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 거부하고 또 거리로 나온 민주노총…'여론 의식' 행진 못 해

입력 2018-11-21 15:01   수정 2018-11-23 09:55

文 정부들어 두 번째…노·정갈등 격화
잇단 대화 거부·고용세습…시민 '냉랭'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 예정대로 21일 오후부터 총파업에 돌입했다. 탄력근로제 확대 저지 등 노동 여건 개선을 구호로 내걸었지만 여론은 싸늘하다. 현안 해결을 위한 대화를 거부하고 투쟁 강경론으로 일관해서다. 같은 날 민주노총 소속 노조의 고용세습 명단이 공개돼 민심은 더욱 돌아서는 분위기다.

민주노총은 이날 서울을 비롯해 인천과 대전, 대구, 울산, 부산 등 전국 주요 도시 14곳에서 순차적으로 집회를 열었다. 민주노총에 따르면 전국 109개 사업장에서 12만8000여명이 총파업에 참여했다. 고용노동부는 80여개 사업장에서 9만여명이 동참한 것으로 파악했다. 민주노총 지도부가 당초 예상한 20만명의 절반 수준이다.


민주노총 산하 노조들은 일정 시간 노동을 중단하는 형태로 파업에 동참한다. 현대차는 4시간, 기아차는 2시간 동안 모든 사업장에서 생산을 중단한다고 이날 공시했다. 현대·기아차 노조원은 7만7000여명이 참여한 것으로 파악됐다.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는 주최측 추산 1만여명이 모여 시위를 했다. 하지만 행진은 하지 않았다. 이를 두고 부정적 여론을 의식한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민주노총은 그동안 도심 대규모 집회가 있을 때마다 거리행진을 해왔다. 지난 5월에도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에 반발하면서 국회로 행진했다.

당초 민주노총의 총파업 구호는 ‘적폐청산’과 ‘노조할 권리’, ‘사회 대개혁’이었다. 여기에 ‘탄력근로제 기간 확대 노동법 개악 중단’이 추가됐다. 최근 정치권이 강하게 밀어붙이는 탄력근로제 확대 적용을 전력 저지한다는 입장이다.

정치권은 현행 근로기준법에서 최장 3개월로 규정하고 있는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을 6개월 혹은 1년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 기간을 확대하지 않을 경우 지난 7월부터 시행된 주 52시간제를 지키기 어렵다는 경영계의 요구를 수용한 결과다. 주무 부처인 고용노동부 또한 일부 업종의 경우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 확대가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다. 3개월 단위의 탄력근로제에선 길어도 한 달 반 정도 연속 집중노동을 할 수 있지만 계절적 수요에 대응해야 하는 일부 기업은 4개월 이상의 연속·집중 노동이 필요하다는 게 노동부 설명이다.

하지만 노동계는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을 확대할 경우 연장근로 가산수당이 줄어드는 데다 노동자의 건강이 나빠질 수 있다고 우려해 반발하고 있다. 특히 민주노총이 대화를 통한 해결보단 투쟁노선을 선택하자 정치권은 물론 시민사회 안팎에서도 싸늘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주요 노동현안을 사회적 대화를 통해 해결하지 못하고 끝내 파업을 선택한 것은 유감”이라면서 “파업과 장외투쟁을 벌이는 게 우리 사회의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어떤 도움이 될지 함께 생각해봤으면 한다”고 꼬집었다.

홍 원내대표는 “탄력근로제와 관련해 노사가 합의한다면 국회가 이를 존중해 입법하는 절차를 거칠 것”이라며 “국제노동기구(ILO) 핵심 협약 가운데 결사의 자유와 강제노동 금지 등 4가지 협약에 대한 국회 비준도 경제사회노동위(경사노위)에서 합의를 이룬다면 반드시 처리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경사노위는 노·사문제 논의를 위해 설치한 대통령 직속 기구다. 그간 정부는 민주노총에 끊임없이 경사노위 참여를 설득했지만 끝내 거부당했다. 22일 경사노위 공식출범을 하루 앞두고 벌어진 총파업 사태가 유쾌할 리 없다. 게다가 이날 첫 회의는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챙길 예정이다.

한국노총 출신인 이수진 최고위원은 “노동자들이 어려운 시기엔 생존권 쟁취 투쟁을 했지만 대화를 통해 갈등을 최소화하고 문제를 해결한 사례도 많다”며 빠른 시일 안에 경사노위에 참여하길 기대한다”고 독려했다. 윤영석 자유한국당 수석대변인은 “강경 투쟁 방식으로 일관한다면 국가 경제회복은 강 건너 불구경하는 꼴이 되는 것”이라면서 “최대 피해자는 국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총파업을 계기로 정부와 민주노총의 관계가 본격적인 대립 국면에 들어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연초까지만 하더라도 ‘촛불민심’을 공유하고 있는 문재인정부와 민주노총이 서로 등을 돌릴 것이라 예상한 이들은 많지 않다. 1월엔 문 대통령과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이 청와대에서 만나기도 했다. 현직 대통령과 민주노총 위원장의 단독 회동은 2007년 이후 11년 만이었다. 하지만 고용지표가 급격히 악화되면서 정부의 노동정책 기조가 달라졌고, 민주노총의 이에 반발하며 홍영표 원내대표 지역구 사무실 점거와 대검찰청 점거농성 등으로 강경하게 맞섰다. 편치 않은 노·정관계는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이 국회 운영위 국정감사에서 밝힌 “민주노총과 전교조는 더 이상 사회적 약자가 아니다”라는 발언에서도 읽힌다.

고용세습 논란까지 불거져 여론도 등을 돌리는 분위기다. 하태경 바른미래당 의원은 민주노총 총파업 직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금속노조 울산지부 소속 A사 노조의 고용세습 현황을 공개했다. 하 의원에 따르면 이 회사 노조 조합원의 자녀와 친인척 등 40여명이 2011년~2013년과 올해 A사에 입사했다. A사는 현대차의 1차 협력사로 지난해 매출액 2조원대의 중견기업이다.

노조는 2011년~2013년 조합원 29명이 자녀와 친인척, 지인 등 30명을 추천해 입사시켰다. 올 2월엔 채용 인원 12명 가운데 10명을 조합원의 자녀로 우선 채용할 것을 회사에 요구해 관철시켰다. 올여름에도 우선순위 조합원 자녀와 차순위 8명 등 20명의 명단이 담긴 ‘화이트 리스트’를 작성해 우선 채용할 것을 회사에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 의원은 “노조의 요구가 무리하다고 느낀 회사측 인사가 고용세습 실태를 담은 소식지를 제보했다”면서 “민주노총이 이 같은 실태를 묵살한 정황에 대해서도 조만간 공개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 명단 공개는 민주노총의 고용세습 가운데 빙산의 일각일 뿐”이라면서 “국정감사에서 공공기관 채용비리만 다룰 게 아니라 민주노총의 고용세습도 다뤄야 한다”고 주장했다.

시민들의 반응은 차갑다. 30대 직장인 김모 씨는 “특권층인 노조가 약자를 위장해 실리를 추구하고 있다”면서 “적폐청산을 외치기 전에 자신들의 적폐부터 걷어내야 한다”고 말했다.

경찰은 전국 각지에서 총파업 집회가 열리는 만큼 불법 행위 등 돌발상황이 있을지 모른다고 보고 경력을 배치해 대비할 예정이다. 경찰 관계자는 “시민 안전을 지키고 교통혼잡을 막기 위해 여의도 일대에 82개 중대, 6500명을 동원해 대응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민주노총은 이날 총파업을 통해 정부의 노동정책에 대한 반대 의지를 결집한 뒤 다음 달 1일 전국민중대회에서 대정부 압박 수위를 더욱 높인다는 계획이다.

한경닷컴 뉴스룸 op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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