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품 물고 쓰러진 채 발견
강릉·원주 병원서 치료 중
1명은 자기 이름 말해
펜션 보일러 배기통 분리된 상태
일산화탄소 정상치보다 8배 높아
현장체험학습 신청하고 여행
"가스 탐지기 없어" 人災 가능성
[ 조아란/이해성/구은서 기자 ]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본 고3 학생들이 강원 강릉으로 여행을 갔다가 참변을 당했다. 18일 강릉시 아라레이크펜션에서 서울 대성고 3학년 남학생 10명이 의식을 잃은 채 발견됐다. 이 가운데 3명이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사망했다. 경찰은 사고사에 무게를 두고 수사 중이다.
배기가스 연통 분리…일산화탄소 중독
경찰과 소방당국 등에 따르면 이날 오후 1시12분께 펜션 주인이 입에 거품을 물고 쓰러진 학생들을 발견하고 112에 신고했다. 복층 구조인 펜션 객실 1층에 6명이, 2층에 4명이 쓰러져 있었다. 경찰 관계자는 “학생들이 잠옷을 입고 있었으며 발견 당시부터 의식이 없었다”고 전했다.
이들은 강릉 아산병원, 원주세브란스병원으로 이송됐다. 그러나 김모군 등 3명은 치료를 받던 중 숨졌다. 나머지 7명도 의식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강희동 강릉아산병원 권역응급의료센터장은 “아산병원에서 치료 중인 학생 중 1명은 상태가 경미하게 호전돼 자기 이름을 말했다”며 “다른 환자들도 현재 상태에선 사망 가능성은 없어 보이지만 합병증 때문에 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학교에 현장체험학습 신청을 하고 여행을 갔다가 사고를 당했다. 서울교육청은 “교사, 부모 등 인솔자 없이 여행을 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들은 2박3일로 여행을 와 지난 17일 오후 4시께 펜션에 입실했으며 19일 퇴실 예정이었다.
경찰당국은 사고사에 무게를 두고 수사를 벌이고 있다. 소방당국 관계자는 “발견 당시 LPG 보일러 배기가스의 연통이 분리돼 있었다”며 “사건 현장에서 일산화탄소 농도가 155ppm으로 높게 측정됐다”고 밝혔다. 이는 정상 수치(20ppm)의 8배 수준이다. 배기가스 연통에서 흘러나온 일산화탄소에 중독됐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자살로 추정할 어떤 증거도 없어”
강릉소방서장은 이날 현장 브리핑에서 “강릉 펜션 사상자들은 자살도 아니고 타살도 아니다”고 말해 집단자살 가능성을 일축했다. 소방 관계자는 “현장에서 번개탄 등은 발견되지 않았다”며 “자살로 추정할 어떤 증거도 발견하지 못했다”고 강조했다. 현장에서는 경찰청, 소방청은 물론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가스안전공사에서 배기가스의 연통이 분리돼 있었던 게 사고의 직접적 원인인지 여부와 연통이 왜 분리돼 있었는지 등에 대해 수사를 벌이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연통이 청소가 안 돼 그을음이 내부에 쌓이면 유독 가스 배출에 방해를 받는다”며 “연통 접속부 연결이 헐거워져서 연기가 제대로 빠져나가지 못하고 실내로 들어갔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경찰은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해 수사관 71명을 투입해 수사본부를 구성했다.
펜션에는 가스경보기도 없어
펜션에는 일산화탄소 누출을 감지하는 가스경보기가 없는 것으로 확인돼 인재 사고 가능성도 제기됐다. 일산화탄소 노출 사고는 매년 반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한국가스안전공사에 따르면 최근 5년간 가스보일러(도시가스·LPG)로 인한 사고는 23건 발생했다. 이 중 배기통 이탈 등으로 유해 가스가 제대로 배출되지 못해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이어진 사고는 17건(74%)에 달했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철저한 시설 점검과 가스누출경보기 설치 등 안전 대책이 시급하다”고 조언했다.
정부는 이날 밤 9시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 이개호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등이 참석한 가운데 강릉시 농업기술센터에서 관계 기관 긴급대책회의를 열었다.
유 부총리는 “정말 참담한 심정으로 피해자 가족분들께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 안타까운 사고에 마음과 뜻을 모아 대책회의를 통해 신속하게 취해야 하는 조처를 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회의에서 정부는 1인당 300만원 내 의료지원과 1인당 500만원 내 장례지원, 임시·합동분향소 운영 등을 검토했다. 또 펜션 인허가 절차와 안전관리 이행 여부 등을 확인하고, 강원도 내 펜션 안전 여부를 일제 점검하는 등 추가 피해를 막기 위한 대책도 추진하기로 했다.
조아란/구은서/강릉=정의진 기자 arch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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