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외교가 해야 할 것, 말아야 할 것' 제대로 분간하고 있나

입력 2018-11-21 18:10  

위안부 피해자와 유족을 대상으로 치유금 지급사업을 해 온 ‘화해·치유재단’이 해산절차를 밟기로 했다고 정부가 엊그제 발표했다. 이로써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5년 12월 어렵사리 양국이 서명한 ‘한·일 위안부 합의’는 사실상 폐기됐다.

일본은 아베 신조 총리까지 나서 “국제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국가와 국가의 관계는 성립되지 않는다”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전후 70여 년 이어져 온 양국 관계가 뿌리째 흔들린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전 합의에 대한 판단은 각자 다르겠지만, 꼭 짚어야 할 점은 재단해산 과정에서 보인 정부의 비(非)외교적 비타협적 행보다.

기존 합의가 ‘공식 문서’이기 때문에 재협상이 어렵다는 점은 정부도 인정하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개선을 모색하는 과정도 좀 더 공식적이고 절제됐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본은 미국과 함께 대한민국이 추구하는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공유하는 핵심 동맹국가다. 북한 비핵화 등에 힘을 합쳐야 할 외교현안도 한둘이 아니다.

외교에서 ‘국익’보다 국내 정치적 이해관계를 앞세워서는 곤란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최근 유럽순방과 아셈(ASEM) 정상회의 참석 등을 통해 각국 수반들에게 북한 제재완화에 협조해 줄 것을 요청했다가 거절 당했다. ‘외교참사’라는 일각의 평가도 나왔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북핵협상과 관련해 이제 한국은 단독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며 대놓고 불만을 터뜨리는 지경이 됐다.

‘아마추어 외교’는 중국으로부터도 외교적 결례와 도발을 부르고 있다. 어거지 ‘사드보복’을 3년째 이어가는데도 정부 대책은 실종 상태다. 갈수록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 경제외교는 구멍이 뚫린 상황이다. 중국이 지난해부터 한국 반도체의 가격담합을 조사하고 압박수위를 높이고 있지만 정부차원의 대응은 거의 전무하다. 점증하는 국제금융시장의 요동 속에 통화스와프 체결 부진도 초라한 경제외교의 실상을 보여준다. 캐나다 스위스 등을 새 협정국으로 끌어들였지만, 핵심국인 미국 일본과의 통화스와프는 감감무소식이다. 일본과의 스와프협정은 소녀상 등의 문제로 협상채널조차 끊어졌다.

외교는 신뢰의 게임이다. 국제사회에서의 신뢰는 ‘말의 성찬’이나 국내 여론 동원으로 얻어지지 않는다. 외교가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구분해야 한다. “한국이 다시 외환위기를 맞는다면 예전처럼 도와줄 나라가 있겠느냐”는 우려가 국내외에서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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