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정현 문화부 기자) 걷기와 독서. 어울리지 않는 조합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책을 낸 배우 하정우의 ‘걷기 예찬’ <걷는 사람, 하정우>(문학동네)를 읽다 눈에 들어온 장이 있었습니다. 제목이 ‘걷는 자들을 위한 수요 독서클럽’입니다. 늘 함께 걷는 친구들과 서로에게 자극을 주는 관계로 남고 싶어 독서모임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매주 책 한 권을 읽고 일주일에 한번 만나 얘기를 나누는 겁니다. 발제자도 없고 토론을 하자는 거? 아닙니다. 슬슬 걸어서 맥주 한 잔 마실 수 있는 장소에 모여 책을 읽은 느낌을 자유롭게 얘기하는 시간입니다.
독서와 걷기의 공통점을 언급한 부분에서 무릎을 쳤습니다. 그가 집어 낸 공통점은 “그럴 시간이 없다”는 핑계를 대기 쉽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요. 하루에 20쪽을 읽고, 30분 걷는 걸을 시간도 없나요.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2017 국민독서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일반 도서(교과서, 학습참고서, 수험서, 잡지, 만화 제외)를 1권이라도 읽은 성인의 비율(독서율)은 59.9%였습니다. 성인 10명 중 4명은 1년에 책을 1권도 읽지 않는다는 겁니다. 책 읽기를 가장 어렵게 하는 요인으로는 역시 성인과 학생 모두 ‘일(학교·학원) 때문에 시간이 없다’는 이유를 가장 많이 들었습니다.
걷기도 그렇습니다. 하정우 배우처럼 강남에서 마포까지 걸어서 출근한다고 하면, 매일 하루 평균 3만보를 걷는다고 하면 주변에서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이 “그럴 시간이 있어?”일 것 같습니다. 조금 일찍 움직이고 틈을 내면 되는데 말입니다. 혹시 시간이 없는 게 아니라 그저 귀찮은 건 아닐까요. ‘걷는 사람 하정우’도 걷기 싫을 때가 있습니다. 그저 누워 있고 싶을 때 그는 몸을 일으킵니다. “단순한 행동과 결심이 훨씬 더 힘이 세다. 일단 몸을 일으키는 것. 다리를 뻗어 한 발만 내디뎌보는 것.” 독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단 책을 들고 한 장만 넘겨 보는 것입니다.
하정우는 책에서 “독서모임에서 헤어져 돌아오는 길이면 어쩐지 더 좋은 삶을 살고 싶은 마음과 함께 서로의 일과 삶에 대한 응원의 마음이 차올랐다”고 합니다. 지난주 열린 출간 간담회에서도 책을 대하는 그의 태도를 엿볼 수 있었습니다. 그는 “책은 단순히 아날로그적인 사물이 아니라 없어져서는 안 될 삶의 필수품”이라고 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좋아한 취미가 DVD 모으기와 책을 사고 읽기였다 합니다. 자신의 연기로 채운 DVD가 쌓여가면서 “5년 마다 한번씩 책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합니다. 7년 전 ?하정우, 느낌 있다?란 책을 냈죠. 책을 쓴다는 것은 ‘기록’과 ‘소통’의 의미입니다. 그는 “정기적으로 삶을 정리해 가면서 후배들에게 연기자로서, 한 사람으로서 가이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합니다. 또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따로 하지 않기 때문에 책이라는 나만의 방식으로 대중과 소통하고 싶었다”고도 했습니다.
매일 걷고 자주 읽는 그는 자신만의 세계가 확실해 보였습니다. 그래서 좋은 배우인 거겠죠. 책의 마지막에 그는 썼습니다. “나는 기도한다. 내가 앞으로도 계속 걸어나가는 사람이기를. 어떤 상황에서도 한 발 더 내딛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기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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