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기능은 생산·수주·판매에 자신감 높여
디지털 전환서 나아가 'AI전환' 서둘러야
이경전 < 경희대 교수, 벤플 대표 >
보청기는 일종의 증폭기다. 오디오 기기와 마찬가지로 진공관 보청기, 트랜지스터 보청기가 있었다. 이런 보청기는 아날로그 방식이다. 디지털 시대를 맞아 덴마크 회사 와이덱스는 디지털 보청기를 개발했다. 이 보청기는 기존 아날로그 보청기와 달리 튜닝이 쉬워 시장을 석권했다. 제조회사도, 유통회사도 다 성공했다. 아날로그 시대에서 디지털 시대로 잘 전환한 덕분이다. 일본 소니는 아날로그 시대의 왕자였다. 그러나 디지털 시대로 전환을 잘하지 못했다. 반면 삼성전자는 와이덱스처럼 디지털 시대에 잘 적응해 세계 10대 기업 반열에 올랐다.
디지털로 빨리 전환해 성공을 맛본 와이덱스는 최근 인공지능(AI) 보청기를 내놓았다. 이 보청기는 아예 튜닝이 필요 없도록 했다. 보청기의 인공지능 기능이 인간 목소리만 걸러서 증폭하기 때문에 사용자는 귀에 부담을 줄이면서도 소리를 더 잘 들을 수 있다. 와이덱스는 이제 디지털에서 인공지능으로 전환하는 시도를 하고 있다.
아날로그 제품은 사용할수록 품질이 떨어지는 문제가 있다. 사용할수록 닳아서 음질이 떨어지는 LP판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런데 디지털로 전환하면 적어도 음질은 유지할 수 있다. MP3 등 디지털 포맷으로 변환한 음향 제품이 음질을 반영구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럼 인공지능 시대의 품질은 무엇인가? 인공지능 제품은 사용할수록 품질이 올라갈 가능성이 크다. 인공지능 보청기는 사용하면서 자동으로 튜닝을 하는데, 사용자의 귀에 맞게 소리를 선택적으로 증폭하게 되면 품질이 더 좋아질 수 있다.
시화공단의 중소기업 프론텍은 필자 연구팀과 협력해 인공지능 품질관리시스템을 개발했다. 이 회사 고객사인 현대자동차는 최근 외관이 예쁜 제품만 납품하라고 요구했다. 규격과 성능에 더해 관능 품질, 감성 품질을 요구하기 시작한 것이다. 현대차가 ‘갑질’을 하는 게 아니다. 현대차를 찾는 소비자들이 볼트나 너트 하나에도 관능 품질, 감성 품질을 요구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프론텍은 기존 비전(vision) 검사기가 있었다. 이 비전 검사기를 공급한 회사는 감성 품질, 관능 품질을 검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손을 들었다. 인공지능의 가능성을 알지 못한 것이다.
프론텍은 자체 연구개발을 택했고 결국 성공했다. 딥러닝 기반의 품질관리 시스템은 데이터만 입력한다고 기계학습을 잘 해내는 것은 아니었다. 인공지능 전문 연구팀이 공장에서 찍은 사진을 전(前)처리하는 기법을 연구했고, 딥러닝의 최적 파라미터(parameter)를 찾아냈다. 처음에는 정품과 불량품을 구별하는 확률이 65%밖에 안 돼 인공지능 연구팀을 실망시켰다. 그러나 여러 시행착오 끝에 정확도가 회사가 요구하는 95%를 넘어 99%에 육박하는 품질관리시스템을 개발해냈다. 이제는 제품이 생산되는 순간 0.2초 만에 품질을 검사할 수 있게 됐다.
그동안 제품을 한데 모아서 육안으로 품질을 검사해야 했다. 품질 검사 속도가 제품 생산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작업자들은 단순 반복되는 작업을 고통스러워했다. 모든 제품 품질을 육안으로 검사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그런데 이제는 인공지능을 다룰 수 있는 사람 한 명이면 충분하게 됐다. 제조기업과 제조장비기업 모두 인공지능에 새로이 눈을 떴고 인공지능의 힘을 느끼게 됐다. 학문적 용어로 ‘자기효능감’(어떤 상황에서 적절한 행동을 할 수 있다는 기대와 신념)을 갖게 된 것이다.
프론텍은 자동화된 품질 검사를 통해 어떤 기계, 어떤 재료, 어떤 작업자에게서 불량이 많이 나는지 파악해 품질을 더 높일 수 있게 됐다. 이제는 생산일정 계획에도 인공지능을 사용하는 시도를 하고 있다. 인공지능에 의한 일정계획 자동화는 생산 현장과 경영진, 판매 영업팀의 정보격차를 최소화한다. 따라서 경영진 및 생산 현장은 고객사의 갑작스러운 요구에 적극 대응할 수 있게 되고, 판매·영업팀은 보다 적극적으로 영업할 수 있게 된다. 인공지능이 어려운 한국의 제조업을 살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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