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 해당하는 1단엔진 자체 제작
당초 목표 140초보다 오래 날아
최고 고도 209㎞까지 도달
누리호 정식 발사는 2021년
[ 송형석 기자 ]
28일 오후 4시 전남 고흥 나로우주센터. 태극기 문양과 ‘대한민국’이라는 글자를 새긴 길이 25.8m짜리 발사체가 힘차게 불을 뿜었다. 굉음을 내면서 하늘 높이 솟아오르는 발사체를 바라보던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엔지니어들 사이에서 함성이 터져나왔다. 1990년 시작된 대한민국의 발사체 개발사에 한 획을 그은 순간이었다.
이날 쏘아올린 시험발사체는 독자기술로 개발한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에 쓰일 75t급 액체엔진을 테스트하기 위해 제작됐다. 시험발사체를 성공적으로 하늘로 쏘아올리면서 ‘발사체 독립’의 8부 능선을 넘어섰다는 평가가 나온다. 해외 선진국 기술을 빌리지 않고도 독자적인 우주 탐사가 가능한 날이 머지않았다는 의미다.
독자기술로 개발한 첫 발사체
52.1t 무게의 시험발사체는 당초 계획대로 151초간 하늘을 날아오른 뒤 엔진 가동을 멈췄다. 발사체의 최고 고도는 209㎞였으며 제주와 일본 오키나와 사이 공해에 떨어졌다. 이번 시험의 성패를 가르는 기준은 ‘연소 시간’이었다. 목표로 한 140초를 넘어선 만큼 엔진 성능엔 문제가 없음이 밝혀졌다는 설명이다.
이날 발사를 지켜 본 이진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1차관은 “오늘 시험발사체를 통해 누리호 개발을 위한 기술적 준비가 차질 없이 이뤄지고 있음을 확인했다”며 “우리 발사체로 우리 위성을 발사하는 우주 독립의 날까지 최선을 다하자”고 말했다.
과학계가 이번 발사에 주목한 것은 한국형 발사체의 ‘심장’에 해당하는 1단 엔진을 처음으로 자체 제작해서다. 2013년 쏘아올린 나로호는 1단 엔진을 러시아 기술자들이 제작했다. 현재 세계에서 자체적으로 발사체를 만들 수 있는 나라는 미국(1958년), 프랑스(1965년), 일본(1970년), 중국(1970년) 등 10개국에 불과하다.
엔진 내부에서 눈에 띄는 장치는 이번에 처음으로 국산화한 터보펌프다. 인체의 심장과 같다. 저장된 액체연료와 영하 183도의 초저온 상태 산화제를 고압으로 연소기에 공급하는 게 이 장치의 역할이다. 나로호 개발사업을 진행하면서 러시아로부터 터보펌프 제작 기술을 확보했다.
누리호의 정식 발사는 2021년이다. 인공위성을 고도 600~800㎞ 저궤도에 올려놓는 게 목표다. 3단 발사체가 차례로 떨어져 나오면서 인공위성을 하늘로 올려보내는 방식이다. 시험한 75t급 엔진 4기를 묶어 1단 로켓이 제작된다. 그 위에 같은 엔진 1기를 붙여 2단 발사체를 구성한다. 3단에 들어가는 엔진은 7t급으로 별도로 제작할 예정이다.
한국 발사체 개발에 30년 걸려
액체엔진 앞에 붙는 ‘75t급’이란 말은 해당 무게를 하늘로 들어올릴 힘을 갖췄다는 의미다. 여러 개의 엔진을 묶어 중형 항공기 무게와 엇비슷한 200t의 누리호와 1.5t짜리 인공위성을 지상에서 들어올릴 수 있는 힘을 확보한다.
발사체는 각종 인공위성을 궤도에 진입시키는 수단이다. 발사체에 함께 실은 연료와 산화제를 엔진 내부로 공급하면 연소가 일어난다. 여기서 나온 고온·고압의 가스가 분출할 때 힘으로 지구를 벗어나 우주로 나아간다.
로켓은 사용하는 연료에 따라 액체로켓과 고체로켓으로 나뉜다. 고체로켓은 고체 추진제를 내장한 로켓으로 개발이 비교적 간단하고 추진력을 내기 쉽다. 액체로켓은 필요할 때 엔진을 끄고 켜는 것이 가능해 로켓을 정밀하게 움직일 수 있다.
대부분 우주발사체에는 액체연료가 쓰인다.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가 이끄는 블루오리진의 뉴 글렌, 일론 머스크 테슬라 창업자가 진두지휘하는 스페이스X의 팰컨9 등이 대표적이다. 한국은 미국과의 방위협정 때문에 고체엔진 개발이 불가능하다. 고체엔진 발사체가 군사용으로 쓰일 가능성이 있어서다.
한국의 발사체 개발은 약 30년 전인 1990년 시작됐다. 배정된 예산이 28억5000만원에 불과했다. 이번 한국형 발사체 프로젝트는 2010년부터 가동했으며 투입한 예산도 총 1조9572억원에 달한다.
송형석 기자 clic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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