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IST 이사회, 차기 이사회서 재논의 하기로
정부측 이사진 3명만 찬성
교수協 반대 성명 발표 등 과학계 싸늘한 여론 감안한 듯
KAIST '총장 공석' 피했지만, 해외대학과 공동연구 차질 우려
[ 송형석/윤희은 기자 ]
신성철 KAIST 총장이 당분간 총장직을 유지하게 됐다. KAIST 이사회가 정부의 총장 직무정지안에 대해 ‘결정 유보’ 판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신 총장을 둘러싼 시시비비가 가려지지 않은 상황에서 직무정지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의견이 받아들여졌다.
이사회의 이번 결정으로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성급한 판단으로 혼란을 야기했다는 비난이 거세질 전망이다. 국내외에서 과학기술계에 대한 정부의 리더십이 땅에 떨어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신성철 총장의 ‘판정승’
KAIST는 14일 오전 서울 양재동 엘타워에서 정기 이사회를 열었다. 이장무 이사장과 신 총장, 구혁채 과기정통부 미래인재정책국장 등 10명의 이사진이 참여해 신 총장 직무정지안 등 다섯 가지 안건을 논의했다. 이 이사장은 과기정통부 측 당연직 이사인 구 국장으로부터 정부 방침을 들은 뒤 참석 이사들 의견을 차례로 청취했다.
구 국장 등 3명의 정부 측 이사들은 신 총장의 직무정지를 주장했지만 다른 이사들은 좀 더 지켜보고 결정해야 한다는 의견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KAIST 교수들이 신 총장 직무정지안에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하는 등 과학계 여론이 싸늘하다는 점을 감안했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이사회 간사인 김보원 KAIST 기획처장은 “보다 깊이 있는 논의를 위해 차기 이사회에서 신 총장 문제를 다시 논의하기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차기 정기 이사회는 내년 3월에 예정돼 있지만 이 문제를 논의할지 여부는 결정되지 않았다. 적당한 시점이 되면 별도 임시 이사회를 소집하는 방안이 유력하다.
신 총장은 이사회가 끝난 뒤 “본의 아니게 KAIST와 과학기술계 많은 분께 심려를 끼쳐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신중하고 겸허한 마음으로 대학을 경영하겠다”고 말했다.
과기정통부는 지난달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감사 직후 신 총장을 횡령과 업무상 배임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고 KAIST 이사회에 총장 직무정지를 요구했다. 신 총장이 DGIST 총장으로 재임했을 때 미국 로렌스버클리국립연구소(LBNL)와 맺은 업무협약이 문제가 됐다. 국가연구비를 지원받은 후 이 중 22억원을 LBNL로 빼돌렸다는 게 과기정통부 판단이었다.
후폭풍 상당 기간 이어질 것
KAIST 이사회의 유보 결정으로 과기정통부는 곤란한 지경에 처했다. 전 정부 인사를 무리하게 ‘적폐’로 몰았다는 목소리가 더 커질 수 있어서다. 사건의 전말이 분명히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직무정지를 요청했다는 지적이 특히 뼈아프다. 과기정통부는 구체적인 자금의 사용처가 명시된 자료를 LBNL에 요청했지만 답을 받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문미옥 청와대 과학기술보좌관이 이날 과기정통부 1차관으로 임명됐다는 점도 논란거리다. 문 차관은 문재인 대통령의 측근 중 한 명으로 ‘과학계 실세’로 불린다. 과학기술계 인사들 중 상당수가 문 차관을 과학기술 분야 기관장들의 ‘가지 치기’를 배후에서 지휘한 인물로 간주하고 있다.
KAIST도 난감하긴 마찬가지다. 인공지능과 차세대 에너지 로봇 등 4차 산업혁명 관련 기술 확보를 위한 국제 연구에 불똥이 튈 수 있기 때문이다. 총장에게 ‘유보’ 꼬리표가 붙어 있는 만큼 정상적인 학교 경영이 힘들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세계 과학계에서의 위상 추락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크다. KAIST 이사회도 이 점을 꼬집었다. 김 처장은 발표문에서 “한국 과학기술의 긍지인 KAIST가 타 기관의 감사 결과에 의해 국제적 위상이 흔들리고 혼란이 야기되는 상황에 심각한 우려를 표한다”고 강조했다.
송형석/윤희은 기자 clic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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