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동휘 정치부 기자) 문재인 정부의 북한 인권에 대한 정책은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전략적 인내’라고 할 수 있다. 통일부가 19일 국회에 보고한 ‘2018년도 북한인권증진집행계획’은 이를 잘 요약해놨다. 올해 정부가 한 일과, 대외 환경의 변화를 언급한 뒤, 통일부는 향후 대북 인권정책 방향을 제시했다. ‘북한과 협력해 인권 개선을 추진하겠다’는 것이 골자다.
통일부가 밝힌 북한인권 개선을 위한 추진 방향엔 고민의 흔적이 역력하다. 불과 1년 만에 ‘대대적 압박’에서 ‘전략적 인내’로 돌아섰으니 그에 대한 설명이 필요했을 터다. 통일부는 새로운 정책 수립의 필요성을 아래와 같이 언급했다. ‘금년 들어 급변한 한반도 정세 및 남북관계 상황을 고려하여 한반도 평화 정착과 남북관계 발전, 북한주민의 인권 개선을 조화롭게 추진할 수 있는 북한 인권정책 수립이 필요하다’
추진 원칙으로는 세 가지를 제시했다. 북한인권 문제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라는 관점에서 접근하겠다는 것이 첫번째다. 남북관계 발전 및 한반도 평화와의 선순환도 감안하고, 실현가능한 과제부터 점진적·단계적으로 접근하겠다는 원칙도 만들었다. 쉽게 얘기하면, 유엔 회원국이 얼마 전 만장일치로 채택한 정치범 수용소 폐지 등 핵심 인권 탄압 문제는 당분간 거론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유엔총회에서의 ‘컨센서스’엔 우리 외교부도 참여했다. 대신에 통일부는 북한 주민의 삶의 질 개선과 인도적 지원이 인권문제 개선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봤다.
북한 인권 문제는 우리 정부로선 매우 골치아픈 사안이다. 한 해 1000명이 넘는 탈북민들이 쏟아지면서 그 실상은 가릴래야 가릴 수가 없다. 정면으로 문제제기할 수도 없다. 요즘처럼 남북 평화 무드가 무르익고, 동질성 회복이란 이름으로 수많은 교류 행사가 넘쳐나는 때에 인권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자살골’이나 다름없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더욱 곤란한 지점은 따로 있다. 북한 인권과 비핵화 문제가 서로 얽혀 있다는 점에서다. 북한이 비핵화의 댓가로 그토록 원하는 제재완화만해도 국제사회의 동의를 얻지 못하는 한 성사되기 어렵다. 외교부 관계자는 “EU만해도 북핵과 북한 인권은 거의 등가 개념”이라고 했다. 비핵화 못지 않게 북한 인권 개선에 강한 신념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유엔은 올해 14번째 북한인권결의안을 통과시켰다.
미국은 더 말할 것도 없다. 미 의회는 대북 제재완화 시 국회를 반드시 통과하도록 견제장치를 마련해놨다. 이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과의 협상에서 완전한 비핵화를 달성하면 제재를 풀어주겠고 했는데 엄밀히 말하면 이것은 거짓말에 가깝다”고 말했다. 미 의회는 대북 제재의 이유로 핵무기 뿐만 아니라 인권, 사이버 범죄 등을 넣어놨다. 김정일이 생전에 핵무기를 개발하면서 ‘저들은 하나를 내주면 또 하나를 달라고 요구할 것’이라며 이를 방지하기 위해 핵무력을 완성하라고 강조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북핵 협상이 장기화될수록 우리 정부의 입지는 좁아질 수 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국제사회는 한국 정부의 요구를 이렇게 해석할 가능성이 높다. ‘핵무기를 보유한 위험한 국가에 경제제재를 해제할 뿐만 아니라 반인륜적인 인권침해도 내정간섭이라는 이유로 내버려두라’. (끝) / donghui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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