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끝 中企 "1弗 놓고 경쟁하는데, 2년새 최저임금 29% 오르면…"

입력 2018-12-05 17:34  

3대악재에 비상 걸린 중기

뿌리산업 뿌리까지 흔들린다

임금·근로시간·불황 '3대 쓰나미'
베트남으로 이전하는 등산용품사 "해외진출요? 질식 전 한국 탈출"
불황에 출혈경쟁 내몰려 고사 직전

주물·도금 등 뿌리기업 '직격탄'
영세 中企가 할 수 있는 건 인력 감축·증설 포기·해외 탈출뿐
"정책 안 바뀌면 폐업 속출할 것"



[ 김낙훈/김진수 기자 ]
수도권의 등산용품업체 A사는 내년에 공장을 베트남으로 이전하기로 했다. “최저임금의 가파른 인상과 1년 앞으로 다가온 근로시간 단축에 대한 해법을 강구하다가 선택한 대안”이라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공장 이전은 말이 해외 진출이지 사실 ‘탈출(exodus)’이라고 했다. 베트남 공장은 현지 근로자로 채울 예정이다. 국내 근로자 100여 명은 서서히 줄여 연구개발 인력 20여 명만 남길 방침이다. 이 회사 L사장은 “글로벌 시장에선 1달러를 놓고 경쟁사와 싸우는데 2년 동안 최저임금을 29% 올리는 것은 근로자를 위한 정책이 아니라 일자리를 없애는 정책”이라고 지적했다.

중소기업들이 최저임금 인상에 인력 감축과 탈출, 공장 증설 포기에 나서며 경기 전체가 위축되는 악순환의 고리가 형성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영세 뿌리기업 타격

“베트남을 생각해보지 않은 기업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한 중견기업 사장의 말이다. 임금 수준뿐 아니라 인상률 면에서도 해외 이전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얘기다. 실제 최저임금 인상률은 내년 한국 10.9%, 베트남 5.3%다. 올해는 격차가 더 컸다. 한국 16.4%, 베트남 6.5%였다. 베트남도 급격한 임금 인상의 후유증 때문에 속도조절을 하고 있는데 절대적으로 높은 임금을 받고 있는 국내에서 이보다 높은 임금을 적용하면 경쟁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베트남 등 해외로 나갈 형편이 안되는 기업들이 할 수 있는 선택은 인원 감축밖에 없다. “내년 10.9% 인상은 간당간당 유지하고 있는 회사를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하게 만들고 있다”고 말하는 중소기업인이 늘고 있다. 주로 뿌리산업과 사양산업에 속해 있어 타격은 더 크다.

서울 을지로에 있는 영세 인쇄업체 B사는 최근 직원 2명을 내보냈다. 연말인데도 캘린더와 교재 등 인쇄 수요가 늘지 않아 어쩔 수 없었다는 게 회사 대표의 말이다. 인쇄업종은 전국 1만9000여 개 업체에 8만여 명이 종사하고 있다. 10명 미만 사업장이 94%에 달할 정도로 영세하다. 김희성 인쇄정보산업협동조합 전무는 “인건비 상승과 일감 축소로 대부분 업체가 벼랑으로 몰리고 있다”며 “생존을 위해 인력을 줄이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최저임금 노동분쟁도 확산

수도권에 있는 한 농산물 가공업체는 지난 8월께 직원의 10%가량인 10명을 해고했다. 인건비 부담으로 공장 자동화 설비를 도입하면서 벌어진 일이다. 하지만 해고 직원들이 경기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 신청을 냈다. 회사는 어쩔 수 없이 해고를 번복했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노동 관련 분쟁도 크게 늘고 있다.

섬유 인쇄 조립금속 열처리 배전반 등 중소기업 업종 전반으로 고용 축소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올 들어 폐업하는 사업장 수가 늘어나는 것도 이 같은 움직임과 무관하지 않다. 최저임금의 가파른 인상은 특히 외국인 근로자를 많이 고용하는 주물 열처리 도금 등 뿌리기업들에 직격탄이 되고 있다. 서병문 한국주물공업조합 이사장은 “상당수 경영난을 겪고 있는 주물업체가 2년 연속으로 급등한 최저임금을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이라며 “정부의 정책 선회가 없으면 많은 주물업체들이 폐업 등 최악으로 치달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장증설 포기 잇따라

인천의 주물업체 K사는 지난 8년간 경쟁 심화와 경기 침체로 누적적자가 100억원에 이른다. 이 회사는 당초 첨단 공해방지시설을 갖춰 지방으로 공장을 확대 이전하려고 했으나 이를 포기했다. 내년에 최저임금이 10.9% 오르면 인건비 추가 부담이 연 1억원이 넘을 것으로 보고 있다.

충청권의 건자재업체 D사도 공장 증설을 포기했다. 이 회사 K사장은 “공장 인근에 확보한 부지에 공장을 추가로 지을 생각이었지만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이 겹치면서 공장 증설을 포기했다”며 “신규채용 대신 공장 자동화에 투자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자리안정자금 등 정부의 지원책은 효과가 크지 않다는 게 중소기업인들의 얘기다. 인천의 도금업체 K사장은 “최저임금을 적용받는 일부 외국인 근로자들은 잔업을 많이 해 월평균 250만원가량 받아가기 때문에 일자리안정자금 지원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인천·시흥=김낙훈 중소기업전문기자/김진수 기자 nh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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