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영식 기자 ] 2014년 첫날, 국회는 여론의 거센 비판을 받으며 한 해를 시작했다. 그해에 집행할 예산안을 법정시한 한 달을 넘긴 1월1일 새벽에 처리했기 때문이다. 한 해 전인 2013년에도 같은 일이 벌어졌다. 예산안이 2년 연속 해를 넘겨 처리되자 질타가 쏟아졌다.
다급해진 여야는 대책 마련에 머리를 맞댔다. 우선 국가재정법을 고쳐 예산 심사 기간을 늘렸다. 나라 살림을 좀 더 세밀하게 심사하겠다며 정부의 예산안 국회 제출 시기를 앞당겼다. 회계연도 개시 90일 전까지 제출토록 한 것을 ‘120일 전까지’로 고쳤다.
‘국회선진화법’을 통해 예산안 자동부의 제도를 도입했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가 11월30일까지 심사를 마치지 못하면 정부 원안을 본회의에 회부해 12월2일까지 처리하도록 못박은 것이다. 그럼에도 ‘날림’ 예산 심사는 여전했다. 예산안이 법정시한 내에 처리된 것은 2014년뿐이었다. 2015년부터 3년 연속 법정시한을 넘겼다.
정기국회 땐 예산에 집중해야
정부가 매년 9월1일 시작하는 정기국회 전에 예산안을 제출하는데도 ‘늑장 처리’라는 고질병이 되풀이되는 주된 요인으로 국정감사가 꼽힌다. 국감은 대개 10월 중 약 20일간 실시된다. 국감 준비에 바쁜 국회의원들에게 예산안이 눈에 들어올 리 없다. 제대로 된 예산 심사가 이뤄지게 하려면 국감 시기를 조정해야 한다. 정기국회 땐 예산안 심사에 집중하도록 하는 게 옳다.
국정감사법에는 ‘국감은 상임위별로 정기국회 이전에 끝내되, 본회의 의결 땐 정기국회 기간 중에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원칙적으로 정기국회 이전에 국감을 실시하고, 예외적으로 정기국회 때 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정기국회 땐 예산안과 예산 부수법안 심사에 집중하라는 취지다. 그런데도 국회가 국감을 정기국회 때 몰아서 하는 관행에 중독돼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11월 초는 돼야 예산정국이 시작된다. 예산안의 본회의 처리까지 한 달 동안 시간이 있지만, 여야 정당이 정쟁이라도 벌이면 심사기간은 더 짧아진다. 그러다 보니 매년 시한에 쫓겨 초(秒)치기·날림·부실 예산 심사가 되풀이돼 온 것이다. 게다가 의원들은 해마다 막판 1조~2조원 규모의 지역 민원성 예산까지 밀어넣는다. 예산안을 만신창이 누더기로 만들고야 만다. 경제적 타당성과 시급성 등을 제대로 따지지 않고 밀실에서 여야 간 주고받기식으로 끼워 넣는 것을 ‘예산 심사’라고 부를 수는 없다.
예산 심사 못잖은 '날림 결산'
국회의 결산안 늑장 심사도 문제다. 국회가 2004년 결산 심사 제도를 도입한 것은 전년도에 지출한 예산 내용을 들여다본 뒤 문제가 드러나면 정부에 시정을 요구하고, 다음 연도 예산에 반영하도록 하자는 취지였다. 그런데 지금까지 2011년만 빼고 처리 시한(정기국회 시작 전)을 지키지 않았다. 올해는 석 달 가까이 방치돼 있다.
집안 살림도 이렇게 하지는 않는다. 대부분 주부는 한푼이라도 아끼기 위해 가계부를 적고, 돈을 어떻게 썼는지 살펴본다. 소득에 맞게 지출 계획도 세우고, 실현 가능한지 등을 따져본다. 나라 예산은 더 말할 게 없다. 정부가 나라 살림을 제대로 했는지, 예산안에 낭비 요인은 없는지 등을 제대로 살피는 것이야말로 국회의원들의 중요한 임무 가운데 하나다.
이런 임무를 대놓고 소홀히 하면서 무엇이 잘못인지 진지한 반성도 없다. 이보다 더한 배임(背任)이 어디 있겠는가. 그런 국회의원들이 치열한 경쟁 현장에서 생존 경쟁을 벌이는 기업인들의 고독한 경영의사 결정을 ‘배임’으로 처벌하는 악법을 쏟아내는 데는 주저함이 없다. 더 이상 두고볼 수 없는 지경이다.
ysho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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