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투자하라 닦달 말고 투자환경 조성해야

입력 2018-12-26 18:21  

"불식되지 않은 사내유보금 논란
투자·고용하라는 주문이 그 배경
규제 풀어 투자할 수 있도록 해야"

추광호 < 한국경제연구원 일자리전략실장 >



꽤 오래된 논쟁이고 이제는 정리가 됐을 법도 한데 아직도 경제 관련 토론회나 모임에 가면 듣게 되는 말이 있다. “기업이 수백조원의 사내유보금을 쌓아두고 있다. 이 돈을 풀어서 투자를 늘리고 시장에 돈이 돌게 해야 한다.” “기업의 사내유보금이 엄청 늘었다는데 경제가 어려운 이때 기업이 역할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때마다 약간의 오해가 있는 것 같다며 설명을 하곤 한다.

사내유보금은 기업의 자본을 구성하는 항목 중 주주들이 납입한 본래 의미의 자본금 외에 기업의 경영활동이나 자본거래를 통해 발생한 이익잉여금과 자본잉여금을 합해 편의상 부르는 용어다. 이익잉여금은 매년 세금을 내고 주주들에게 배당을 한 이후에 회사에 유보된 이익이며, 자본잉여금은 회사가 주식을 액면 초과 발행하거나 자기주식을 처분할 때 발생하는 이익 등 자본거래를 통해 발생하는 이익이다.

사내유보금에 대한 가장 큰 오해는 이를 마치 기업이 내부에 현금으로 쌓아두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경영활동을 통해 벌어들인 이익 중 세금을 내고 주주들에게 배당한 다음 매년 10억원을 남기는 기업이 있다고 하자. 10년간 이 같은 경영활동을 유지한다면 이 기업의 사내유보금은 100억원이 될 것이다(자본잉여금은 없는 것으로 가정한다).

그렇다면 이 100억원은 어떤 형태로 존재하고 있을까. 분명 이 기업은 매년 성장을 하면서 다양한 형태의 투자자산을 구입했을 것이다. 공장 부지를 추가로 매입했을 수 있고, 기존 공장을 증설하기도 했을 것이다. 직원들을 위해 체육관을 짓거나 구내식당을 확장했을 수도 있다. 기업은 매년 경영활동을 통해 이익을 내고, 이를 활용해서 다양한 형태의 자산을 구입하면서 투자활동을 확대하고 기업을 성장시켜 나간다.

결국 기업이 오래될수록 다양한 형태의 많은 자산을 보유하게 되겠지만, 보유한 자산의 형태와 관계없이 내부유보금은 커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자본금 대비 사내유보금 비율을 의미하는 사내유보율이 수백%가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으며, 기업이 오래 영속하게 되면 그 비율은 점점 커질 수밖에 없다. 만약, 무상증자를 통해 사내유보금 중 일부를 자본금으로 전입하게 되면 사내유보금과 사내유보율은 줄어들 것이다. 즉, 실체와 관계없이도 사내유보금 규모는 조정될 수 있다.

혹시 사내유보금 대신 현금성 자산을 많이 가지고 있음을 지적하는 것은 어떨까. 기업 규모가 커질수록 당장 현금을 쓸 곳이 많아지고, 예상치 못한 지출에 대비해야 할 준비자금이 늘어난다. 게다가 현금의 원천은 사내유보금뿐만 아니라 외부에서 차입하는 경우도 많다. 기업의 적정 현금보유 수준이 얼마인가를 획일적으로 정하기는 힘들며 해당 기업의 내부 사정과 업종 특성 등 많은 요인이 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기업이 가진 자산 중 현금성 자산의 비중은 8~10% 정도로 알려져 있다. 대부분의 기업이 각자 처한 상황에서 가장 효율적인 현금 보유 수준을 결정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사내유보금 논란 뒤에는 대기업에 투자와 고용을 주문하는 메시지가 숨어 있다. 경제성장 잠재력을 끌어올리고 내수를 진작하기 위해서는 기업의 투자와 고용이 필요하다. 하지만 기업은 기본적으로 영리를 추구하는 조직이다. 기업의 주주들은 ‘이익을 실현할 수 있는’ 투자를 요구한다. 투자 대비 이익을 충분히 낼 수 있는 곳에는 기업이 앞다퉈 투자를 하려고 할 것이다.

따라서 용어의 오해에 기초한 사내유보금을 내세우면서 왜 투자를 하지 않느냐고 다그칠 것이 아니라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마음껏 투자할 수 있는 경영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규제는 결국 기업에는 비용 상승으로 이어지고, 이는 예상 수익률 하락과 투자기회의 감소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 안팎으로 경제가 어렵다고 아우성인데 다시금 기업의 본질과 원칙을 되새겨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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