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크로스레일은 주변 지역 집값 급등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A노선이 27일 착공함에 따라 우리나라에서도 GTX 시대가 성큼 다가오고 있다. GTX가 개통하면 어디가 가장 수혜를 볼까. 기존에 완성된 GTX가 없다보니 부동산 전문가들도 수혜지를 꼽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그마나 외국 사례를 통해 GTX의 파급효과를 예측해 볼 수 있을 뿐이다. 교통 전문가들은 선진국에서도 GTX와 같은 교통 수단을 찾아보기 어렵다고 말한다. 영국 런던 크로스레일이 유일하게 비슷한 케이스다. 크로스레일은 2009년 착공해 내년 말 개통을 앞두고 있다. 현지 은행·리서치업체들은 지난 10년간 크로스레일 주변 집값이 런던의 평균 집값 상승률을 웃돌았다고 분석했다.
◆영국판 GTX ‘크로스레일’
크로스레일 사업은 런던 생활권 동서부를 가로지르는 광역급행철도 건설사업이다. 사업비는 148억 파운드(21조1600억원)다. 유럽 최대 인프라 사업으로 불린다. 시내로 유입되는 통근자 수가 급증하자 런던시가 2009년 5월부터 건설을 시작했다.
이 노선은 서쪽 레딩 지역에서 출발해 히드로공항, 런던 도심을 지나 동쪽 셰필드까지 118km를 잇는다. 이중 도심을 지나는 42km 구간은 GTX처럼 지하 20~40m 대심도 지하터널로 건설한다. 나머지는 기존 철로를 이용한다. 정거장은 41개다. 노선명은 여왕 이름을 따 엘리자베스 라인으로 정했다.
속도가 강점이다. 지상구간은 최고시속 160km, 지하구간은 100km로 운행된다. GTX 속도와 비슷하다. 개통 뒤 런던 동서부 종점에서 중심까지 45분 안에 닿는다. 런던시는 연간 2억명이 이 노선을 이용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용객이 늘면서 런던 시내 철도 이용률도 10%가량 증가할 전망이다.
대규모 인프라 사업인 만큼 경제 효과도 크다. 런던시는 역 개통으로 420억 파운드(60조원) 규모의 경제 이익이 발생할 것으로 분석했다. 새로 창출되는 일자리만 5만5000개에 달한다. 노선 주변으로는 5만7000여 가구의 주택을 공급할 계획이다. 상업시설, 오피스도 50만㎡ 규모로 들어선다.
내년 말께 전 구간 개통한다. 당초 이달 개통 예정이었다. 가디언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기술적 문제로 개통이 연기됐다. 크로스레일 관계자는 “공사를 마무리하고 안전 운행까지 마친 뒤 이르면 내년 가을께 개통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노선 주변 집값 ‘쑥’
현지 은행·리서치업체들은 크로스레일 주변으로 부동산 가격이 크게 뛰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잇따라 내놓고 있다. 로이드뱅크가 2016년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크로스레일 주변 평균 집값은 2014년 34만4000파운드(4억9200만원)에서 2016년 42만1000파운드(6억원)로 2년새 22% 상승했다. 런던의 평균 집값 상승률(14%)보다 8%포인트 높은 수치다.
지역별로 보면 크로스레일 동쪽 종점인 아비우드역 인근 집값은 같은 기간 47% 급등했다. 가장 큰 폭으로 상승폭이다. 런던 중심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레딩역(서쪽 종점)도 23% 올랐다.
크로스레일 주변 집값은 개통 시점이 다가올수록 더 올랐다. 2008년부터 2016년까지 8년간 집값 상승률을 비교하면, 크로스레일 주변이 50% 상승률을 기록해 런던 평균(58%)보다 낮았다. 그러나 2011년부터 2016년까지 집값 상승률은 35%로 두 지역이 같았다. 2013년부터 2016년까지는 크로스레일 주변이 31% 오르며 런던 평균 상승률(24%)을 뛰어넘었다.
주변 상업용 부동산 가격도 크게 올랐다. 부동산 서비스업체 JLL에 따르면 크로스레일 주변 오피스 임대료는 2015년 이후 연평균 5~28%씩 상승했다. 런던 도심에 있는 리버풀역과 파링던역 주변 임대료는 같은 기간 28%와 26% 급등했다. 영국 리서치업체 GVA는 2021년까지 크로스레일 인근 주거 및 상업용 부동산 자산가치가 55억 파운드(7조 8664억)가량 오를 것으로 분석했다.
◆“GTX, 주거 수요 분산”
GTX도 크로스레일과 유사한 경제 효과를 가져다 줄 것이라고 부동산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수도권 외곽을 잇고 속도가 빠르다는 이유에서다. GTX의 평균속도는 110㎞/h다. 일반 도시철도(30㎞/h)보다 네 배가량 빠르다. A노선이 개통하면 경기 고양 일산에서 서울 삼성동까지 이동 시간이 80분에서 20분으로 단축된다. 동탄에서 삼성역까지도 현재 60분(M버스)에서 22분으로 대폭 줄어든다. C노선 개통 뒤에는 수원역에서 삼성역까지 이동시간이 78분에서 22분으로 단축된다. B노선을 이용하면 송도에서 서울역까지 27분 안에 닿는다.
김훈 한국교통연구원 철도교통본부장은 “연간 4000억~1조원의 출퇴근 비용이 줄고 연간 1조 5000억원 규모의 사회 비용이 절감될 것으로 추정된다”며 “수도권 외곽 지역의 교통망이 크게 개선되면 서울 주거 수요 상당수가 외곽으로 퍼져 서울 주택가격 안정에 기여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GTX 개통 뒤 출퇴근 시간이 3분의 1 이상 줄어든다”며 “서울 주요 업무지구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과 다중 역세권으로 재탄생하는 지역이 가장 큰 수혜를 볼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빨대효과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수도권 외곽 거주자들이 치료 쇼핑 문화생활 등을 위해 서울로 가버리면서 수도권 외곽 지역 상권이 붕괴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 KTX 개통이후 천안 강릉 속초 등의 상권이 타격을 입었다는 통계도 있다. 곽창석 도시와공간 대표는 “서울 중심상권은 외곽 수요까지 끌어들이면서 더욱 활성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사업 지연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긴호흡을 투자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SOC 사업은 착공을 하더라도 예산 삭감 등으로 공사 기간이 늘어나는 사례가 흔해서다. 예산이 찔끔찔끔 배정돼 계획보다 공사 기간이 늘어나는 일이 잦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GTX 사업이 완공되면 주거 수요가 분산되겠지만 철도 사업은 절차가 복잡하고 변수가 많아 긴 시간이 걸린다”며 “계획대로 매년 예산을 어떻게 확보할지가 관건”이라고 지적했다.
양길성 기자 vertig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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