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적쇄신 고통스럽지만 명분 있으면 좌고우면 안할 것
한국당 기득권·웰빙정당 이미지 탈피 아직 갈 길 멀어
사회단체와 손잡고 '反文연대' 플랫폼 구축하겠다
문재인 정권 동력 약화…한국당이 정책 주도권 가져올 것
대통령이 노동계와 결별하면 적극 돕겠다
[ 하헌형/박종필 기자 ]
취임 4개월을 넘긴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의 말투에선 자신감이 묻어났다. 김 위원장을 국회에서 만난 29일 한국당 지지율은 26.2%(리얼미터 조사)로, 그가 취임할 당시(18%대)보다 10%포인트 가까이 뛰었다. 김 위원장은 “‘기득권·웰빙 정당’ 이미지를 아직 다 지우지 못해 갈 길이 멀다”면서도 “이젠 정책 주도권을 어느 정도 확보할 수 있게 됐다”고 했다.
한국당은 지난달 말부터 인적 쇄신의 일환으로 당 소속 전국 당협위원장 교체를 위해 당무 감사를 벌이고 있다. 감사를 통해 교체되는 당협위원장은 2020년 총선에서 공천을 받기가 사실상 어렵다. 김 위원장은 “사람을 내보내는 일은 고통스럽지만, 명분만 있다면 좌고우면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임기 반환점을 돈 김 위원장을 만나 당 개혁 과정에서 느낀 소회와 향후 계획을 들어봤다.
▶당내 계파 갈등이 다시 분출되는 분위기입니다.
“외부에서 보는 것처럼 심각한 것은 아닙니다. 비대위가 특정 계파 편을 든다는 얘기도 나오는데, 저는 균형을 잡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적 쇄신 작업은 언제 마무리됩니까.
“내년 2월 말 전당대회를 치를 계획이니 1월 중순까지 당협위원장 교체와 전당대회 룰(규칙) 개정을 마칠 계획입니다.”
▶기준이 있습니까.
“한국당은 2016년 총선 공천에서 ‘선거에서 당이 져도 좋으니 우리 계파 사람만 당선되면 된다’는 계파 패권주의가 일면서 공천 파동을 겪었지요. 최소한 이런 병폐는 없애야 합니다. 계파 보스 밑에서 안주하는 의원은 이제 한국당에 필요없습니다.”
▶반발이 있지 않겠습니까.
“있겠죠. 하지만 당을 혁신하기 위한 제 나름의 명분이 있습니다. 사람 내보내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명분이 있으면 밀어붙이는 게 저 같은 선생(현 국민대 명예교수)들 특징입니다.”
▶정당정치 무대에 나선 것은 처음입니다.
“일반 당원이나 국민이 생각하는 개혁 스케줄이 저와 다르다는 게 가장 힘들었습니다. 밖에선 ‘왜 인적 청산부터 안 하느냐’고 비판했지요. 그런 얘길 들을 때마다 당혹스러웠습니다. 저는 그보다 당의 가치와 비전을 정립하는 게 먼저라고 봤습니다. 그래서 내놓은 게 이달 중순 발표한 ‘i노믹스’입니다.”
▶한국당 지지율은 정체 상태입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한국당은 아예 국민 관심 밖에 있었습니다. 지지율은 그렇게 쉽게 오르는 게 아닙니다. 저쪽(더불어민주당)이 내려간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우리가 오른다면 제대로 된 개혁을 할 수 있겠습니까.”
▶지금은 달라졌습니까.
“지지율이 20%대 초중반으로 오르면서 정책 주도권을 어느 정도 쥘 수 있는 수준은 됐다고 봅니다. i노믹스를 발표하면서 당내에 자유시장경제에 대한 공감대가 폭넓게 형성됐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한국당의 대(對)정부, 대여 전투력을 끌어올리는 게 제 임무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조기 ‘레임덕’(권력 누수)에 빠져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위기다, 아니다’ 할 것 없이 국정 운영을 잘못하고 있는 건 사실입니다. 문 대통령의 경제·사회에 대한 인식이 크게 잘못돼 있어요. 경제 정책만 해도 그렇습니다. ‘소득주도성장’이란 게 우리 경제엔 전혀 맞지 않는 옷 같은 겁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봅니까.
“문 대통령의 상황 인식에 문제가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고 얘기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참모 인사가 잘못됐거나 청와대 운영 시스템이 망가진 겁니다. 대통령에게 직언할 수 있는 ‘진짜 실세’가 있어야 합니다. 임종석 비서실장도 진짜 실세라고 보긴 어렵지요.”
▶‘정치인 김병준’으로서 목표가 있습니까.
“이 나라를 제가 희망하는 나라로, 원하는 세상으로 바꾸고 싶은 의지와 욕심은 있습니다. 지금껏 ‘정치인으로서 뭐가 되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어요. 어쩌다 보니 청와대 정책실장을 맡고, 국무총리로 지명되고…. 이번엔 한국당 비대위원장까지 맡았지요.”
▶처음에는 고사했다고 들었습니다.
“비대위원장 직을 처음 제안받았을 때도 ‘나 말고 다른 분이 하면 좋겠다’고 답했습니다. 진심이었지요. 결국 아무도 안 한다고 손사래를 쳐서 제가 오게 된 겁니다.”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습니까.
“이젠 정치에서 발을 빼긴 어려울 거 같습니다.”
▶대권이나 한국당 당권을 염두에 둔 발언 같습니다.
“당을 책임졌던 사람으로서 당을 해치고 물러나는 게 아니라면 (정치권 안팎에서) 뭐든 더 하라고 하지 않겠습니까. 어디 가서 심부름이라도 해야겠죠.”
▶한국당은 여전히 권위주의적이란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답답합니다. i노믹스는 개인의 자유를 바탕으로 한 다양성을 추구합니다. 막춤을 추더라도 한 번 춰 보라는 겁니다. i노믹스가 제대로만 홍보 되면 젊은 층도 한국당 지지로 돌아설 거라고 확신합니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가 며칠 전에도 ‘20년 집권론’을 언급했습니다.
“야당은 물론 국민에게도 예의가 없는 발언입니다. 자기혁신을 하면서 그런 얘길 하면 괜찮습니다. 하지만 민주당은 한국당 못지않은 중병 환자입니다. 2016년 김종인 비대위 체제 때 잘린 사람이 당대표까지 하고 있지 않습니까.”
▶민주당을 어떻게 평가합니까.
“한국당이 여러 차례 실수를 하면서 어부지리로 권력을 잡은 것뿐이지요. 민주당도 변한 게 없다는 얘깁니다. 한국당은 스스로 환자란 사실을 인지하고 병을 고치려는 노력을 하고 있지요. 민주당은 중병이 들었다는 사실도 모르는 것 같습니다.”
▶정부가 노동계에 끌려간다는 비판이 있습니다.
“문 대통령은 노동계와 결별한다는 각오로 노동 개혁에 나서야 합니다. 노무현 정부 때는 노동계와 갈라선다는 각오로 각을 세웠지요. 그래서 대통령 지지율이 떨어지긴 했지만 할 일은 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노동계와 시민단체가 압력을 가해도 국민을 향해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노동 개혁에 나선다면 한국당이 적극적으로 돕겠습니다.”
▶김무성·홍준표 전 대표가 차기 당대표에 도전할 것이란 관측이 나옵니다.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있습니다. 홍 전 대표도 당장 전당대회에 출마하겠다는 얘기를 한 게 아닙니다. 유튜브 방송활동을 하겠다는 정도입니다. 그게 당에 도움이 되길 바랄 뿐이지요.”
▶보수 가치의 회복은 가능할까요.
“개인 자율에 바탕을 둔 다양성을 회복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보수 네트워크를 강화해야 합니다. ‘반문(反文) 연대’ 이름으로 보수 정당과 시민사회단체, 싱크탱크까지 아우르는 플랫폼을 만들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야 계파 정치를 끝내고 정책 혁신을 주도할 수 있습니다.”
■김병준 한국당 비대위원장은
△1954년 경북 고령 출생
△1972년 대구상고 졸업
△1976년 영남대 정치학과 졸업
△1984년 미국 델라웨어대 정치학 박사
△1986~2018년 국민대 행정정책학부 교수
△1998~2002년 지방자치경영연구소 이사장
△2003~2004년 대통령직속 정부혁신· 지방분권위원회 위원장
△2004~2006년 청와대 정책실장
△2006년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
△2006~2008년 청와대 정책특별보좌관· 정책기획위원장
△2018년~국민대 명예교수
△2018년~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
하헌형/박종필 기자 hh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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