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동휘 정치부 기자) 아세안(동남아시아국가연합)은 세계 각 경제권역의 성장률을 얘기할 때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곳이다. 인구 6억2000만명에 그 중의 절반이 30대 미만이다. 갈수록 고령자의 인구 비중이 높아지고 있는 주요 선진국들의 눈엔 이만한 잠재력을 가진 경제존(zone)이 드물다.
아세안의 잠재력은 역설적으로 아세안의 비극과 연관돼 있다. 성장할 기회를 박탈당했기에 마지막 남은 성장처로 꼽히고 있다는 얘기다. 인도네시아, 태국, 베트남, 필리핀 등 아세안의 주요 국가들은 유럽과 동북아 고대 문명과 비교해 크게 뒤지지 않는 독자 문명을 발전시켰다. 전세계 최빈국 중 하나로 꼽히는 캄보디아만해도 앙코르와트라는 신비로운 고대문명의 정수를 남겨놨다. 그러나 그들은 근대로 접어들면서 지구의 변방으로 밀려났다.
아세안이 왜 근대문명기에 지구의 ‘핵심 플레이어’가 되지 못했느냐에 관한 질문은 향후 아세안의 발전 가능성을 가늠하는데 있어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가장 큰 원인은 서양의 강점이었다. 네덜란드가 무역의 독점과 식민지 경영을 위해 네덜란드동인도회사를 세운 게 1602년이다. 인도네시아 등 지금의 아세안 각국은 소위 ‘지리상의 발견’이라는 유럽인들의 독선에 제1 희생양이 되고 말았다. 동남아시아의 주요 섬들은 항해만으로 신대륙을 찾던 유럽의 모험가들에게 중간 기착지였고, 유럽엔 존재하지 않는 향신료 같은 존귀한 물산의 보고였다.
서양의 강점은 아세안 각국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스스로 부국강병의 길을 갈 수 있는 길은 애시당초 원천봉쇄됐다. 2차 세계대전 이후 가까스로 국가의 틀을 갖췄지만 이마저도 그들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이뤄졌다.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의 국경은 옛 식민지배자들의 합의에 따라 자의적으로 그어졌다. 수천년을 문화적 동질성을 갖고 살아 온 태평양의 여러 섬들이 한순간에 두 나라로 갈렸다. 1984년에 시작돼 1988년에 격화된 태국과 라오스 간 국경분쟁 역시 비슷한 배경을 갖고 있다. 미국과 옛 소련의 합의로 제멋대로 그어진 ‘38선’의 비극은 아세안 각국에서도 벌어졌다.
외세의 질곡을 벗은 시점을 기준으로 보면 아세안과 한국의 출발점은 같았다고 할 수 있다. 중국도 비슷하다. 오로지 일본만이 출발선을 앞당길 수 있었는데 1867년 메이지유신이란 일대 정치개혁을 통해 스스로 ‘제국의 길’을 선언한 덕분이다. 봉건적 지배체제의 역설이라고 부를만한 지방영주의 풍족한 경제적 토대, 탈중앙적 자유로운 사상의 각축 등 여러 요인을 언급할 수 있겠다.
일본을 제외하고, 동일한 출발선에 섰던 아세안은 60년 넘는 시간 동안 이렇다할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아쉽게도 오늘날의 아세안을 특징짓는 요소들은 이곳의 비극이 여전함을 상시시킨다. 정치체제는 독재 혹은 과두정에 가깝다. 인도네시아 정도가 형식적 민주주의를 달성한 것으로 자평하고 있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신정(神政)분리조차 제대로 돼 있지 않다.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는 공산당 1당 독재체제다. 태국과 브루나이는 왕정을 유지하고 있으며, 특히 태국은 군부 쿠데타가 반복되는 기이한 정치구조를 갖고 있다. 필리핀도 겉으로는 민주정이긴 하지만 독재를 특징짓는 요소들을 너무나 많이 갖고 있다.
또 한가지 아세안 각국이 공유하고 있는 또 다른 비극적인 요소는 인본주의의 결여와 우민화 정책이다. 아세안 주요 국가들의 도시를 가보면 인도(人道)가 제대로 갖추져 있지 않고, 서점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베트남의 하노이와 호찌민 거리는 모터사이클과 자동차가 뒤섞여 있는 데다 아예 인도라는 것 자체가 없는 곳들이 수두룩하다. 동남아에서 가장 발전돼 있다는 인도네시아의 수도 자카르타조차 사람보다는 차량이 우선이다. 관광 대국 태국 정도가 그나마 사람이 걸을 수 있는 인도를 마련해놨다.
라오스의 수도 비엔티안엔 서점이라는 곳이 과연 있을까 싶을 정도로 온통 음식점 간판 뿐이다. 정확한 조사를 해보지 않았기에 장담할 수는 없지만 라오스에 서점이 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책이라는 것이 매우 드문 상품이기 때문이다. 대학에서조차 복사물이 교재를 대신한다. 이 점에선 베트남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인도와 서점은 매우 드물지만, 아세안은 지구상 어떤 곳보다 맥주가 잘 팔린다. 라오스의 자랑은 ‘라오 비어’고, 이 맥주를 만드는 회사는 라오스 기업 중 매출 1위다. 라오스의 식자층들은 “맥주로 세상 근심을 잊으라며 싸고 맛있는 맥주를 공급한다는 게 정부의 핵심 정책”이라고 말할 정도다.
이 같은 ‘현대판’ 아세안의 비극은 선진국들의 무분별한 진출과 무관치 않다. 옛 식민지배국이던 유럽 각국은 과거의 연줄을 동원해 아세안에 진출했다. 일본은 더욱 영리했는데 조(兆) 단위의 전쟁 배상금을 아세안 지배층을 회유할 선물로 안기는 방식으로 경제 각 분야를 선점했다. 인도네시아만해도 도요타 등 일본차가 시장을 장악하고 있으며, 주요 딜러 회사는 인도네시아 정재계 유력 인사들과 거미줄처럼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고 한다. 이 점에선 한국도 크게 다르지 않다. 오죽했으면 “아세안의 부패 사슬이 깨지길 원치 않는다”는 말이 나올까. 부패를 사업기회로 활용하려는 이들이 있는 한 아세안의 비극은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사람중심’의 아세안 진출을 표방한 신남방정책이 이 점에서 어떤 차별적인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인가, 지켜볼 일이다.(끝) /donghui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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