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창] 中, 고통 없이 도달하는 '신창타이' 없다

입력 2018-12-17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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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갈등 속 부각되는 中 부채 리스크
고도성장기 고수익 좇던 금융 붕괴 우려

박래정 < 베이징LG경제연구소 수석대표 >



세계에서 중국 기업인처럼 국내총생산(GDP) 증가율 수치에 민감한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지난 40년 지구촌 경제사에 길이 남을, 연평균 9%대 성장률이 자랑스럽기도 하겠거니와 국가통계국이 발표할 때마다 관영매체로부터 익숙하게 ‘경제학습’을 받은 덕택일 수도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2009년 8% 성장세가 위협받자 ‘바오바(保八·연 8%대 성장률 유지)’가 신문 헤드라인을 장식한 게 대표적이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40년을 숨가쁘게 달려온 중국사회에 높은 성장률에 연연해 하지 말 것을 주문한 첫 최고지도자다. 이런 기조를 반영해 2015년 총리의 정부공작(업무)보고에서 목표성장률이 처음으로 단일 수치가 아니라 ‘7% 좌우’란 범위로 공표됐다. 시 주석의 ‘신창타이(新常態) 선언’은 필자에게 “무리하지 않는 고도성장이 불가능해졌다”는 고백처럼 들렸다.

신창타이 선언은 실물시장에 “고도성장 정책을 기대하지 말라”는 경고를 날림과 동시에 금융시장에는 디레버리징(부채 정리) 압력으로 나타났다. 고도성장을 뒷받침했던 자산 투자, 그 뒷배경이 돼온 차입 게임을 줄여나가겠다는 것이다. 은행 부문이 사실상 금융시장을 지배하는 중국에서 디레버리징의 첫 표적은 은행의 부외(簿外)대출, 이른바 ‘그림자(shadow) 금융’이다. 한국사회는 ‘섀도’란 용어에서 비밀스럽고 음습한 부정적인 의미를 떠올리지만 중국의 그림자 금융은 불가피한 면이 크다.

시장금리 형성이 더뎠고, 금리 차별화가 어려우며, 채권평가기관의 신뢰도 역시 높지 않은 중국에서 채권시장은 국공채 위주로 형성돼 왔다. 주식시장도 급등락이 심해 안정적인 자금원으로 기능하기가 쉽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당국의 건전성 규제에 묶였던 은행 부문과 은행 문턱이 높아 늘 자금난에 시달려온 민영기업의 욕구가 맞아떨어진 영역이 그림자 금융이다. 은행이 이재(理財)상품을 팔아 끌어모은 재원을, 미리 투자계획을 협의해 놓은 신탁투자 쪽으로 넘기면 일반대출에 적용되는 건전성 감독을 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투자 대상이 약속한 수익률을 올리지 못할 때 벌어진다. 고성장에 익숙해 기대수익률을 높게 잡았던 실물 부문이 이자도 갚지 못하기 시작하면 위약 사태가 벌어지고, 이는 신탁투자업계 전반의 디폴트(채무 불이행) 행위로 이어진다. 국유기업에만 자금이 몰려 민영기업 자금난이 더욱 심각해진 지금이 딱 이런 상황이다. 지난주 베이징에서 만난 중국 금융회사 자금운용 전문가들은 “지도자들이 언론을 통해 민영기업 지원을 독려하고 있지만 위험을 감수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털어놨다.

특히 시기가 문제다. 미국의 보복관세로 수출 부문의 피해가 커지고 투자 및 소비심리가 가라앉으면서 베이징 금융가는 긴장하는 모양새다. 미국과의 담판에서 중국이 수세에 몰렸다는 평가가 나오는 결정적 배경이다. 결과적으로 시 주석의 신창타이 선언은 취지는 좋았지만, 구두선(口頭禪)에 그쳤음이 분명해지고 있다. 실물 부문이 고도성장기의 관행을 버리지 못했다면, 은행 부문은 고수익에 눈이 멀어 위험관리를 소홀히했다가 뒤늦게 ‘비 오자 우산을 빼앗는’ 우를 범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한국 금융회사가 지금 수준이나마 위험관리 체계를 갖춘 것은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와 은행 위기를 한꺼번에 겪으며 처절한 수업료를 낸 덕택이다. 고통 없이 도달하는 신창타이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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