벡스터 사장 권유로 임원 5명 참여
이종철 전무 "추워서 잠 설쳤지만 노숙하며 이웃 도울 수 있어 보람"
[ 김현석 기자 ]
뉴욕 뉴저지 등 미국 북동부에 최대 30㎝가량의 폭설이 쏟아진 지난 15일 밤 11시. 뉴저지주 뉴어크시 빈민가에 수십 명이 종이상자를 들고 모였다. 그들 사이에는 팀 벡스터 사장과 이종철 법무팀장(전무) 등 삼성전자 북미총괄 임원도 섞여 있었다. 이들은 열심히 눈을 치우더니 상자를 깔고 세워 잠자리를 마련했다. 그리고는 상자 안으로 들어가 잠을 청했다.
한파가 몰아치는 밤 길거리에서 이들이 노숙한 건 기부행사의 일부다. 미국의 홈리스(노숙인) 관련 자선단체인 커버넌트하우스가 미국 캐나다 등 북미 지역 19개 도시에서 대기업 중역을 대상으로 연 노숙체험행사다. 델타항공과 시스코, JP모간체이스, UPS 등 대기업 임원 1779명이 이날 행사에 참가했다.
삼성전자 북미총괄은 법인 자격으로는 참가하지 않았다. 벡스터 사장은 임원들에게 개인적으로 참가를 권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이종철 전무 등 다섯 명이 응했다. 벡스터 사장도 3년 전 지인으로부터 얘기를 듣고 매년 이렇게 한 차례 노숙을 해왔다.
참가자들은 그냥 노숙만 하는 게 아니다. 행사에 참가하려면 노숙 한 달 전부터 온라인을 통해 지인 등을 대상으로 모금 활동을 해 최소 5000달러(약 562만원)를 이 단체에 기부해야 한다. 주변인에게 이 행사를 널리 알리고 참가를 독려하도록 하는 취지다. 이 돈은 주로 수만 명에 달하는 미국 홈리스 가운데 청소년을 위해 쓰인다.
커버넌트하우스는 이날 행사로 683만5000달러를 모았다고 발표했다. 벡스터 사장은 이번에 1만5000만달러 이상을 모아서 낸 것으로 알려졌다. 커버넌트하우스 관계자는 “매년 점점 더 많은 사람이 노숙 체험을 통해 홈리스들이 삶을 영위하기 위해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며 “홈리스 청소년이 안전하게 보호받고 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해 성인이 돼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고 밝혔다.
이 전무는 “홈리스 중에 청소년이 많다는 사실을 잘 몰랐고, 이렇게 노숙하며 봉사할 기회가 있다는 것도 몰랐다”며 “추워서 새벽에 여러 차례 잠을 깼지만 이웃을 도울 수 있어 기뻤다”고 말했다.
뉴욕=김현석 특파원 realist@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