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보다 많은 423명 서울 구의원 무용론…회의 토론 실종, 예산 심사도 전무

입력 2018-12-23 11:55   수정 2018-12-23 11:58

지난 12일 서울 종로구의회. 오전 11시가 되자 내년도 종로구청 예산안, 조례 개정안 등 4개의 안건을 표결에 부치는 본희의가 열렸다. 회의 진행은 일사천리였다. 유양순 종로구의회 의장은 안건을 상정할 때마다 “이의 제기나 토론 신청하고 싶으신 분 계십니까”고 물었지만 구의원들의 답변은 “없습니다”뿐이었다. 표결은 모두 만장일치였다. 본회의에서 4개의 안건이 통과하는 데 걸린 시간은 24분이었다.

◆ 구의회서도 민주당 ‘일방통행’

지난 6·13 지방선거에서 서울 25개 자치구 중 24곳에서 더불어민주당 소속 구청장이 당선되고, 21곳의 구의회에서 더불어민주당이 과반을 차지하는 ‘민주당 천하’에서 구청을 견제해야 하는 구의회들이 제 기능을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0일 서초구, 송파구, 강동구 등을 끝으로 서울 25개 모든 자치구의 내년도 예산안이 각 구의회 본회의를 통과한 가운데 대부분 구청이 의회에 제출했던 예산 규모를 지켜냈다. 종로구가 구의회에 제출한 4222억원의 내년도 예산안은 올해보다 9.88% 늘었지만, 총액 증감 없이 20억원 규모의 내부 미세 조정만 거친 뒤 통과됐다. 올해 예산 대비 24.1% 늘어난 예산을 편성해 25개 자치구 중 가장 큰 인상폭을 기록한 강동구 역시 의회에 제출한 예산을 그대로 지켜냈다.

본회의에 예산을 올리기에 앞서 예산안을 심사하는 각 구의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는 구청이 제출한 예산안을 견제하는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성북구 복지문화국의 내년도 예산안을 심사하기 위해 열린 성북구의회 예결위에서 의원들은 단순히 사업 내용을 확인하는 데 급급했다. 사업의 타당성을 묻는 질문이 종종 나왔지만 “재정자립도가 낮은 상태에서 정부와 서울시로부터 지원을 받는 매칭사업이 많은데, 이를 삭감할 경우 다음해 사업을 받을 수 없다”는 구청 측 해명에 구의원들은 어떤 반박도 하지 않았다. 결국 성북구의 내년도 예산안도 총액의 증감 없이 지난해보다 7.3% 늘어난 6809억원 규모로 본회의를 통과했다. 구의회 무용론이 나오는 배경이다.

반면 유일한 ‘비 민주당’ 소속의 구청장이 있는 서초구는 내년도 예산을 126억원가량 삭감당했다. 15명의 구의원 중 자유한국당과 더불어민주당 소속 의원이 각각 7명씩인 서초구의회는 예결위 일정을 연장하고 계수조정을 본회의가 열리는 날 새벽까지 이어가는 등 치열한 공방이 벌어졌다. 류석춘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국회나 광역의회에 비해 감시의 눈이 거의 없다시피 한 기초의회를 한 당이 장악하면 일방통행 예산 심사가 이뤄질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 회의록 공개도 안 해

구의회의 회의록 공개 시점이 지나치게 느린 것도 ‘깜깜이 예산 편성’이라는 비판도 나오는 배경이다. 비교적 빠르게 회의록이 공개되는 국회나 시의회와 달리 구의회 회의록 공개 시기는 제각각이다. 성북구의회의 온라인 사이트에 공개된 의회록은 지난달 1일자가 최근이다. 두달 가까이 업데이트가 이뤄지지 않는 것이다. 강남구의회의 전자회의록은 10월에서 멈춰있다. 지방자치법과 각 구의회의 규칙에 따르면 ‘의장이 비밀을 요하거나 사회의 안녕 질서 유지를 위하여 필요하다고 하는 부분’ 이외에는 모두 공개하도록 돼 있다.

광역의회와 기초의회의 형태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현재 서울 구의원 수는 비례대표를 포함해 423명에 달한다. 이창기 대전대 행정학과 교수는 “기초의회의 업무는 광역의회의 업무와 중복되는 게 많다”며 “기초의회를 최소화하고 광역의회의 기능을 강화해 기초단체장을 감시 감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임락근 기자 rkl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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