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망 관리도 못하면서…반쪽짜리 5G 상용화 강행하는 정부·업계

입력 2018-11-27 17:45  

5G 서비스 '과속' 논란
'실속 없는' 세계 최초 상용화

내달 1일 첫 전파 쏘지만 출시되는 단말기 고작 3000대
'LTE보다 20배 빠르다' 홍보…실제로는 20~30% 빠른 수준
뚜렷한 수익모델도 못찾아

내년 3월 상용화 계획 수정…정부·업계 3개월 앞당겨 서비스
이낙연 총리 "IT강국 민낯 드러내…세계 최초 자랑말고 내실 다져야"



[ 김태훈/이승우 기자 ]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통신 3사가 다음달 1일 5세대(5G) 이동통신 전파를 일제히 처음 발사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통신업체들은 KT 아현지사 통신구 화재 여파로 송출 관련 별도 행사를 취소했지만 이날 쏘는 전파가 ‘세계 최초 상용화’의 의미를 지닌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속내를 들여다보면 ‘과속’이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이번에 출시되는 5G 단말기는 스마트폰이 아니다. PC에 연결해 사용하는 동글(dongle·모바일 라우터) 방식으로 통신 3사 전체 물량이 3000대에 불과하다. 20배 빠를 것이라고 홍보했던 5G 속도도 기존 LTE(4세대 이동통신)보다 20~30% 빠른 수준에 그칠 전망이다. ‘반쪽짜리’ 세계 최초 상용화라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허술한 통신망 관리로 발생한 KT 아현지사 통신구 화재사고는 큰 피해와 대혼란을 초래했다. 일각에선 내실 없고 겉만 화려한 5G 서비스 조기 상용화도 부실한 ‘정보기술(IT) 강국 코리아’의 맨얼굴을 보여줄지 모른다고 우려했다.

단말기 3000대, 속도도 LTE와 비슷

동글 방식의 5G 서비스용 단말기는 다음달 1일 나온다. 동글이 5G 신호를 와이파이로 바꿔주면 스마트폰 태블릿 등으로 접속해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다.

5G 네트워크를 이용할 수 있는 지역은 서울에서도 일부 번화가로 한정된다. 5G 주파수가 닿지 않는 지역에서는 LTE망을 이용해야 해 5G 장점을 제대로 살리기 어렵다. 세계 최초 상용화의 의미가 퇴색되는 이유다.

한 통신사 관계자는 “일반 소비자가 아니라 기업을 대상으로 서비스를 판매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일반 소비자가 쓸 수 있는 5G 스마트폰은 내년 3월께 나온다.

처음 서비스되는 5G의 속도 역시 논란이다. 5G는 이론적으로 LTE 대비 20배 빠른 속도를 낼 수 있지만 다음달 서비스되는 지역의 5G 속도는 초당 최대 1.0~1.3기가비트(Gbps) 수준이다. 최신 LTE 스마트폰에서 초당 최대 1Gbps 속도를 내는 기술이 나온 것을 고려하면 5G망을 써도 고작 20~30% 빨라진 효과밖에 누리지 못한다.

5G 네트워크 속도가 지금까지 알려진 것보다 빠르지 않은 이유는 표준이 완성되지 않아서다. 5G는 기존 저대역 주파수인 3.5기가헤르츠(GHz)는 물론 28GHz 초고주파 대역을 사용해 속도를 높일 예정이다. 하지만 초고주파 대역과 관련한 표준은 내년 하반기에나 마련된다. 관련 장비도 아직 나오지 않았다.


“5G 비즈니스 해답 아직 못 찾아”

LTE 서비스는 2011년 7월 상용화됐고 이듬해 3월 전국망이 구축됐다. 전국망 구축까지 채 1년도 걸리지 않았다. 4G 시장을 선점하려는 통신 3사 간 경쟁이 치열했고 고화질 영상을 보기 위해 속도가 빨라진 LTE를 찾는 소비자도 많았다.

LTE 도입 때와 달리 5G에서는 소비자를 끌어당길 차별점을 찾기 어렵다는 게 통신업계의 공통된 고민이다. 5G의 가장 큰 장점은 LTE 대비 최대 20배 빠른 속도다. 하지만 고화질 영상 다운로드나 스트리밍은 기존 LTE 네트워크에서도 별다른 문제 없이 가능하다.

5G의 또 다른 차별점은 네트워크 반응 속도가 0.2초 이하로 떨어지는 초저지연 기술이다. 자율주행차,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등에 활용될 수 있으나 소비자가 기꺼이 지갑을 열게 할 수준의 서비스는 나오지 않았다.

5G에선 B2C(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 사업보다 B2B(기업 간 거래) 사업이 활성화할 것이란 전망도 나왔지만 뚜렷한 비즈니스 모델을 내놓은 통신사는 없다.

뚜렷한 수익모델을 찾지 못하다 보니 5G 전국망 구축까지 크게 늦춰질 것이라는 전망마저 나온다. 한 통신사 관계자는 “5G 전국망 설치까지 2~3년은 걸릴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상용화 시기 앞당긴 정부

통신업체들은 당초 내년 3월께 5G 스마트폰이 나오는 시기에 맞춰 상용 서비스를 준비해왔다. 상용화 시기를 3개월가량 앞당긴 배경에는 과기정통부의 의지가 있었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전했다. 미국 이동통신사 버라이즌이 지난달 1일부터 로스앤젤레스, 휴스턴 등 일부 지역에서 집안에서만 사용하는 고정형 방식(FWA)의 5G 서비스를 시작하며 선수를 치자 ‘세계 최초 상용화’라는 상징을 놓치지 않으려고 정부와 업체들이 상용화를 서둘렀다는 후문이다.

유영민 과기정통부 장관은 그동안 세계 최초 5G 상용화를 주요 성과로 삼겠다는 의지를 수차례 강조했다. 지난 19일 서울에서 열린 한 행사에서 “스마트폰을 활용한 5G 상용화 목표는 내년 3월 말이지만 12월 동글 형태 5G를 상용화의 출발점으로 봐도 될 것”이라고 했다. 버라이즌이 제대로 된 요금상품 없이 서비스만 시작한 것과 달리 국내에서는 단말기, 네트워크, 요금 및 가입자 등의 요건을 모두 갖추기 때문에 제대로 된 세계 최초 상용화라고 부를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2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5G 세계 최초 상용화라는 성과에 치중하는 정부와 통신사들의 행보를 따끔하게 지적했다. 이 총리는 “이번 KT 통신망 장애는 이른바 초연결 사회의 초공포를 예고하며 IT 강국 대한민국의 맨얼굴을 드러냈다”며 “5G를 세계 최초로 상용화한다고 자랑하지만 그 내실이 어떤지를 냉철하게 인정하고 확실히 보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태훈/이승우 기자 taeh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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