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기자들의 '주말 사용법' (4) 오프로드
시속 5㎞도 스릴 넘치네
자갈길 지나니 물길…시트 위로 튀어오르고 '짜릿'
도심 도로는 꽃길 같네
알맞은 차와 운전법은
지프 랭글러 주로 이용하지만 무쏘·코란도 등 국산도 가능
운전대 쥘 때 엄지 힘 빼고 보호 장갑 착용해야
박기환 에머슨 케이 파트너스 대표와 함께
[ 이우상 기자 ]
조금 지난 얘기다. 뒤늦게 지면에 글이 실리는 이유는 재밌거나 특이한 것에 밀렸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평범하다고 하지만 당사자의 생각은 다르다. 안 해본 사람은 모르는 깊은 맛이 있는 경험이었다.
11월 초 비가 무섭게 내리던 어느 날 새벽. 올림픽대로를 따라 약속장소로 가는 내내 “이렇게 비가 오는데 괜찮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 알고 지내던 박기환 에머슨 케이 파트너스 대표와 함께 산을 오르기로 한 날이다. 단, 걸어서 오르는 게 아니라 차를 타고.
잠실경기장 주차장에는 회색 지프 랭글러 한 대가 비를 맞고 서 있었다. 오늘 차와 배의 역할을 해줄 박 대표의 차였다. 사륜구동에 32인치 오프로드용 타이어(루비콘 레콘에디션)까지. 우리는 포장도로가 아니라 비포장도로를 따라 산을 오를 계획이었다. 차로 물을 건너는 도하(渡河)도 예정에 있었다. 박 대표가 말했다. “이런 날 차를 타고 산에 오르다니, 우린 진짜 미친 거야!”
오프로드와 샤콘
경기 가평 칼봉산에 있는 오토캠핑장으로 향했다. ‘오토캠핑장’이라고 해서 모든 차가 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흙과 자갈 범벅인 길이 입구에서부터 우리를 맞았다. 차체가 낮은 세단이나 스포츠카가 잘못 발을 들였다가는 금세 바닥이 만신창이가 될 만한 길이었다. 운전석의 박 대표는 겁 없이 가속페달에 얹은 발에 힘을 줬다. 차가 좌우로 흔들리자 내 몸도 따라 좌우로 요동치기 시작했다. 저절로 두 손이 문 옆에 달린 손잡이로 향했다. 박 대표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목 디스크 없으시죠?”
얼마나 올랐을까. “어, 여긴 원래 물이 아니었는데.” 박 대표의 미간에 주름이 생겼다. 개울이라 하기엔 유속이 빨랐다. 깊이가 수십㎝는 될 것 같았다. 비 때문이었다. 이내 그는 “이 정도는 괜찮아요, 이런 길 많이 가 봤어요.” 직진이었다. 창문을 내리고 아래를 보니 강 위를 건너고 있다는 게 실감 났다.
“당신의 차는 빠릅니다. (대신) 내 차는 어디든 갑니다(Yours may go fast. Mine can go anywhere).” 모험 정신을 강조하는 지프의 광고 문구다. 이 말처럼 속도는 중요하지 않았다. 시속 20㎞로만 달려도 온몸이 긴장됐다. 시트 위로 몸은 자꾸만 튀어오르려 하고 길 양옆으로 뻗어 나온 나뭇가지는 끊임없이 차와 창문을 훑고 지나갔다. 창문을 열면 곧장 나뭇가지가 차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자연 속에 들어와 있다는 사실이 실감 났다. ‘영화를 보겠습니까, 아니면 영화의 일부가 되겠습니까.’ 아이맥스 영화를 볼 때 나오는 문구가 머릿속을 스쳤다. 보는 시각에 따라 차창은 생생한 영화관 스크린이 됐다. 내 발로 산을 오를 때와도 느낌이 사뭇 달랐다. 자동차 천장을 끊임없이 노크하는 빗소리가 운치를 더했다. 안 그래도 산에 들어와서부터는 바흐의 샤콘을 듣고 있었다. “오늘 비만 안 왔으면 천장 다 열고 타는 건데. 그러면 또 느낌이 다르거든요.”
오프로드는 인생길 같다
시속 20㎞도 때론 너무 빨랐다. 포장도로에서와는 전혀 다른 속도에 대한 감각이었다. 때론 시속 5㎞, 혹은 그 이하로 가야 했다. 멈춰야 할 때도 있었다. 앞길을 확인하기 위해서. “앞길을 알 수 없는 오프로드는 인생과 비슷해요. 혼자가 아니라 둘(이상)이 함께 가야 서로 의지할 수 있는 것도 비슷하죠.” 박 대표의 말이다. 앞길은 모르고 점점 길이 좁아진다면 멈춰서야 할 때다. 무턱대고 들어갔다가 막다른 길을 마주치고 설상가상으로 차를 돌릴 공간이 없으면 진퇴양난에 빠진다. ‘모험정신’을 고집하는 대신 내려서 앞길을 확인하고 와야 한다. 동승자의 존재도 중요하다. 차를 후진해야 할 상황이 발생하면 동승자가 내려 뒤를 봐줘야 한다. 주차장이나 시야가 확보되는 골목길과 달리 오프로드에서의 후진은 전혀 다른 상황이다. 급한 경사라도 있으면 거울로는 진행 방향이 보이지 않아 눈을 감고 운전하는 것과 다를 게 없다. 장애물 감지 센서는 나뭇가지 때문에 쉴 새 없이 삑삑거려 도움이 안 된다.
내려오는 길엔 캠핑장에 잠시 들러 라면을 끓여 먹었다. 차를 타고 산을 오른 뒤 빗속에서 호호 불며 먹는 라면 맛은 별미였다. 캠핑의 매력에 중독된 사람들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오프로드에서 나왔을 때 예상치 못한 경험을 했다. 포장도로가 비단길 같이 느껴졌다. 매일같이 달리던 올림픽대로가 마치 어제 새로 포장한 도로 같았다. 훨씬 더 부드럽고 편안했다. “늘 다니던 길인데 다 상대적이죠? 마치 인생길처럼요.” 오프로드란 취미는 사람을 철학자로 만드는 재주가 있는 듯했다.
가평=이우상 기자 ido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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