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美·英 등 45곳서 소장한 문화재 450여 점 한데 모아
국보 19점·보물 34점 포함
금속공예·청자·나전칠기부터 불교문화 대장경까지 망라
北 왕건상은 끝내 전시 불발
[ 서화동 기자 ]
국립중앙박물관을 비롯한 국내 주요 박물관과 미술관, 미국 메트로폴리탄박물관과 영국박물관 등 국내외 45개 기관이 소장한 고려 유물 450여 점이 한자리에 모였다. 국립중앙박물관이 고려 건국 1100주년을 기념해 4일 개막하는 특별전 ‘대고려 918·2018 그 찬란한 도전’(이하 대고려전)에서다.
‘대고려전’은 지난해 말 ‘삼별초와 동아시아’(제주)를 시작으로 전국의 국립박물관들이 1년 동안 10차례의 고려 관련 행사를 펼친 데 이어 대미를 장식하는 특별전이다. 전시 유물을 보면 벌린 입을 다물기 어렵다. 국보 19건, 보물 34건 등 국가지정문화재만 53건. 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은 유물 중에도 국보급, 보물급이 허다하다.
미국 메트로폴리탄박물관과 보스턴박물관, 영국박물관과 빅토리아앨버트박물관, 이탈리아동양예술박물관(주세페 투치), 일본 도쿄국립박물관과 나라국립박물관 등의 소장 유물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다. 배기동 국립중앙박물관장은 3일 언론공개회에서 “규모와 노력, 예산 등 여러 면에서 다른 전시를 압도한다”며 “앞으로 100년 내에는 다시 보기 어려운 전시”라고 자신했다.
고려미술을 총체적으로 보여주는 이번 전시는 크게 4부로 구성돼 있다. 국제도시였던 고려 수도 개경의 면모와 왕실의 권위를 상징하는 다채롭고 화려한 미술, 고려의 사찰과 불교문화, 고려인의 일상에 깊이 자리잡았던 차(茶)문화, 고려의 찬란한 기술과 디자인을 보여주는 공예미술 등이다.
고려는 개방적이고 포용적이며 다양성을 중시하는 나라였다. 특히 개경은 외국인이 많이 드나드는 국제도시였다. ‘고려사(史)’에 따르면 13세기 전반 개경에는 10만 가구가 살았다고 한다. 가구당 5명이 살았다고 치면 50만 명. 비슷한 시기 이탈리아 피렌체 인구가 10만 명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대단한 도시 규모였다. 송나라를 비롯해 거란, 여진, 몽골이 세운 원과 두루 교류했고 이들을 통해 동남아시아, 인도, 서아시아, 페르시아의 물건도 고려로 들어왔다. 전시장 첫머리에서 만나는 ‘유리 주자’는 고려 무덤의 부장품이다. 대식국(大食國) 즉 아라비아에서 온 수입품이다. 회화, 금속공예, 나전칠기, 자기 등의 수준 높은 왕실문화도 볼 수 있다.
2부에서는 경전을 옮겨 적는 사경(寫經)과 금속활자 발명의 동인이었던 불교와 관련된 각종 유물을 소개한다. 해인사에서 모셔온 경판, 크기와 모양이 다양한 불상과 불화, 불상 내부에 봉안한 불복장(佛腹藏) 등이 전시장을 가득 메웠다. 미국 영국 일본 등에 흩어진 수월관음도를 비롯한 고려 불화를 한자리에서 만나는 것도 드문 기회다. 이탈리아 동양예술박물관이 소장한 ‘아미타여래도’는 한국고등교육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5000만원을 후원해 한국 나들이가 성사됐다.
전시의 4부는 고려의 공예미술품을 만나는 자리다. 정교하고 아름다운 청자, 금동불상, 금제장신구, 은제금도금 공예품 등이 감탄사를 자아낸다. 전시를 기획한 정명희 학예연구관은 “고려는 강인하면서도 섬세한 나라였다”며 “고려가 이룬 창의성과 독자성, 통합의 성과와 예술성은 우리 안에 흐르는 또 하나의 유전자”라고 강조했다.
하나 아쉬운 것은 사제 간의 만남으로 기대가 컸던 고려 태조 왕건과 희랑대사의 만남이 이뤄지지 못한 점이다. 전시의 제1부에 마련된 독립공간에는 건칠희랑대사좌상(보물 제999호)만 있을 뿐 왕건상 자리는 비어 있다. 북한의 고려유물 대여가 이뤄지지 않은 탓이다. 왕건상은 1992년 북한 개성 현릉 외곽에서 발견된 청동좌상이다.
배 관장은 “태조 왕건상의 빈 자리가 통일을 향한 국민 모두의 마음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올해 안에 서울을 답방하면 사제 간의 만남이 성사될까. 전시는 내년 3월3일까지다. 관람료는 성인 8000원, 어린이·청소년(8∼25세) 4000원.
서화동 문화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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