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30여개 투자자와 경쟁... 단일 투자건 역대 최대 8000억원 지분 40% 확보
≪이 기사는 12월25일(17:25) 자본시장의 혜안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국내 투자자들에게 해외 대체투자는 대세로 자리 잡았다. 올해 국내 기관과 증권사들이 세계 시장을 누비는 가운데, ‘K머니’가 런던 시장에서 특히 두각을 나타내기도 했다. 국민연금은 글로벌 연기금과의 경쟁 끝에 골드만삭스 런던 본사 빌딩을 약 2조원에 인수했다. 지난해 해외 대체투자 부문 ‘올해의 딜 메이커’로 꼽힌 하나금융투자 대체투자금융실은 올 들어 런던의 외곽순환고속도로에 투자했다. 한국투자증권과 미래에셋대우는 각각 런던의 70마크레인과 트웬티올드베일리 오피스 빌딩을 인수했다.
세계 경기가 둔화하면서 안정적인 배당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인프라 자산에 투자하는 것도 최신 트렌드다. 그러나 이 시장에선 수천억달러를 보유한 글로벌 연기금, 수백억달러를 가진 인프라 전문 펀드들과의 경쟁을 피할 수 없다.
이 가운데 낭보가 날아왔다. 지난 7월 삼성·IBK·한화증권 컨소시엄이 30여개의 글로벌 투자사와의 경쟁을 물리치고, 프랑스의 덩케르크 액화천연가스(LNG) 터미널 지분 40%를 인수하는 데 성공한 것. 총 투자액은 8840억원으로 국내 자본의 해외 인프라 단일 투자건 중 역대 최대 규모다. 8840억원이 순전히 지분(에쿼티) 투자 금액이라는 점도 의미있다. 이후 셀다운(재판매)과정에서 15여 곳의 국내 기관투자가가 참여하는 등 국내 자본시장에 미친 영향이 적지 않은 거래로 평가된다. 한국경제신문 자본시장 마켓인사이트 취재팀은 이 거래를 주도한 삼성증권의 정영균 투자금융본부장(상무·사진)을 올해의 해외 대체투자 부문 딜 메이커로 꼽았다.
지난해 말 삼성증권 투자금융본부 소속 SP(구조화상품) 팀원들은 유럽 시장조사 도중 프랑스전력공사(EDF)와 프랑스 대형 정유사 토탈이 덩케르크 지분을 시장에 내놓을 수 있다는 소식을 듣고 거래 준비를 시작했다. 프랑스 북부에 있는 덩케르크는 2차대전 격전이 벌어진 해안가로 이름높다. 덩케르크 터미널은 북해에서 뽑아내 배로 운반되는 액화천연가스(LNG)를 저장하고 다시 기화해 공급하는 설비다. 유럽은 러시아에서 파이프라인을 통해 가스를 공급는다. 그러나 러시아는 유로존과의 관계가 악화할 때마다 가스 공급 중단 카드를 꺼내든다. 북해산 LNG는 이럴 때 더욱 요긴하게 쓰인다. 유럽이 정세 변화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꼭 보유해야할 전략자산이다.
글로벌 투자사들의 생각도 비슷했다. 예비 입찰에는 캐나다의 유력 연기금과 알리안츠 등 글로벌 보험사, 브룩필드 등 글로벌 대체투자 운용사, 맥쿼리 등 인프라 전문 운용사, 중국 가스공사 등 30여개 투자자들이 참여했다. 미래에셋대우-하나금융투자 컨소시엄도 이름을 올렸다. EDF와 토탈은 이 터미널이 전략적 자산이라는 점에서 전략적투자자(SI) 10곳을 배제하기로 결정했다. 재무적투자자(FI) 중심의 판이 꾸려졌다.
글로벌 운용사, 인프라 펀드에 비해 거래 실적(트랙 레코드)가 부족하다는 게 삼성증권의 약점이었다. 그러나 정 상무와 SP팀원들의 생각은 달랐다. 대형 경쟁사들도 이 같은 초대형 전략자산에 대해선 투자 경험이 아주 많지는 않다는 것. 밸류에이션(가치평가) 실력이 결과를 좌우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정 상무와 SP팀원들은 국내 가스 터미널 운영사의 협조를 통해 면밀한 스터디를 했다. 한국은 손꼽히는 LNG 수입국. 해당 파트너사는 시장 분석력과 운영 관리(O&M) 경험이 뛰어났다. 유럽 전역에서 탈(脫)원전 기조가 강화하는 가운데, LNG 수요가 차츰 늘고 있다는 점에도 주목했다. 매도 측이 향후 벌일 에너지 프로젝트에 삼성증권이 글로벌 파트너로서 참여할 수 있다는 점도 적극 피력했다. 세계적인 ‘삼성’ 브랜드도 최종 수주에 큰 도움이 됐다는 게 삼성증권 측의 설명이다. 투자금 전액을 삼성증권 혼자 책임질 수 없다고 판단하고 IBK증권과, 한화투자증권을 총액인수 거래에 초대했다.
정 상무와 SP팀원들은 이번 거래를 따내면서 파리 출장을 10차례 다녀왔다. 파리 샤를드골 공항과 인천공항을 오가면서 30만마일이 넘는 항공마일리지를 쌓았다. 1박3일, 2박5일짜리 출장도 부지기수였다.
정 상무는 “결국 국내 투자자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가격 한도와 입찰에서 승리할 수 있는 최대한의 가격을 조율하는 게 거래의 핵심이었다”며 “매도 측으로부터 최종 적격 인수 후보들이 써낸 가격이 마치 다트 표적의 최중심부에 모여있는 듯 대동소이했고, ‘어떻게 그 가격을 써냈나’는 말도 여러번 들었다”고 말했다.
재판매는 대부분 완료했다. 은행, 공제회 등 투자자별 목표수익률에 맞추기 위해 자산을 고정금리 배당형, 변동금리 배당형, 일반형으로 구조화했다. 투자기간 20년에 연 7%대 배당을 받을 수 있어, 경기 방어적 자산을 늘리려는 국내 기관투자가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는 설명이다. 유로화로 이뤄진 투자라 연 1.5% 수준의 환헤지 프리미엄(이종통화간 스와프 프리미엄)을 얻을 수 있는 것도 장점으로 평가받는다.
김대훈 기자 daep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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