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일을 중시하는 입장에서 은연중에 그 일의 힘듦을 표시할 때가 있다. 겸손함에서 그럴 때도 있지만 보통은 특별한 의도 없이 가볍게 말할 때가 대부분일 것이다. 그런 일상적인 대화에서도 가끔 마음이 뜨끔해지는 순간이 있다.
작년 3월1일 동아시아 최초의 도산전문법원으로 출범한 서울회생법원의 초대 법원장으로 부임하게 됐다. 새벽 눈길을 처음 밟는 마음으로 일을 시작했다. 함께 부임한 동료가 모두 역량이 출중한 도산전문가여서 든든하다. 그러면서도 신생 도산전문법원으로서 국민의 기대에 온전히 부응할 수 있도록 그 초석을 잘 놓아야 한다는 중압감 또한 상당해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면 깊은숨이 나오곤 한다. 그런 때 종종 낯 뜨거웠던 옛일이 생각난다.
오래전 이웃에 살던 동향 지인과 함께한 식사 자리에서의 일이다. 서로에 대한 관심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중 지인의 부인이 내 직업과 일에 관한 정중한 덕담을 했다. 그런데 쑥스러움에 그만 법관직이 다른 분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존귀한 직업으로 그저 좋기만 하진 않으며 실상은 일이 매우 고되고 힘들어 마냥 부러워할 직책은 아니라는 취지로 겸양했다.
당시 나로서는 그 부인의 말을 결코 그대로 수긍하는 모습을 보일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내가 법관이라는 것 때문에 우리 부부를 부러워해 덕담을 하는 것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별 생각 없이 그렇게 손사래를 쳤던 게 아닐까 싶다. 당시 그 부인은 사업을 하던 분이었는데 나의 대답에 아주 정색하면서 “할 수만 있다면 ‘그렇게 힘들고 어려운 일’을 자신들도 하고 싶다”고 했다.
삶을 진지하게 영위해온 사람이라면 어느 정도 깨달음이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 그 부인이 그렇게까지 무거운 말을 하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가볍게 겸양의 답변을 한 터여서 내심 부끄러운 낯빛을 감추느라 적지 않게 당황한 기억이 생생하다.
법관 초년 시절 재판 업무를 수행하면서 실감했던 일의 무게와 긴장감이 사건에 묻힌 세월이 늘어남에 따라 어느 정도 완화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러나 어느 경우에나 재판이라고 하는 엄중한 일의 무게가 가벼워질 수는 없다. 그럼에도 내가 감당하고 있는 책임에 방심이 서서히 스며들었던 것이다.
아직도 잊히지 않고 있는 그 기억은 지금도 가끔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그 이후부터는 어떤 자리에서건 내 일이 힘들고 어렵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으려고 매우 조심하며 가족에게도 주의를 부탁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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