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영식 기자 ] 북한은 20, 30대 젊은 시절 겪은 시대적 배경과 연결시켜 세대를 구분하고 있다. 항일운동을 한 ‘빨치산 세대’와 6·25전쟁 이후의 ‘천리마 세대’, 1970년대 ‘3대 혁명소조운동 세대’,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세대’ 등이다. 이후 김정은 시대 개막과 함께 새로 등장한 것이 ‘장마당 세대’다.
장마당 세대는 1990년대에 태어난 북한의 20대 청년층을 지칭한다. 어린 시절부터 장마당을 보며 자라 그런 이름이 붙여졌다. 장마당은 북한의 비공식 시장이다. 북한은 1990년대 중·후반 최악의 기근에 시달렸으며, ‘고난의 행군 시기’로 불렀다. 기근과 경제위기로 배급 체계가 무너지자 북한 주민들은 먹고살기 위해 내다 팔 만한 물건을 갖고 나와 거래를 시작하면서 장마당이 형성됐다.
장마당 세대는 기존 세대와 뚜렷하게 다른 특징을 갖고 있다. 이전 세대가 국가로부터 배급과 의무 교육을 받았지만, 장마당 세대는 이런 지원을 거의 받지 못했다. 이 때문에 이들은 국가에 대한 충성도가 이전 세대보다 약할 수밖에 없다는 탈북자들의 증언이 많다.
국가정보원도 2015년 “장마당 세대는 이념보다는 돈벌이에 관심이 많고, 개인주의 성향이 강하며, 부모 세대에 비해 체제에 대한 충성도가 낮다”는 분석 보고서를 내놓은 바 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지난해 웹사이트를 통해 ‘북한의 자유(LINK)’라는 단체가 20대 탈북자들을 인터뷰해 제작한 다큐멘터리를 공개하며 “고난의 행군 시기 붕괴된 북한의 배급 체계가 장마당 세대를 자립의 자본주의 인간형으로 개조했다”고 분석했다. 또 “장마당 세대는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는 데 익숙한 용감한 세대”라고 규정했다. 한 20대 탈북자는 “북한 젊은이들은 노동당이 아니라 장마당에 충성한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장마당 세대의 출현이 체제 이완으로 이어졌다는 분석도 있다. 북한대학원대가 탈북 청년 54명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먹고사는 문제 때문에 당국의 사상 교육을 무시한 경험이 있다”고 답한 이들이 3분의 1이 넘었다. 북한 당국은 2016년 청년동맹대회를 23년 만에 개최하는 등 청년들의 기강을 잡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뜻대로 되지 않고 있다고 한다.
지난해 11월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을 통해 귀순한 북한군 병사 오청성 씨(25)가 일본 산케이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에선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지도자에 대한 무관심이 퍼지고 있으며, 충성심도 없다”고 말해 주목을 받았다. 그는 “체제가 인민들을 먹여살린다면 손뼉을 치겠지만, 무엇 하나 주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탈북 청년들의 증언들과 다르지 않다. 지도자가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한다면 민심이반은 필연적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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