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희경 기자 ] 자생한방병원은 독립운동가 고(古) 청파 신현표(개명 후 신광열) 선생의 정신을 이어받아 민족의학을 실천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신현표 선생은 이 병원의 설립자인 신준식 자생의료재단 명예이사장의 부친이다.
민족의학 부흥 이끈 신현표 선생
신현표 선생은 1903년 함경남도 북청군에서 태어났다. 그는 9세 때 만주로 건너가 소학교와 중학교를 다녔다. 일제 만행에 의해 자행됐던 통한의 침략 역사를 보며 성장했다. 민족의 고통을 더 이상 지켜볼 수만 없다고 생각한 신현표 선생은 1927년 대진단에 들어가 중국 룽징시에서 독립운동을 시작했다. 대진단은 1920년 만주에서 조직된 독립운동단체로 단원 및 군자금 모집에 주력했다. 일제가 간도에서 활동하던 사회주의 운동가들을 검거한 제3차 간도공산당 사건으로 인해 신현표 선생은 1931년께 서대문형무소에서 10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출소 후에는 1932년 만주에서 의사 시험에 합격해 광생의원을 개원했다. 선생은 개원 후에도 비밀리에 독립운동가를 치료하는 등 독립운동을 지속했다.
선생은 독립운동을 하면서 일제의 한의학 말살 정책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일제는 전통 가치를 폄하해 식민정치의 위상을 높이고자 했다. 이 같은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서구의학을 적극적으로 보급하는 반면 한의학의 제도적인 지위를 박탈했다. 일제가 한의학을 비과학적인 미신이라고 폄하하며 핍박한 것이 대표적이다.
한의사 집안에서 성장한 신현표 선생은 일제가 한의학이 ‘비과학적인 미신’이라고 주장하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한의학의 과학적인 검증과 치료법의 표준화를 통해 민족의학의 위상을 되찾는 것을 자신의 사명으로 생각했다. 결국 해방 이후 한의학을 되살리기 위해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했고, 1957년 50세가 넘은 나이에 한의사 시험에 합격했다. 의사이자 한의사였던 신현표 선생은 객관화표준화돼 있는 양방의 장점과 풍부한 임상 경험이 장점인 한방의 접목을 통해 민족의학의 부흥을 꾀했다.
추나요법 등 발전시킨 신준식 이사장
신준식 명예이사장은 어린 시절부터 부친의 왕진을 따라다니며 의술을 어깨너머로 지켜봤다. 그리고 그의 유지를 받들기 위해 경희대 한의대에 입학했다. 입학 후 한의학 말살 정책으로 잊혔던 한방 수기요법인 추나요법을 발굴했다. 추나요법은 한의사가 손을 이용해 환자의 관절과 근육, 인대 등 인체의 해부학적 위치를 바로잡아 잘못된 자세와 체형을 교정하는 치료다. 근골격계 질환에 쓰이는 대표적인 비수술 치료법이다.
추나요법은 약 2500년 전 중국에서 시작돼 한반도에 전해졌다. 하지만 일제의 한의학 말살정책 이후 한국에서 그 이름조차 아는 사람이 드물게 된 치료법이다. 신 명예이사장은 단순히 치료법을 발굴, 복원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현대의 국내 환자들에게 맞는 치료법으로 발전시켰다.
1990년 한방 수기요법 발전을 위해 뜻을 함께한 한의사들과 한국추나의학회도 조직했다. 이를 바탕으로 1991년 대한추나학회(현 척추신경추나의학회)를 설립해 치료법을 연구, 학술적인 이론을 수립했다. 더불어 미국 중국 일본 등의 수기치료 장점을 접목해 한국인 체형에 맞는 추나요법을 완성했다. 사장돼가던 국내 고유 수기요법의 명맥을 이은 것이다.
추나요법은 지난 9월 미국 오스테오페틱의학협회(AOA, American Osteopathic Association)의 정식 보수교육 과목으로 인정받기도 했다. 기존에는 미시간주립대의 보수교육 과목으로 인정받는 정도에 그쳤지만 이제는 미국 전역의 오스테오페틱 의사(DODoctor of Osteopathic Medicine)를 대표하는 AOA의 정식 보수교육 과목으로 확대된 것이다. 신 명예이사장이 30년 가까이 한방 비수술 치료법을 표준화하고 과학적으로 검증한 성과를 미국에서 알아봤다. 최근에는 보건복지부가 추나요법 건강보험 적용을 결정하기도 했다. 한국 정부도 추나요법의 안전성·유효성 등을 인정한 것이다.
부친이 남긴 의서 ‘청파험방요결’에 담긴 처방들도 발전시켰다. 여기엔 신현표 선생이 독립운동을 하면서 유실된 가문의 비방과 선생의 진료 노하우가 담겨 있다. 현재 척추질환 치료에 자주 쓰이는 한약인 ‘청파전’의 당시 처방도 서술돼 있다. 신 명예이사장은 이를 계승해 보강하고, 그 효능을 과학적으로 규명해 지금의 ‘청파전’을 만들었다. 2000년엔 자생의료재단을 설립했다. 2013년엔 개인 자산 617억원을 출연해 국내 최대 한방 공익의료재단인 자생의료재단을 출범시켰다. 지금은 전국 20개 자생한방병의원이 공익의료재단에 속해 있다.
신현표 선생이 그래왔던 것처럼 의료 서비스가 절실한 지역을 직접 찾아가 봉사활동도 하고 있다. 자생한방병원 의료진과 임직원은 농어촌을 방문해 의료 사각지대에 있는 지역민을 대상으로 매년 맞춤형 건강상담과 한방치료를 하고 있다. 2011~2017년 의료봉사 수혜 인원은 3만6000여 명이며 봉사 인원만 1700명에 달했다. 이 밖에도 자생의료재단은 장학사업과 호국보훈 활동 등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에 매진하고 있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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