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환대받지 못한 문재인 대통령의 '대리 조문'

입력 2018-12-16 16:31   수정 2018-12-16 16:32

<YONHAP PHOTO-5844> 고 김용균씨 빈소 찾은 이용선 시민사회수석     (태안=연합뉴스) 김소연 기자 = 이용선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이 14일 오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다 숨진 김용균씨의 빈소가 마련된 태안의료원 장례식장을 찾았다가 '태안화력 시민대책위' 관계자들의 거센 항의를 받고 있다. 2018.12.14      soyun@yna.co.kr/2018-12-14 15:22:18/ <저작권자 ⓒ 1980-2018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다짜고짜 나이는 아느냐고 따지는데 대화가 이어지질 않았습니다. 태안에 방문한 의도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지난 14일 저녁께 이용선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은 이같은 푸념을 털어놨다.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일하다 숨진 고(故) 김용균씨의 빈소를 방문한 뒤 다시 서울로 올라오는 길이었다.

조문은 첫 단추부터 잘못 꿰어졌다. 청와대는 14일 오전 문재인 대통령이 이 수석을 대신 보내 충남 태안 화력발전소에서 숨진 고 김용균씨를 애도하고 유가족을 위로하는 뜻을 전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 수석은 정작 태안의료원에 마련된 빈소에 고인의 부모를 만나지 못했다. 그는 “대통령의 지시를 받고 태안으로 내려갔지만 이미 부모님들은 서울에서 예정된 기자회견을 위해 올라오는 중이었다”고 설명했다. 급조된 조문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 씨의 부모는 같은 날 오후 민주노총 등 70개 단체로 구성된 ‘태안화력 비정규직 노동자 사망사고 진상규명 및 책임자처벌 시민대책위원회’가 준비한 기자회견에 참석했다. 고인의 어머니인 김미숙씨는 기자회견에서 “아이가 죽었다는 소리에 저희도 같이 죽었습니다. 그런 곳인 줄 알았더라면 어느 부모가 자식을 살인병기에 내몰겠어요. 저는 우리나라를 저주합니다”라며 오열했다. 문 대통령이 가장 먼저 어루만지고 싶었던 이들은 태안이 아닌 서울에 올라와 있던 고인의 부모가 아니었을까.

엇갈린 조문은 끝까지 의도와 다르게 흘러갔다. 애도의 뜻을 전하러 간 이 수석의 태도가 유가족의 화를 키웠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현장에 도착한 이 수석은 김씨 동료와 시민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의 거센 항의를 받았다. 대책위 관계자들은 “노동자들이 대통령을 만나자고 할 때는 안 오더니, 사람이 죽어야 오느냐”며 한동안 진입을 막았다. “김용균의 나이가 몇 살인지나 알고 이곳을 방문한 것이냐”고 수차례 묻기도 했다. 당황한 이 수석은 “나이 같은 것은 묻지 말라”고 답했다. 이번 사고와 관련해 기본적인 내용을 제대로 숙지하지 않고 방문했다며 항의하는 대책위 관계자들에게 “토론하자는 게 아니지 않냐”고 발언을 하기도 했다. 이같은 발언들이 논란이 일자 “표현이 잘못됐다”고 뒤늦게 수습에 나섰다.

갑작스런 한 청년 죽음에 대해 안타깝고 비통해하는 문 대통령의 진심을 의심하진 않는다. 그러나 국민을 어루만지는 일은 조금 더 세심하고 조금 더 정치(精緻)했어야 했다. 대통령을 대신해 조문을 한 참모들로부터 ‘사진 찍으러 왔느냐’ 비판하던 유가족들의 목소리는 전달이 됐을까. 아니라면 정말 큰일이다, 안가니만 못한 상황이 됐으니 말이다.

재원 기자 wonderfu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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