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단위 고객 모시기 경쟁에 콧대 낮추고 '재미·편의' 시설 강화
워커힐·파라다이스시티 등에 편의점 CU·GS25 속속 문 열고
보석·명품 부티크에서 탈피
한남 북엇국·빅가이즈 씨푸드 등 동네 맛집도 특급호텔에 입점
[ 안재광 기자 ]
‘본업과 상관없더라도 방문객 체류 시간을 늘려라.’
유통업계에서 최근 화두로 떠오른 ‘재미’와 ‘편의’란 키워드가 호텔업계로 확산되고 있다. 호텔에서 온전히 자기 시간을 즐기고 싶어 하는 ‘호캉스족(族)’이 크게 늘고 있어서다. 특급호텔은 그동안 금기로 여겼던 것조차 깨고 있다.
울산 롯데호텔, 내달 록 볼링장 열어
26일 호텔업계에 따르면 울산 롯데호텔은 다음달 10일 지하 1층에 볼링장 ‘라이크 볼링 앨리’를 연다. 클럽을 방불케 하는 화려한 조명과 빠른 비트의 음악이 나오는 록(rock) 볼링장이다. 격식을 중시하는 5성급 특급호텔에 록 볼링장이 생기는 것은 국내에선 처음이다. 롯데호텔 관계자는 “사람들이 호텔에 머물며 즐겁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다양한 콘텐츠를 시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울산 롯데호텔뿐만이 아니다. 제주 롯데호텔은 기존 면세점이 있던 공간을 놀이시설로 재단장 중이다. 가족 단위 방문객이 많다는 것을 감안, ‘재미’에 초점을 맞췄다. 다음달 20일 문을 여는 이곳에도 12개 레일을 갖춘 록 볼링장이 들어선다. 익스트림 체험형 키즈카페 ‘챔피언 R’도 생긴다. 아이스링크 ‘스피드 필드’, 집라인 ‘로우드롭와이어’, 정글 다이빙 ‘로프 캐년’ 등이 키즈카페의 주된 시설이다. 리조트가 아닌 호텔에 대규모 키즈카페가 생기는 것 또한 이례적인 일이다.
호텔업계 한 관계자는 “최근 3~4년간 특급호텔이 많이 생긴 탓에 객실만 갖고 경쟁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며 “호텔이 테마파크처럼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편의점이 특급호텔에 생기고 있는 것도 과거에는 보기 힘들던 광경이다. 올 들어 서울 광장동 그랜드워커힐, 인천 영종도 파라다이스시티에 편의점 CU가 문을 열었다. 4성급 비즈니스호텔이나 리조트에는 편의점이 많다. 하지만 특급호텔 내 편의점은 드물다. 서울 삼성동 그랜드인터컨티넨탈호텔에 2016년 9월 문을 연 GS25가 첫 사례다. 그나마 이 경우는 GS25 운영사 GS리테일이 호텔 소유주여서 가능했다. 요즘 특급호텔에 생기는 편의점은 순수하게 ‘소비자 편의’ 관점이다. 그랜드워커힐과 파라다이스시티는 호텔 규모가 크고 인근에 상권이 발달하지 않았다는 특징이 있다.
식음매장 외부 업체에 내주기도
과거 특급호텔의 부대시설은 식음 매장을 제외하곤 명품, 보석 등 럭셔리 상품을 판매하는 부티크 정도였다. 지금도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 소공동 롯데호텔 등에는 부티크 매장이 주된 부대시설이다. 특급호텔 투숙객이 일부 계층에 한정돼 있어 가격대가 높아도 영업이 됐다.
최근 2~3년 일반 직장인이 특급호텔을 많이 이용하면서 상황이 변했다. 올해가 특히 그랬다. 지난 7~8월 휴가철 국내 특급호텔의 70~80%가 내국인 호캉스족으로 채워졌다. 콧대 높은 특급호텔은 격식보다 실리를 따지기 시작했다. 투숙객이 필요로 하는 놀이 시설, 편의 시설을 갖춰야 할 필요성이 커졌다. 강원도 강릉 씨마크호텔, 제주도 켄싱턴호텔 등은 미니바를 무료로 바꿔 호캉스 방문객 유치에 적극 나서고 있다.
최근에는 호텔이 자신들의 ‘전공’인 식음 매장까지 외부에 내주는 일까지 있다. 파라다이스시티는 지난 9월 2차 개장을 하면서 지역 맛집 10여 곳을 넣었다. 태국 음식점 ‘콘타이’, ‘한남 북엇국’, 손만두집 ‘강이수’ 등이다. 고급 호텔 레스토랑이 부담되는 사람들을 위해 1만원 안팎 가격대의 식당을 대거 들였다. 롯데호텔 L7홍대는 해산물 전문점 ‘빅가이즈 씨푸드’, 인도 음식점 ‘강가’ 등을 유치했다.
안재광 기자 ahnj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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