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으로 풀어본 계절의 서정

입력 2018-12-24 17:21  

박준 시집 '우리가 함께…' 출간


[ 은정진 기자 ] 계절과 자연을 특유의 언어적 감수성으로 빚어온 박준 시인(35)이 두 번째 시집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문학과지성사)를 냈다. 2012년 단 한 권의 시집으로 독자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각인한 이후 지난 6년간 일상을 깎고 다듬어낸 신작 시집이다. 관념에 갇히지 않고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소재로 지은 시들이다.

시집은 계절적 풍경을 담은 지난 시집에서 더 나아갔다. 각 장을 봄·여름·가을·겨울로 구분해 계절별 공감각을 화자의 감성으로 극대화했다. 시집 속 화자는 기다리는 사람으로 설정했다. 때론 그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기도 한다.

봄을 노래한 ‘쑥국’에선 ‘나는 벽을 보고 돌아누워/신발을 길게 바닥에 끌며/들어올 아버지를 기다리고 있었다’고 썼다. 기다림 끝에 아버지가 따올 쑥에 된장을 풀어 국을 끓일 생각을 한다. 화자 홀로 앞으로 벌어질 미래로 다녀온 것이다. 겨울의 느낌을 담은 ‘좋은 세상’에선 ‘묵은해의 끝, 지금 내리는 이 눈도 머지않아 낡음을 내보이겠지만/영아가 오면 뜨거운 밥을 새로 지어 먹일 것입니다’라며 또다시 미래로 갔다. 다가올 새해를 맞이하는 지금, 읽는 이에게 소박한 웃음을 짓게 한다.

백미는 시구를 시집 제목으로도 쓴 ‘장마’다. 시인은 시에서 누군가에게 두 편의 편지를 쓴다. 먼저 ‘갱도에서 죽은 광부들’에 대한 과거 이야기를 첫 편지로 쓰다 결국 구겨버린다. 그러고는 결구로 ‘이 글이 당신에게 닿을 때쯤이면/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 라고/시작하는 편지를 새로 적었습니다’라고 적는다. 앞에선 과거에 벌어졌던 일들을 풀어놨다면 뒤 편지에선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기다린다. 미래는 오지 않았지만 지금을 충실히 보내면 언젠가 다가올 축축한 장마 또한 누군가와 함께할 수 있을 거라는 작은 믿음이 느껴진다.

최근의 젊은 시인들과 달리 박준의 시 대부분은 전통적인 서정성을 자주 담아낸다. 해설을 쓴 신형철 문학평론가는 대표적 서정시인들인 김소월, 김영랑, 백석 시인을 박 시인 시의 기원으로 평가했다. 그가 “~할 것입니다”라는 경어체를 종결어미로 자주 쓰는 게 대표적이다. 신 평론가는 “박준 시를 읽으면 한국어로 시를 쓰고 읽어온 백 년의 역사가 우리에게 새겨놓은 심미적 유전 형질을 발견하게 된다”며 “송강 정철의 시에서 발견된 ‘미인’이라는 말의 옛 쓰임새를 박준이 살려냈던 것처럼 그의 시엔 섬세하게 운용될 때만 전달되는 어떤 고고학적 그리움이 담겨 있다”고 평가했다.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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