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 후 3개월 정도 지난 어느 날 영희에게서 전화가 왔다.
“교수님, 죄송합니다. 회사를 그만 두어야할 것 같아요. ... 엄마가 그만 다니라셔요.”
영희는 어려서부터 하반신이 마비되어 휠체어를 타고 생활했던 학생이었다. 몸이 약해 늘 감기를 달고 살긴 했지만 대학교를 다니면서 한번도 지각, 결석을 하지 않았던 의지가 굳은 똑똑한 친구였다.
“왜? 어디 아프니?”
“아니요. 아픈 데는 없고요. 엄마가 회사에 다니면 기초생활수급자에서 제외되기 때문에 병원비가 더 들어 결국은 손해이니 회사를 그만 다니고 가난하게 살자고 하셔요. 저는 회사생활이 너무 재미있는데 평생 아무런 직장생활도 못할 것 같아 너무 힘들어요.”
영희와 같은 지체장애인들은 몸이 약하거나 다른 합병증으로 병원치료를 많이 받게 되어 가계에 미치는 의료비 부담이 매우 크다. 물론 정부에서 장애인에게 의료비를 지원해주고 있으나, 가구 경제 수준을 적용하여 지원하고 있기 때문에 영희가 직장을 다니게 되면 의료비 혜택이 줄어들어 차라리 직장을 다니지 않는 편이 현실적으로 도움이 된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장애인들에게 취업은 비장애인들의 취업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장애인들이 사회의 일원으로 참여하여 경제활동을 하게 되면 스스로 삶의 질을 높이고, 능동적으로 삶을 영위하면서 살아가게 된다. 하지만, 영희의 경우 바라던 직장에 취업도 하고 비장애인과 같은 대우를 받으며 직장생활을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려운 가정 형편의 장애인이라서 감당해야하는 경제적 문제로 인해 부득이하게 직장을 포기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보건복지부와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2017년 장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15세이상 장애인 취업자 비율은 36.9%로 비장애인의 절반수준에 불과하고, 월평균 소득은 171만원으로 전국 임금근로자 평균 243만원의 70%에 그치고 있다. 특히, 가구주가 장애인인 경우 가구의 상대적 빈곤률은 58.5%나 된다. 이러한 열악한 경제력으로 인해 장애인들이 적극적인 치료를 받기 곤란해지면서 장애가 지속되거나 악화되는 현상과 가난의 대물림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정부의 장애인 고용 정책은 주로 장애인들의 노동시장 진입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에 따르면 2017년도 1분기는 전년 동분기 대비 구인수, 구직자수 및 취업자수가 모두 증가하였다. 하지만 취업 장애인 중 상시근로자는 26.7%에 불과하고, 42%가 일용직이나 임시직이다. 취업은 했지만 불안한 지위의 장애인 근로자는 2명중 1명꼴로 추산된다. 이러한 상태의 고용률 증가로는 장애인들의 삶이 개선되기 어렵다고 판단된다. 장애인 고용 현실은 취직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근로조건도 열악하며, 단순 반복 작업을 수행하는 직업이 대부분이어서 장애인들의 자아존중감이나 생활만족도는 그리 높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단순 반복 업무 대부분은 기본적으로 기계의 몫이 될 것이다. 현재의 장애인들이 주로 담당하는 일들이 이 분야라면 장애인 직업교육은 각각의 장애 특성을 고려하여 적합한 산업전문 분야 교육과 창의력, 문제해결능력, 소통능력, 협동심 등을 키워 양적 성장을 기반으로 한 질적 성장이 그 목적이 되어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특별한 배려’로 여겨지고 있는 장애인의 취업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친구이자 동료의 기본권으로 되돌려 주어야 할 것이다. 장애인들이 지역사회와 직장사회에서 비장애인들과 함께 적극적 활동과 참여를 통해 살아갈 수 있도록 하며, 직업을 통한 소득 보장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직업을 통한 장애인들의 안정적 소득 보장과 현실을 고려한 유연하고 적합하며 정의적인 지원 제도는 장애인들의 독자적 자립과 자아 존중감을 높이는 동시에 정부의 복지비용 절감등 많은 긍정적 반향을 불러올 것이며, 이것이 장애인복지정책을 구현하는 가장 합리적인 방안 중 하나일 것으로 확신한다.
/국립한국복지대학교 교수 임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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