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로 만든 가구·에코백 등 업사이클링 제품 속속 등장
발달장애인, 직원 80%인 회사도 장애인 예술가 작품, 제품으로
[ 김기만 기자 ] 한 소셜벤처 기업인이 이런 말을 했다. “소셜벤처를 사회적 기업이나 자선단체로 이해하는 투자자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만큼 소셜벤처에 대한 인식 수준은 높지 않다. 소셜벤처는 정부 보조금에 주로 의존하는 사회적 기업과 다르고, 수익뿐 아니라 사회적 가치를 추구한다는 면에서 일반 벤처기업과도 다르다. 소셜벤처에 대한 투자도 많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도 국내 소셜벤처는 올해 600개를 넘어선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양뿐 아니다. 마리몬드처럼 스마트폰 케이스 등으로 100억원 가까운 매출을 올리거나, 닷처럼 점자 스마트워치를 수출하는 회사까지 등장했다. 소셜벤처들이 소비자의 삶 속으로 들어오고 있다. 눈길을 끄는 소셜벤처 제품을 모아봤다.
기능 강화한 업사이클링 제품
에코백은 천연 면 같은 자연에서 분해되는 재료로 만드는 친환경 가방을 말한다. 동물가죽과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자는 취지로 등장했다. 세계적인 연예인들이 ‘나는 비닐백이 아니다(I’m not a plastic bag)’고 적힌 가방을 들고 다니면서 널리 알려졌다. 에코백이 대중화되면서 부작용도 나타났다. 저렴하고 만들기 쉬워 시장에 에코백이 범람하고, 합성 원단으로 제작된 가방을 에코백이라고 판매해 친환경이라는 이미지를 훼손하기도 했다. 천으로 제작한 에코백이 방수가 되지 않고 내구성이 떨어진다는 한계도 있었다.
국내 업체인 파이어마커스는 이 문제 해결에 나섰다. 가방 재료는 화재 진압 후 버려지는 소방호스다. 원단 특성상 방수기능이 일반 제품보다 뛰어나고 추위와 열에도 강하다.
이동규 파머스메이커 대표는 소방관이 되려고 했다. 하지만 시험에 떨어졌다. 어느날 버려지는 소방호스를 이용해 가방을 제작하는 외국 사례를 접하고 2014년 패션브랜드 파이어마커스를 창업했다. 수도권 소방서 50곳에서 15m 길이의 소방호스를 수거해 가방과 지갑 등을 제작한다. 판매 수익의 10%는 화상환자 지원 재단인 베스티안재단을 통해 소방서에 기부한다.
소재를 재활용하고 디자인 등으로 부가가치를 높이는 업사이클링 제품은 소셜벤처의 단골 메뉴다. 소셜벤처 페이퍼팝은 종이로 가구를 제작한다. 유해물질이 없는 친환경 소재로 책장, 수납함, 야외용 등받이 의자 등을 만들어 재활용이 쉽다.
자동차에서 나온 폐가죽과 안전벨트 등을 활용해 가방을 만드는 모어댄은 독일, 영국 법인을 설립해 해외 진출을 준비 중이다. 모어댄 가방은 방탄소년단과 레드벨벳 등이 구매하면서 대표적인 업사이클링 제품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매출 커지면서 발달장애인 고용 늘려
소셜벤처의 또 다른 갈래는 발달장애인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형태다. 발달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일하는 동구밭은 지난 8월 서울 그랜드워커힐호텔에 비누를 납품했다. 노순호 동구밭 대표는 “2014년 세상을 변화시키고 싶은 대학생 4명이 모여 발달장애인과 함께 텃밭 농사를 짓기 시작한 게 천연 비누 사업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월매출이 400만원 증가할 때마다 발달장애인 사원 1명을 더 고용하고 있다. 직원 28명 중 18명이 발달장애인이다.
베어베터도 발달장애인이 직원의 80% 이상을 차지한다. 명함과 달력, 노트 등 인쇄 관련 제품이 주력 상품이다. 출력부터 재단, 제본, 포장, 배송까지 장애 사원이 생산 과정의 많은 부분을 책임진다. 베어베터는 네이버 창립자 중 한 명인 김정호 대표가 2012년 설립했다. 창업 후 7년 동안 흑자를 유지하고 있다.
특수교육을 전공한 양수연 블룸워크 대표는 장애인 예술가들이 그린 그림을 모집하고 재디자인한다. 머그잔과 텀블러 등으로 판매한 수익금의 10%가 그림을 그린 장애인 예술가에게 지급된다.
비장애인도 함께 쓰는 점자 손목시계
닷워치는 세계 최초의 시각장애인용 스마트워치다. 본체에는 액정화면 대신 24개의 점자 핀이 있다. 스마트폰 앱(응용프로그램)과 블루투스로 연동돼 시계는 물론 문자, 이메일, 전화 받기 등의 기능을 활용할 수 있다.
세계적인 가수 스티비 원더와 안드레아 보첼리가 닷워치를 구매한 것으로 알려졌다. 성기광 닷 대표는 “시각장애인이 쓸 수 있는 다른 전자기기의 평균 가격(500만원)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으로 닷워치(30만원대)를 사용할 수 있다”며 “시각장애인을 위한 저렴한 웨어러블 기기가 보급되는 데서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원코리아가 판매하는 브래들리타임피스는 모두를 위한 시계를 지향한다. 시각이 불편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모두가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내놓은 제품이다. 시각장애인도 시계 디자인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사실에 착안해 기능뿐만 아니라 디자인에도 신경 썼다.
■소셜벤처
social venture.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고 사회적 혜택을 제공하는 것을 이익보다 우선시한다는 점에서 일반 벤처기업과 다르다. 빈곤과 불평등, 환경 파괴, 교육 격차 등을 해소하면서도 사업을 지속할 수익을 창출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김기만 기자 mg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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