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시간 폭행…죽는게 낫겠다 생각"
우발사고? 그들은 내 차 앞에 돗자리 깔고 작정한듯 기다려
[ 이수빈 기자 ]
“노조원들이 가족도 가만두지 않는다고 해 딸 생각이 나서 무릎을 꿇고 빌 수밖에 없었습니다.”
‘유성기업 노조 폭행’ 사건 피해자인 김주표 상무(49)는 5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첫 언론 인터뷰에서 “지금도 검은색 옷을 입은 사람(당시 노조원들의 복장)만 봐도 가슴이 뛰고 숨이 찬다”며 이같이 말했다. 김 상무는 지난달 22일 충남 아산 유성기업 사무실에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금속노조 유성기업지회 조합원 7명에게 집단 폭행을 당해 얼굴뼈가 부러지고 코뼈가 함몰되는 등 전치 12주의 중상을 입었다. 사건을 목격한 유성기업 직원은 경찰 조사에서 “가해자들이 김 상무의 집 주소를 읊으며 ‘가족도 가만두지 않겠다’고 말했다”고 진술했다.
김 상무는 그래서인지 인터뷰 도중에도 노조원들의 보복 가능성을 언급하며 두려움에 떨었다. 사건 직후 부인과 딸을 모처로 피신시킨 그는 “너무 두렵다. 특히 중학생 딸이 무슨 짓을 당할지 모른다고 생각하면 끔찍하다”며 “혹시 몰라 (가족에게) 병원 근처에도 오지 못하게 했다”고 전했다. 이어 “폭행 중에 노조원들이 ‘이게 끝이 아니다’는 말을 두 차례나 반복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힘겹게 사건 당시 상황을 떠올리면서 울분을 토해냈다. 가해 노조원들이 그날 작정을 하고 기다렸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우연히 일어난 폭행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회의를 마치고 사무실에서 나오는데 주차장에 대놓은 (내) 차량 앞에 노조원들이 돗자리를 깔고 앉아 있었다”며 “나를 발견하고 일제히 달려드는 모습에 서둘러 대표이사실로 뛰어들어가 문을 잠그고 숨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문을 부순 노조원들이 들이닥쳤고 무차별 폭행이 시작됐다는 게 김 상무의 설명이다.
노조에 집단 폭행당한 유성기업 상무 단독 인터뷰
"노조원들이 입었던 검은 옷만 봐도 숨 막히고 몸 떨려"
계획적 폭행이었다
노조원들 달려들기에 사무실로 피했지만 문 부수고 들어와 무차별 폭행 시작
회사 노무자료 들어있는 휴대폰 뺏고 폭행 후엔 핏자국 없애는 등 치밀했다
보복 너무 두렵다
그들이 가족도 똑같이 만들겠다고 협박…아내와 중학생 딸 병원에 못오게 했다
밤엔 잠 못자고 스트레스 너무 심해…병실 창문은 종이로 다 가렸다
김주표 유성기업 상무는 폭행이 1~2분 정도였다는 노조 측 주장도 반박했다. 그는 “1분 정도 폭행에 사람 뼈가 으스러지는 게 말이 되느냐”며 “1시간가량 폭행당하면서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 싶었다”고 했다. 김 상무는 아직도 폭행 사건 당시 노조원들처럼 검은 옷차림을 한 사람만 보면 소스라치게 놀란다고 했다. 병실 창문에는 흰색 종이를 붙여놨다. 밖에 지나가는 사람들이 보이는 것조차 괴로워서라고 했다.
김 상무의 말투는 느리고, 약간 어눌했다. 그는 “코뼈가 으스러져 숨쉬거나 말하는 게 불편하다”며 양해를 구했다. 김 상무는 “병원에 입원한 뒤 외상 후 스트레스와 불안장애로 신경정신과 치료를 병행하고 있다”며 “신경안정제를 처방받아 정신이 몽롱하다”고 말했다.
김 상무는 지난 4일 입원실에서 충남 아산경찰서 수사관들로부터 방문 조사를 받았다. 그는 “노조원들이 (자신에게) 신체적 위해를 가하려는 목적으로 미리 와서 기다리는 등 사전에 계획했으며 폭행 이후에도 회사 노무자료가 든 휴대폰을 빼았고, 현장에 남은 핏자국을 물청소하고 나가는 등 치밀했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상무는 진술서에서 “나와 가족을 폭력에서 지켜줄 수 있는지 경찰이 먼저 답을 해달라”며 “죽도록 폭행당했는데 처벌 의사를 말하는 것조차 두려워지는 세상이 원망스럽다”고 하소연했다.
8년간의 ‘노조 파괴’ 공작이 폭행의 원인이라는 노조 측 주장에 대해서도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일축했다. 김 상무는 “나는 2015년 유성기업에 입사했고, 노조가 주장하는 ‘직원 차량사고’, ‘창조컨설팅’, ‘복수노조 설립’ 등은 모두 2014년 이전에 일어난 일”이라며 “과거 노사갈등과 무관한데도 노조 측이 (자신을) 8년간의 ‘노조파괴범’으로 몰고 있다”고 했다.
김 상무는 건강을 회복해 회사에 복귀하더라도 자신을 폭행한 가해자들과 또다시 머리를 맞댈 수밖에 없는 처지라고 했다. 2010년 유성기업과 노조 측이 체결한 임금 및 단체협상(임단협)에 ‘고용보장’ 조항이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이 조항에 따르면 ‘정당한 쟁의’ 기간 중에는 회사가 조합원을 징계 또는 해고할 수 없다.
검찰은 최근 이 같은 ‘정당한 쟁의’를 넓게 해석하면서 폭력을 행사한 한 노조원을 징계한 유성기업 사측을 노동법 위반으로 기소하기도 했다. 전국금속노동조합 유성기업 지회 조합원들이 2013~2016년 폭행, 감금, 협박 등으로 받은 유죄 확정판결만 298건에 달하지만 이들의 고용이 보장되면서 가해자들과 피해자들이 여전히 한 직장에서 일하고 있다.
한 유성기업 직원은 2011년 노조원으로부터 폭행당한 뒤 경찰에 신고했다는 이유로 2012년 또다시 보복 폭행을 당하기도 했다.
김 상무는 경찰을 원망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그는 “신문을 보니 현장에서 강제 진압하다 불상사가 생기면 경찰관이 징계를 받고 손해배상까지 해줘야 한다는데 일선에 계신 분들이 할 수 있는 게 무엇이 있겠냐”며 “가슴만 아플 뿐”이라고 했다.
이수빈 기자 lsb@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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