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은 혁신적 인터넷기업…기업가치 10조원 충분"
소프트뱅크, 2015년의 2배 투자…쿠팡지분 절반 가까이 확보한 듯
속속 '실탄' 장착한 e커머스
11번가 5000억·신세계 1조원…롯데도 2023년까지 3조 '수혈'
업계 "쿠팡가치, 예상보다 높아"…위메프·티몬도 투자유치 탄력
[ 안재광 기자 ] 올초만 해도 국내 주요 e커머스(전자상거래) 기업에 대한 평가는 좋지 않았다. 막대한 적자 탓이다. 쿠팡이 특히 그랬다. 2016년 5000억원대 손실을 낸 데 이어 작년 6000억원대 손실을 또 기록했다.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자연스럽게 나왔다. 쿠팡뿐만이 아니었다. 티몬 위메프 11번가 등 대부분의 e커머스 기업이 최소 수백억원씩 적자를 기록, ‘버티기 싸움’을 하고 있다고 봤다. 올 하반기 분위기는 확 바뀌었다. 지난 6월 11번가가 토종 사모펀드 H&Q로부터 5000억원을 투자받은 게 시작이었다. 국내 유통 강자 롯데는 온라인 사업에 2023년까지 3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지난달 신세계는 1년 가까이 끌어온 1조원대 온라인 투자를 성사시켰다. ‘화룡점정’은 쿠팡이었다. 지난 20일 소프트뱅크 비전펀드로부터 20억달러(약 2조2500억원) 규모 투자를 유치했다. 이들 기업은 든든한 ‘실탄’을 기반으로 대대적인 투자를 예고하고 있다.
기업가치 10조원의 비밀
쿠팡의 20억달러 투자 유치에 업계는 상당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우선 쿠팡의 기업가치다. 블룸버그통신은 이번 딜에 정통한 소식통을 인용해 “소프트뱅크 비전펀드는 쿠팡 가치를 90억달러(약 10조원)로 평가했다”고 보도했다. 2015년 소프트뱅크로부터 10억달러 투자를 받을 땐 가치가 50억달러 수준이었다. 3년 만에 두 배로 뛴 것이다. 국내 최대 유통기업 롯데쇼핑(21일 시가총액 6조3366억원)보다 약 60%나 가치를 높게 봤다.
동종업계와 비교해도 쿠팡의 가치는 높게 평가되고 있다. 쿠팡은 지난해 2조6814억원의 매출을 거뒀다. 거래액 기준으론 약 5조원 수준이다. 연 8조원 수준인 11번가에 크게 못 미친다. 그럼에도 기업가치는 11번가 대비 4배에 가깝다. H&Q는 지난 6월 11번가 가치를 2조7000억원으로 평가했다. 이는 쿠팡의 사업 구조가 다른 e커머스와 차별되기 때문이다. G마켓 옥션 11번가 인터파크 등은 판매자와 구매자를 연결해주고 수수료를 받는 게 주된 사업이다. 쿠팡은 아니다. 팔 물건 대부분을 직접 구입한 뒤 창고에 넣어 뒀다가 소비자에게 전달한다. 24시간 이내 배송해주는 쿠팡의 ‘로켓 배송’이 가능한 것도 이 때문이다.
쿠팡을 찾는 방문객 대부분이 충성도가 높다는 것도 특징이다.
현재 국내 e커머스 시장은 사실상 네이버의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네이버에서 상품 검색을 한 뒤 가격 등의 정보를 보고, 해당 쇼핑몰에 가서 구입하는 소비자가 많아서다. 쿠팡은 다르다. 쿠팡은 네이버에 쇼핑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다. 방문객 대부분은 쿠팡 앱(응용프로그램)과 홈페이지를 통해 직접 들어온다. “방문객의 질이 다르다”고 쿠팡이 주장하는 이유다.
티몬·위메프 투자 유치 가속화
손정의 일본 소프트뱅크 회장의 쿠팡에 대한 지배력이 공고해진 것도 이번 투자가 지니는 또 다른 의미다.
소프트뱅크는 이번 투자로 쿠팡 지분 40~50%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쿠팡 최대주주 자리를 꿰찼다는 분석도 나온다. 쿠팡이 2014년 세쿼이아캐피털, 블랙록 등 글로벌 투자사로부터 총 4억달러를 투자받은 것을 감안하면 창업주 김범석 대표 지분이 소프트뱅크보다 적을 것으로 추정돼서다.
손 회장은 이번 투자에 대해 “김범석 대표가 보여준 거대한 비전과 리더십은 쿠팡을 한국 e커머스 시장 리더이자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인터넷 기업 중 하나로 성장시켰다”며 “쿠팡과 손잡아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쿠팡은 물류 인프라, 결제 플랫폼, 소프트웨어 개발 등에 집중 투자할 예정이다. 업계 관계자는 “손 회장과 김 대표 공동경영 체제로 이해된다”고 말했다. 손 회장이 쿠팡을 통해 사실상 한국 e커머스 시장에 진출했다는 해석까지 나온다.
티몬 위메프 등 쿠팡과 비슷한 시기에 사업을 시작한 e커머스 기업의 투자 유치에도 관심이 쏠린다. 유한익 티몬 이사회 공동의장이 지난달 대표 자리를 내놓고 투자 유치 업무만 전담할 정도다. 국내 대기업을 상대로 전략적 제휴 관계를 추진 중이다. 오프라인 점포, 물류 등 기존 유통 인프라가 있는 기업이 대상이다. 티몬도 쿠팡처럼 모바일 앱을 통한 직접 방문객이 많아 관심을 보이는 대기업이 많은 것으로 전해졌다. 위메프도 투자 유치를 검토 중이다.
안재광 기자 ahnjk@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