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투기 독자개발 행보에 힘 실어야"
김형철 < 예비역 공군 중장 >
올해는 우리나라 항공우주·방위산업이 최대 위기를 맞은 해다. 이는 곧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의 위기라고도 할 수 있다. 올 들어 KAI는 마린 원 헬기 추락, 미 공군 고등훈련기(T-X) 사업 탈락, 한국형 전투기 개발(KF-X) 사업 파트너인 인도네시아의 재협상 요구 등 주력 사업인 헬기, 훈련기, 전투기 분야에 적신호가 켜졌다. 주목할 점은 이런 KAI의 어려움이 스웨덴 기업 사브(SAAB)와의 경쟁에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KAI는 미 공군 T-X 사업에 록히드마틴과 팀을 이뤘고 사브는 보잉과 팀을 이뤄 경쟁했다. 당초 록히드마틴·KAI의 T-50 기종이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예상을 뛰어넘는 저가격을 제시한 보잉·사브가 최종 낙점됐다. 미 정부의 T-X 사업자 선정 내막은 알 수 없으나, 미 제작사 간 경쟁과 미 정부의 정책적 배려가 기종 선정 배경의 전부라고 보기는 어렵다. KAI와 사브, 두 업체의 경쟁력 차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스웨덴은 군용항공 강국이다. 사브는 1930년대부터 폭격기, 전투기, 훈련기를 자체 개발해 지금까지 약 4000대의 군용기를 생산했다. 1950년대 후반에는 1000대가 넘는 군용기를 보유, 미국 소련 영국에 이어 세계 4위의 공군력을 과시하기도 했다.
반면, 우리 공군은 6·25전쟁 중 미국이 제공한 P-51 무스탕 전폭기를 필두로 F-86, F-5, F-4 등 미국산 전투기를 도입해 사용했고 스텔스 전투기 F-35의 도입을 목전에 두고 있다. 그동안 F-5와 F-16 기종을 면허생산한 경험은 있지만 본격적인 항공기 개발은 KAI가 1990년대부터 훈련기 개발에 착수, KT-1과 T-50 훈련기 400여 대를 생산한 것이 전부다.
비교되는 것은 훈련기 생산 가격이다. 사브 105 훈련기는 1961년 가격으로 21만달러인 반면 KAI의 T-50 훈련기는 2008년 기준 2100만달러다. 50년 가까운 시차와 성능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항공기 생산 가격이 무려 100배 차이를 보인다.
KAI와 사브는 각각 전투기를 개발 중이다. KAI는 2015년 KF-X 체계개발에 착수했고 2026년 개발을 완료한 후 한국형 전투기 120대를 양산한다는 계획이다. 훈련기 개발 경험밖에 없는 KAI로서는 전투기 개발과 동시에 능동 전자주사 배열(AESA) 레이더와 적외선탐색추적(IRST) 센서 등 첨단장비를 개발해야 하는 어려움에 더해 파트너인 인도네시아의 사업철수 위기에도 직면해 있다.
반면 사브는 현재 운용 중인 그리핀 CD 전투기를 그리핀 NG로 성능개량 중이다. 생산 대수가 적어 AESA 레이더와 IRST 등 첨단장비는 해외에서 도입해 통합하는 방식을 택했고, 항공모함용 전투기로 발전시키는 방안까지 검토하고 있다.
스웨덴은 국가안보 차원에서 전투기 개발을 지원하고 있다. 사브의 항공산업 역사와 능력이 KAI를 앞서는 이유다. 경제성을 이유로 해외 직구매 또는 공동생산 방식을 택한다면 항공우주·방위산업은 시작조차 할 수 없는 영역이 될 것이다.
그러나 수입 대체효과와 국내 산업 파급효과 및 40년 넘는 기간의 운용·유지비용까지 고려한다면 투자 가치가 충분한 분야이기도 하다. 미 공군 T-X 사업에서 사브에 졌지만 전투기 개발에서까지 뒤질 수는 없는 일이다. 국가적 역량과 지혜를 모아 항공우주·방위산업의 위기를 극복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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