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설의 런던줌인] 한국도 내년부터 영국 입국 전쟁서 해방?

입력 2018-12-05 08:13   수정 2018-12-05 08:22


“좋은 일이긴 하지만 갑작스럽습니다.”

영국 정부가 내년 여름부터 한국과 싱가포르 국민들이 영국 내 공항 자동출입국심사대(e-passport gate)를 통과할 수 있게 하겠다고 발표한 지난 3일(현지시간) 재영 한국 교민 사회에서 나온 반응입니다.

영국을 방문하는 한국인들(연간 40만명)의 가장 큰 불만 사항인 입국 대기 시간을 줄여준다는데 반대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실제 한국인을 포함해 비유럽연합(EU)의 국민들은 런던 공항에서 입국심사를 받는 데까지 평균 한 시간가량 걸립니다. 전자여권으로 보통 10분내 입국심사대를 통과하는 EU 회원국 국민들과 대비되죠.

영국 정부는 국적에 관계없이 입국심사 평균 대기시간을 45분으로 줄이겠다고 공언해왔습니다. 하지만 지난 7월 중 이 목표를 달성한 날은 딱 하루였습니다. 7월6일엔 목표치를 세 배 가까이 초과한 2시간 36분이 걸렸습니다. 이 때문에 영국 공항에서 수차례 녹초가 돼 본 한국인들은 70파운드(약 10만원)짜리 연간 패스트트랙 이용권을 구입합니다.

영국이 한국의 큰 민원을 해결해줬는데 교민들이 뜨뜻미지근한 반응을 보인 건 발표 시점 때문입니다. 현재 영국 보수당 정부는 수세에 몰려 있습니다.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는 지난달 25일 영국의 EU 탈퇴(브렉시트) 합의안에 서명했지만 영국 하원 비준이 불투명합니다. 열흘 새 정부 각료 중 6명이 메이 총리의 브렉시트 합의안에 반기를 들고 사퇴할 정도로 보수당은 사분오열돼 있고요. 보수당과 사실상 연립정부를 구성하고 있는 북아일랜드의 민주연합당(DUP)은 노동당과 힘을 합치겠다며 보수당과 등을 돌렸습니다. 조기 총선이나 제2 브렉시트 투표로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옵니다. 최악의 경우 아무런 합의없이 시작되는 ‘노딜 브렉시트’가 현실화될 수 있죠.

이에 맞서 영국 정부도 총공세를 시작했습니다. 일단 안으로는 공포 마케팅을 펼치고 있습니다. 영국 재무부와 영란은행이 총대를 멨습니다. 두 기관은 지난달 28일 노딜 브렉시트가 이뤄지면 영국 경제성장률이 급락할 것을 경고하는 자료를 동시에 냈습니다. 메이 총리도 지난달 말 웨일스와 스코틀랜드를 차례대로 방문해 노딜 브렉시트 이후의 혼란상을 설파했습니다.

밖으로는 유화책을 내놓고 있습니다. 브렉시트 이후 줄어들 EU와 교류를 대체하기 위해 영연방 국가와 경제 규모가 큰 미국과 일본 등을 상대로 빗장을 풀겠다는 것이죠. 작년 10월 미국과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일본 등에서 온 입국자들에게 자동출입국 시스템을 이용할 수 있게 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실행 시점은 브렉시트 이후(2019년 3월29일)입니다. 이어 이번에 한국과 싱가포르에도 입국심사대 장벽을 낮추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역시 브렉시트 이후인 내년 여름부터나 가능한 일이라고 못박았습니다.

한국 정부는 아직 시행시기가 많이 남아 영국과 세부적인 사항을 조율하고 있던 참이었습니다. 그러나 영국은 구체적인 내용을 협의하지 않고 선심쓰듯 덜컥 발표했습니다. 내년 여름부터 영국으로 들어오는 한국인들이 모두 현재의 EU 국적자들처럼 편하게 자동출입국 심사대를 이용하게 될지는 불확실합니다.

6개월 이상 영국에 머물러야 발급되는 영국 비자를 가지고 있거나 최근 2년간 네 번 이상 영국을 방문한 요건을 갖춘 사람들에게만 제한적으로 영국 자동출입국심사대를 통과할 수 있는 권리를 준다는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번에 나온 영국의 유화 제스처가 브렉시트 정국 돌파용 생색내기가 될지, 정말 한국인들이 영국 입국 전쟁에서 해방될지 지켜볼 일입니다.

런던=정인설 특파원 surisur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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