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로 못찾은 업체와 소비자 연결
[ 이우상 기자 ]
지난 5월이었다. 홍한종 단골공장 대표는 서울에서 80여㎞ 떨어진 경기 여주 북내면으로 향했다. 단골공장은 실력있는 제조업체를 찾아 제품을 기획하고 판매까지 해주는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이다. 홍 대표는 차 한 대 다니기도 힘든 비포장도로를 따라 한참을 달렸다. 슬레이트 지붕 건물 몇 채가 나타났다. ‘한국제일도(韓國第一刀)’를 만든다는 명도산업이었다. 초라한 건물을 봤을 때만 해도 반신반의했다. 하지만 임정신 명도산업 대표(70)를 만나고 나니 확신이 들었다. 소매를 걷어붙인 팔에는 수많은 상처와 거뭇한 자국이 있었다. 홍 대표는 속으로 ‘아 진짜를 찾았구나’ 하는 생각이 스쳤다.
연마석 장인이 만드는 식도
단골공장은 제조 실력은 뛰어나지만 파는 재주가 없는 공장을 찾아내 소비자와 연결해 준다. ‘싼 가격’이 아니라 ‘합리적인 가격’에 생산자와 소비자를 이어준다. 브랜드 파워가 없는 제품에 소비자들은 선뜻 지갑을 열지 않았다. 단골공장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스토리 마케팅’에 나섰다. 공장의 역사와 제품에 얽힌 이야기를 스토리로 만들어 인터넷을 통해 확산시키고 있다. 제조 능력에 브랜드 가치를 얹혀주자는 시도다. 이를 통해 ‘단골’을 만들어 주는 게 목표다. 판로를 찾지 못해 경영난을 겪던 제조사가 단골공장을 만나 살아나는 사례도 생겼다.
명도산업은 오래된 회사는 아니다. 하지만 임 대표는 도루코에 15년 동안 연마석과 가위 등을 공급한 경력을 갖고 있다. 연마석을 만들던 사람들이 하나둘 일을 그만둬 국내에서 이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이제 임 대표만 남았다. 단골공장은 그의 연마석 기술에 집중해 명도산업을 소비자에게 알리고 있다. 그는 자신의 연마석으로 직접 칼을 제작하고 싶어 2016년 명도산업을 설립했다. 임 대표가 만족할 수 있는 수준의 칼이 나오기까지 칼 4만 자루가 품질 미달로 버려졌다.
임 대표는 “한국의 헨켈(독일 유명 칼 브랜드)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했다. 명도산업은 단골공장을 통해 소비자에게 소개된 뒤 매출이 40% 늘었다.
진짜배기 양말·칫솔공장
단골공장이 찾아낸 기업 준희어패럴은 20년 동안 양말만 생산했다. 권순호 준희어패럴 대표는 1998년 회사를 설립하기 전에도 20년간 양말공장에서 일했다. 단골공장은 40년 노하우와 ‘신선한’ 실을 마케팅 포인트로 삼고 있다. 실을 재고로 남기지 않는 것이 준희어패럴의 철칙이다. 원사공장에서 실을 사올 때도 갓 뽑은 실만 소량으로 구입한다. 준희어패럴 관계자는 “실도 보관된 장소의 습도와 온도에 영향을 받는데 ‘묵은 실’로 짜다 보면 변형이 생기고 색깔도 차이가 난다”고 말했다. 준희어패럴은 독자 브랜드 ‘식스삭스’를 준비하며 판로를 찾다 단골공장을 만났다.
1972년부터 칫솔을 생산한 엠아이비(구 백남물산)는 값싼 중국산 대신 비싼 국산 칫솔모, 너무 두껍지도 얇지도 않은 칫솔대 등 기본기에 충실한 제품을 40년 넘게 제조한 회사다. 단골공장은 엠아이비의 역사와 기본기를 마케팅 포인트로 내세웠다. 지난해 엠아이비는 경영이 어려운 상태였다. 백민정 엠아이비 대표는 “단골공장을 만나 판매에 도움을 받았고, 이익도 적정하게 배분해 경영상태가 좋아졌다”고 말했다.
이우상 기자 ido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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