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하노이의 초고층건물 ‘랜드마크72’의 모회사 격인 AON인베스트먼트가 갑작스럽게 파산 절차를 밟게 됐다. 랜드마크72의 전 주인이자 AON인베스트먼트의 채권자인 SM그룹이 새 주인인 구조조정 전문회사 AON(에이오엔)측에 채권 변제를 요구했다 거부 당하자 제기한 파산신청을 법원이 받아들이면서다. AON측이 법원의 결정에 반발하면서 양측의 갈등은 법정 싸움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파산신청 받아들인 법원...AON은 즉시항고
10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서울회생법원 제22부는 지난달 29일 AON인베스트먼트, 랜드마크타워유한회사에 대한 파산선고 결정을 내렸다. 두 회사의 채권을 보유한 SM경남기업(옛 경남기업)이 “채무자 부채의 총액이 자산 총액을 초과해 지급능력이 없어 파산 요건을 충족한다”며 제기한 파산신청을 법원이 받아들이면서다. AON측은 법원의 결정에 즉시 항고해 사건은 서울고등법원으로 넘어갔다. SM경남기업의 대리인으론 김앤장 법률사무소가, AON의 대리인으론 법무법인 태평양이 나섰다.
사건의 발단은 2015년 12월 당시 경영난을 이기지 못해 회생절차(법정관리)를 밟고 있던 경남기업이 AON에 랜드마크72를 매각한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랜드마크72는 경남기업이 2012년 베트남 하노이에 지은 초고층건물로 인터콘티넨탈 호텔, 팍슨 백화점 등을 비롯해 다양한 국내외 대기업들이 입주한 하노이의 대표적인 관광·비즈니스 시설로 꼽힌다. 72층 복합빌딩 1동과 주상복합빌딩 2동 등 총 3개동으로 구성돼있다. 당시 사업비로 11억 2000만 달러(약 1조 2700억원)가 들었다.
파산절차를 밟게된 AON인베스트먼트와 랜드마크타워유한회사는 모두 경남기업이 랜드마크타워72 건립을 위해 세웠다 AON으로 매각되는 과정에서 소유권이 넘어간 회사들이다. AON인베스트먼트는 2007년 경남기업이 랜드마크72 건립을 위해 설립한 경남인베스트먼트의 후신이다. 랜드마크72를 운영하는 베트남현지법인 AON비나(옛 경남비나)를 지배한다. 랜드마크타워유한회사는 경남기업이 우리은행을 비롯한 15개 금융기관으로부터 프로젝트파이낸싱(PF)대출 5240억원을 조달하기 위해 세운 특수목적회사(SPC)다.
회생절차 중이던 경남기업은 채무 정리 차원에서 랜드마크72 매각에 나섰다. 매각은 회사 경영권을 인수하는 식이 아니라 채권단이 가지고 있던 대출채권 5240억을 인수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해당 대출채권이 시행사인 경남비나 주식을 담보로 가지고 있어 인수 후 담보권을 행사하면 현지 법인 경영권을 가져오는 구조였기 때문이다.
2015년 12월 이뤄진 입찰에서 AON그룹의 지주사격인 AON홀딩스(현 AON BGN)가 4540억원을 써내 골드먼삭스 하나금융투자 등 경쟁자를 누르고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미래에셋증권으로부터 4000억원의 인수금융을 제공 받아 이듬해 5월 잔금납입까지 마치며 인수 작업을 마무리했다. 랜드마크72 매각으로 경남기업은 채무를 덜었고, 2017년 8월 SM그룹 계열사인 동아건설산업에 653억원에 인수돼 SM경남기업으로 사명을 바꿨다. 한 IB업계 관계자는 “랜드마크72 매각도 삼수 끝에 성공했고, 경남기업 또한 세 번의 시도 끝에 새 주인을 찾았다”며 “랜드마크72 사업은 경남기업의 몰락을 불러온 단초였지만 역설적으로 경남기업의 몸집을 줄여 매각에 성공케한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채권자 권리 있다" vs "상도의 어긋나는 일"
그렇다면 매각된지 3년이 지난 채권을 두고 신(新)·구(舊) 주인 간 분쟁이 벌어진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경남기업이 당시 경남인베스트먼트와 랜드마크타워유한회사가 금융원으로부터 진 5240억원의 PF채무를 보증하며 이자비용 지급을 위해 랜드마크타워유한회사에 대여한 300억원에 있다. 후순위채권으로 분류된 이 채권엔 기존 채권자들이 전액 상환 받을 때까지 변제 받지 못한다는 특약이 붙기도 했다. 이 채권은 랜드마크72와 경남기업이 각각 새 주인을 맞고나서도 그대로 남았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갈등은 올해 하반기들어 AON측이 대출채권 매각을 통한 ‘엑싯’(투자회수)를 검토하면서 불거졌다. SM측은 인수 당시 4540억원이었던 대출채권의 가치를 현재 1조원 이상으로 바라보고 있다. 지난해 인터콘티넨탈 호텔이 입주하고 오피스 가동률이 90%를 넘어서는 등 랜드마크72의 수익성이 높아지고 있어서다. 이에 SM측은 그 동안 쌓인 금융권 대출 이자까지 전액 변제하고도 남는 가격이라는 판단에 보유 중인 채권을 변제해줄 것을 AON측에 요구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두 회사에 대한 파산을 신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파산은 해당 기업이 보유한 자산을 처분해 채무를 변제하는 기업청산방식으로 지급불능 또는 채무초과를 요건으로 한다. 법원은 채무초과를 근거로 SM측이 제기한 파산신청이 법적으로 합당하다고 판단한 셈이다.
AON측은 법원의 파산선고 결정을 용납할 수 없다며 즉시 항고하는 등 대응에 나섰다. AON측 관계자는 “경남기업이 회생절차를 진행하면서 일반적인 M&A에 실패하자 대출채권 매각을 통한 M&A를 허가했던 것이 법원”이라며 “두 차례 매각에 실패한 부실자산의 인수자로 나서 청산 위기에 처했던 회사를 도와준 투자자에 대한 상도의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말했다. SM측은 “재판 진행 중인 사안에 대해 특별히 언급할 것이 없다”고 말했다.
이번 파산신청에서 랜드마크72의 운영사인 베트남 현지 법인 AON비나는 제외돼 파산 결정이 경영에 미치는 직접적인 영향은 없다는 것이 관련 업계의 설명이다. AON에 대한 대출채권을 기초자산으로 유동화증권(ABS)을 발행해 자금을 조달한 미래에셋대우는 파산절차가 진행되더라도 변제 우선순위가 높아 손해볼 가능성이 크진 않지만 항고심에서 AON이 패소해 파산절차가 본격화하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미래에셋대우는 AON이 랜드마크72를 인수할 때 3000억원의 선순위대출과 1000억원의 전환사채(CB) 등 총 4000억원을 인수금융으로 제공했다. 이에 대해 미래에셋대우 관계자는 "랜드마크 72빌딩은 베트남 경제성장과 함께 그 가치가 매년 상승해 현재 7000억원 넘게 평가 받는다" 며 "미래에셋대우가 투자해 유동화한 상품은 선순위 대출로 LTV가 50%이하여서 파산절차가 진행되더라도 담보순위가 우선해 원금손실이 발생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말했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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