 입는 교복을 맞췄죠. 입학식날 단 하루 입었지만'이라며 같은 사진을 올렸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어떻게 이 지사보다 '혜경궁 김씨' 계정에서 이 사진이 먼저 올라올 수 있느냐고 관련성을 의심했다. '혜경궁 김씨'보다 먼저 사진을 올린 김씨의 카카오스토리는 김씨와 친구를 맺은 사람들만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경찰은 '혜경궁 김씨' 계정주와 이 지사의 부인 김씨가 동일한 사진을 각각 다른 SNS에 연달아 올리는 것이 반복돼 확인되는 등 '동일인이 아닌 상황에서 우연히 일어난 일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이유로 '혜경궁 김씨'의 계정으로 김씨가 활동했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 트위터 계정 확인 본사승인 없이는 불가능
일각에서는 트위터에 계정 확인을 받으면 쉽게 해소될 의혹이 아니냐고 의문을 제기한다.
트위터 본사는 지난 4월말 경찰의 수사협조 요청 메일에 "범죄의 성격을 감안할 때 (해당 계정 사용자에 대해) 답변할 수 없다"고 거부한 바 있다.
트위터는 미국에 본사를 두고 있어 서버의 위치와 상관없이 계정의 실 사용자를 찾기 위해서는 미국 본사의 협조가 필요하다.
경찰이 아무리 트위터 미국 본사를 통해 실제 사용자 정보를 메일로 요구해도 트위터 미국 본사가 이에 협조하지 않는다면 무용지물이다.
경찰은 미국이 가짜뉴스(Fake News)에 대한 심각성을 인식하고 엄중히 처벌하는 분위기로 협조를 해줄 것으로 기대했지만 미국 본사에서 언제 어떤 방식으로 해당 요청건에 대한 답을 줄 지는 예상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다.
경찰은 "미국은 표현의 자유가 폭넓게 인정된다. 자국 법률에 저촉되지 않아 답변이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트위터를 이용한 범죄 단서 포착을 위해 본사에 데이터를 요청했지만 무산된 경우는 '인천 초등생 살인사건' 때도 있었다.
17세 주범 김양과 19세 공범 박양은 범행 이전은 물론 범행 후 만나고 헤어진 후에도 트위터 DM을 주고받으며 수차례 소통했다.
검찰 측이 확보한 DM은 김양의 휴대폰을 압수하기 직전 두 사람이 주고받은 짤막한 메시지 뿐이었고 미국 법무부에서 (트위터 본사에) 영장을 제시했지만 몇 개월이 지나도 답을 받을 수는 없었다.
경찰은 트위터 미국 본사로부터는 사건의 주요 내용을 확인할 수는 없지만 자체 수사 기법을 동원해 수사를 이어왔다.
손수호 변호사는 지난 6월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음란포털 소라넷의 '검은 수익'과 관련해 해외에 서버를 둔 회사와의 공조 문제에 대해 지적했다.
손 변호사는 "현지 해외 수사당국과의 공조가 필수적이다"라면서 "단순히 낮은 단계에서의 노력이 아니라 높은 수준과 단계에서의 협약 체결 그리고 상시 협업 체제 구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민갑룡 경찰청장은 기자간담회에서 "구체적인 수사상황이라 일일이 설명하긴 어렵지만 (계정주를 김혜경씨로 결론을 내린) 그만한 이유가 있다"며 "각자 입장에서 많은 의견이 있겠지만 검찰의 보충수사와 판단 단계가 남은 만큼 그 과정에서 진실이 규명될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김씨가 수원지검에 기소의견으로 송치됐지만 이 지사 측은 이에 '정치공세'라며 강력 반발하고 있어 향후 법정 공방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미나 한경닷컴 기자 help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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