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핀 기반의 소재로 활용 가능한 ‘산화 그래핀 용액’을 쉽게 다루는 기술이 나왔다. ‘고농도의 산화 그래핀 용액은 흐르지 못한다’는 문제를 푼 연구로 주목받고 있다.
UNIST(총장 정무영) 에너지 및 화학공학부의 김소연 교수팀은 꿀처럼 끈적끈적한 고분자를 첨가해 ‘산화 그래핀 용액이 잘 흐를 수 있도록’ 만들었다. 고분자를 얼마만큼 첨가해야 용액 공정에 유리한지도 밝혀내 소재의 활용범위를 크게 넓혔다.
산화 그래핀은 그래핀이 산화된 물질로, 그래핀만큼 좋은 물성을 가질 수 있는 잠재력 있는 재료다. 그래핀을 합성하는 기술은 까다롭지만, 산화 그래핀은 액정상을 형성하고 물에 분산된 용액 상태로 공정을 진행할 수 있어 훨씬 손쉽게 대량생산이 가능하다. 이런 특성 덕분에 최근 소재로서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하지만 물속에 분산된 산화 그래핀의 농도가 계속 증가하면, 점도가 급격하게 커지면서 유동성을 잃고 진흙 같이 변한다. 이는 공정 효율을 떨어뜨리는 단점으로 꼽혔는데, 김소연 교수팀은 이번 연구로 그 원리를 규명하고 제어가 가능하다는 걸 밝혀냈다.
김소연 교수(사진)는 “산화 그래핀 용액 공정의 효율을 높이려면, 고농도 산화 그래핀 용액에서도 충분한 유동성이 확보돼야 한다”며 “이번 연구에서는 고분자를 첨가하는 간단한 방법으로 용액 속에 산화 그래핀이 고르게 분산돼 잘 흐르게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고농도의 산화 그래핀 용액이 유동성을 잃는 이유는 입자들 사이에 나타나는 강한 정전기적 반발력(electrostatic repulsion) 때문이다. 산화 그래핀 표면은 음전하가 강해 입자들끼리 서로 밀어내는데, 이로 인해 한 입자가 존재하는 큰 공간(유효부피)이 필요해진다. 입자들이 많아질수록 용액 내에서 자유롭게 움직일 공간은 줄어들고, 일정 농도를 넘어서면 산화 그래핀 입자들이 꼼짝할 수 없어지는 것이다.
제1저자인 심율희 UNIST 화학공학과 석?박사통합과정 연구원은 “이 연구의 묘미는 용액의 점도를 낮추기 위해 꿀처럼 점도가 큰 고분자를 사용한다는 점”이라며 “산화 그래핀 입자와 상호작용할 수 있는 고분자를 첨가하면 고분자가 만드는 고갈인력 때문에 정전기적 반발력을 낮추고 유효부피를 줄이게 된다”고 설명했다.
고갈인력은 고분자가 자신들의 자유로운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상대적으로 큰 산화 그래핀 입자들을 끌어당기게 만드는 힘이다. 이 덕분에 산화 그래핀끼리 밀어내는 힘이 줄고 유효부피도 작아진다. 또 고분자는 산화 그래핀 표면에 흡착됨으로써 입자끼리 직접 맞닿는 걸 막아 입자가 응집되는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
연구진은 새로운 산화 그래핀 용액이 공정에 미치는 영향을 그래핀 섬유를 제작해 확인했다. 기존에는 건조 과정에서 용매가 증발하며 공극(void)가 나타나 그래핀 섬유의 전기전도도와 기계적 강도를 떨어뜨렸다. 그러나 고분자 첨가로 만든 산화 그래핀 용액을 쓰자 공극이 크게 줄어들면서 산화 그래핀이 섬유 내에서 더욱 촘촘하게 배열됐다.
김소연 교수는 “물속에서 산화 그래핀이 분산되는 현상을 체계적으로 이해하고, 분산 특성을 제어할 가능성을 제기한 데 연구 의의가 있다”며 “산화 그래핀 용액 공정의 효율을 높이고, 궁극적으로 물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산화 그래핀의 본질적인 미시적 거동 관찰이 중요하다는 것을 시사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연구는 UNIST의 신태주 교수, KAIST의 김상욱 교수와 이경은 박사도 참여했다. 연구 수행은 UNIST-PAL 빔라인과 한국연구재단의 나노소재기술개발사업, 선도연구센터지원사업, 창의연구지원사업을 통해 이뤄졌다. 연구 내용은 미국화학회(American Chemical Society)에서 발행되는 권위 있는 학술지인 ‘에이씨에스 나노(ACS Nano)’ 11월 27일자(11호)로 게재됐다.
울산=하인식 기자 hai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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