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은정진 기자 ]
“어린 시절 할아버지(피천득)와 보낸 시간이 제 음악 인생의 절반을 차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제 몸에 예술가의 피가 흐른다고 말할 정도는 아니지만 할아버지가 큰 영향을 끼친 건 분명합니다.”
바이올리니스트 스테판 피 재키브(33)는 서울에서 열리는 두 차례 공연을 앞두고 19일 기자와 만나 이같이 말했다. 그는 오는 21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의 KBS교향악단 정기연주회, 다음달 20일 서울 잠실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리는 ‘스타더스트 시리즈5’ 공연을 위해 한국을 찾았다.
미국 하버드대에서 기악을 전공한 재키브는 수필가 고(故) 피천득(1910~2007)의 외손자로 알려져 있다. 부친은 독일계 미국인이다. 그가 할아버지를 더 기억하고 싶어 한국에서 활동할 땐 중간 이름에 할아버지의 성씨인 ‘피(皮)’를 넣는다. 재키브는 “열두 살 때까지 매년 한 차례 할아버지 집이 있던 서울 반포동에 머무르며 함께 많은 시간을 보냈다”며 “레너드 번스타인이 지휘한 말러 편곡의 베토벤 교향곡 5번 같은 곡을 많이 들려주셨다. 그때 처음으로 클래식 음악이 얼마나 좋은 건지 알게 됐다”고 말했다. 할아버지는 재키브가 여섯 살일 때부터 예이츠나 키츠의 시를 읽어주고 세잔이나 모네의 그림도 보여주며 예술적 감수성을 키워줬다고 한다.
피천득이 재키브의 공식 공연을 본 건 2006년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서울시립교향악단과의 데뷔 무대였다. 피천득은 1년 뒤인 2007년 눈을 감았다. 그는 “할아버지는 늘 열정적이고 창의적인 분이었다”며 “클래식 음악에 대한 열정도 많아 제 음악에 매우 긍정적으로 다가왔다”고 회상했다. 이어 “성인이 됐을 때 할아버지를 자주 뵐 수 있었다면 더욱 문화적으로 연결됐었을 것”이라며 아쉬워했다.
재키브는 KBS교향악단 정기연주회에서 ‘풍부한 선율의 아름다움과 고전적 균형미가 조화를 이룬다’는 평을 받는 프로코피예프 ‘바이올린 협주곡 2번’을 협연한다. 다음달 ‘스타더스트 시리즈5’ 공연에선 디토 앙상블에서 만나 음악적 ‘절친’이 된 바이올리니스트 대니 구와 함께 레오폴트 모차르트의 ‘두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듀엣’을 협연한다. 역시 디토 앙상블에서 함께한 피아니스트 지용과는 볼프강 모차르트의 ‘바이올린 소나타 26번’을 선보인다. 아버지의 곡으로 시작해 아들의 곡으로 끝나는 레퍼토리다. 그는 “대니 구는 같은 미국 뉴잉글랜드음악원 출신에 도널드 와일러스타인을 함께 사사해 음악적으로 비슷한 느낌을 지녔다”고 말했다. 지용에 대해선 “‘어둠에서 빛으로’라는 테마의 첫 듀오 리사이틀부터 수많은 공연을 함께 해오며 친밀해졌다”며 “멋진 공연을 기대하고 있다”고 했다.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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