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노총 개입에 꼬인 금융공공기관 정규직化

입력 2018-12-24 18:03  

민노총, 자회사로 정규직 전환 추진하던 産銀·기업銀에 '태클'

"자회사 설립 대신 직고용" 압박
협상 차질로 전환 마무리 '0곳'



[ 강경민 기자 ] 산업은행 기업은행 등 금융공공기관이 추진 중인 파견·용역직의 정규직 전환 작업이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금융공공기관 경영진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 자회사 설립을 통한 정규직 전환 대신 직접고용을 주장하며 노사협상에 개입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24일 금융계에 따르면 민주노총 공공운수노동조합은 이달 초부터 서울 여의도 산은 본점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산은이 내놓은 자회사 방식을 통한 파견·용역 근로자 정규직화 방침에 반대한다는 주장을 내세우고 있다. 정규직 전환 대상 비정규직 중 민주노총에 가입한 일부 노조원은 지난 12일 산은 본사 진입을 시도했으나 경찰이 저지하면서 대치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민주노총에 가입한 일부 조합원은 직접고용을 주장하면서 정규직과 똑같은 임금 및 복지 체계 등을 요구하고 있다. 산은 관계자는 “지난해 말부터 전환 대상자 504명의 정규직화 협의를 해 왔는데 민주노총에 가입한 150여 명의 조합원이 직접고용을 요구하면서 정규직 전환이 늦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갈등은 산은뿐 아니라 기업은행과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정부에 예산 통제 받는 공공기관, 직접고용 땐 인건비 부담 '눈덩이'

"경비·미화·운전·시설직종도 '뱅커'와 같은 대우?" 내부 반발도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는 최근 금융공공기관에 파견·용역 근로자에 대한 정규직 전환작업을 올 연말이나 내년 초까지 마무리하라고 지시했다. 금융공공기관의 정규직 전환 속도가 다른 공공기관에 비해 느리다는 이유에서다. 금융위 산하 금융공공기관 중 정규직 전환작업이 마무리된 곳은 아직까지 한 곳도 없다. 한 국책은행 관계자는 “금융공공기관 노사 간 정규직 전환 협의에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 개입하면서 협상이 차질을 빚고 있는 것이 주된 이유”라고 전했다.

기업은행은 최근 금융당국으로부터 비정규직 근로자를 편입하기 위한 자회사 설립승인을 인가받았다. 경비·미화·운전·시설관리 직종에 종사하는 2000여 명이 전환 대상이다. 기업은행은 전체 금융공공기관 중 파견·용역 직원이 가장 많다. 기업은행은 내년 상반기께 정규직 전환작업을 마무리하겠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2000여 명 중 시설관리 및 본점 경비 직군 등 350여 명이 직접고용을 요구하며 자회사 방식을 통한 정규직화에 반대하고 있다. 올 상반기부터 정규직 전환 협의에 민주노총 공공연대노조가 개입하면서 합의에 차질을 빚었다는 것이 기업은행 관계자의 설명이다. 일부 파견·용역 근로자는 올 상반기 별도 노조를 설립해 상급단체인 민주노총에 가입했다. 이들은 직접고용이 아닌 자회사 방식의 고용은 정규직과 임금 체계 및 복지 등 처우가 달라 파견직과 다르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달 초 자회사 방식을 통한 정규직화 방침을 발표한 산업은행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산은은 지난해 말부터 정규직 전환을 협의해 왔지만 일부 조합원이 직접고용을 주장하면서 정규직 전환이 1년 넘게 지연돼 왔다. 민주노총 관계자들이 협의에 참여해 자회사 방식의 정규직화를 반대했기 때문이다. 산은의 한 임원은 “정규직 전환 대상자 504명 중 자회사 방식의 고용에 반대하는 조합원은 150여 명에 불과하다”며 “자회사 방식으로도 고용 안정 및 처우 개선이 충분히 달성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지난 10월 자회사 방식의 정규직화를 발표한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의 정규직 전환작업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전환대상자 646명 중 콜센터에 근무하는 비정규직 142명이 직접고용을 요구하고 있어서다. 캠코 관계자는 “민주노총에 가입한 일부 조합원이 자회사를 통한 고용 대신 직접고용을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지난해 내놓은 공공기관 정규직 전환 방식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금융공공기관은 직접고용을 원칙으로 하되 자회사 및 사회적 기업 설립 등의 전환방식도 선택할 수 있다. 정부로부터 사실상 예산 통제를 받고 있는 공공기관이 비정규직을 직접고용할 경우 인건비가 눈덩이처럼 불어날 우려가 있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대다수 금융공공기관이 자회사 방식의 고용보장을 추진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경비·미화 등의 직군이 정부 가이드라인에 따라 정년을 만 65세까지 보장받을 수 있는 고령자친화직종이라는 점도 금융공공기관들이 자회사를 통한 고용방식을 추진하는 또 다른 이유다. 자회사를 통한 고용 시 금융공공기관 정년(만 60세)과 관계없이 별도 규정을 통해 만 65세까지 고용 보장이 가능하다. 하지만 직접고용 시엔 기존 정규직과 똑같이 만 60세로 정년을 통일해야 한다는 것이 금융공공기관 관계자의 설명이다.

금융공공기관 내부에서도 파견·용역직의 직접고용에 대한 불만이 적지 않다. 한 국책은행 관계자는 “경비·미화 직군까지 직접고용을 통해 ‘뱅커’와 똑같은 대우를 해달라는 건 지나친 요구”라고 말했다.

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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