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적인 도덕적 잣대 적용한
집단이기주의만 횡행
정치인도 표만 생각할 뿐
미래 위한 개혁은 남의 일
우리는 쇠퇴의 길 내닫는 것인가"
이영조 < 경희대 국제대학원 교수·정치경제학 >
에드워드 밴필드라는 미국의 젊은 정치학자가 1954~1955년 9개월간 이탈리아 남부의 한 마을에서 살 기회가 있었다. 그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가난이었다. 또 하나, 미국인인 그의 눈에 띈 것은 미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자원봉사 같은 것은 눈을 씻고도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었다. 마을은 가족들이 각자의 이익만을 위해 싸우는 전쟁터일 뿐, 서로 돕고 사는 공동체가 아니었다. 이웃은 서로 적이기 때문에 적용하는 행동 기준도 가족과는 달랐다.
이런 관찰을 바탕으로 그는 이 지역이 갈기갈기 찢어진 것은 사람들이 가족의 이익만을 생각하고 공익 또는 공동선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 태도와 행동에 크게 기인했다고 결론지었다. 1958년 출간된 《후진사회의 도덕적 기초》라는 책에서 밴필드는 오로지 가족의 이익만 고려할 뿐 아니라 가족과 남에게 이중적인 도덕적 잣대를 적용하는 행동양식을 ‘무도덕적 가족주의(amoral familism)’라는 말로 요약했다.
굳이 60년 전에 출간된 책의 먼지를 털고 들여다보는 것은 지금 우리 사회도 이와 비슷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차이가 있다면 문제의 원인이 가족이 아니라 집단의 이기적인 행동에 있을 뿐이다. 최근 유행어가 된 ‘내로남불’이 시사하듯이 지금 우리 사회엔 내가 속한 집단과 다른 집단 사이에 이중적인 판단 기준을 적용하는 행태가 만연해 있다.
과거 정부가 한 것은 낙하산 인사였지만 지금 정부가 하는 것은 균형·탕평·통합 인사다. 코드 인사로 보이는 것조차 국정 이념을 공유하기 위한 것일 뿐이다. 이전 정부가 한 것은 민간인 사찰로 탄핵감이었지만 지금 정부가 하는 것은 목적도, 사용방법도 다른 정상적인 국정의 일부다. 우리는 태생적으로 유전자가 다르기 때문에 잘못이란 있을 수 없다. 남이 쓴 돈은 표를 얻기 위한 선심성 예산이었지만 우리가 쓰는 것은 포용적 경제를 위한 것이다.
정부만 그런 게 아니다. 사회의 사실상 모든 집단이 공동선은 뒤로한 채 집단이기주의에 빠져 있다. 다른 집단이 한 것은 기득권 지키기였지만 우리가 하는 것은 정당한 권리의 요구다. 그렇게 믿으니 오로지 제 집단의 이익만 내세운다. 새로운 일자리 창출 모델이 될 수도 있었던 ‘광주형 일자리’는 노동계의 반대로 좌초 위기에 빠졌다. 설사 성사되더라도 원래의 구상과는 동떨어진 형태로 변질될 공산이 커졌다.
많은 이용자에게 큰 편익을 줄 ‘카풀 공유제’는 택시 기사들의 집단적 반대에 부닥쳐 좌초했다. 카카오가 카풀 서비스를 포기했으면 원상 복구된 것인데도 문제가 불거진 기회를 이용해 자신들의 이익을 압박하고 있다. 정치권 일각에서도 그 부정적 파장은 고려하지 않은 채 오로지 표만 의식해 준공영제 같은 제안에 호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을 뿐이다. 민주노총 주도의 ‘국회 포위’에 동참한 농민단체는 쌀값 인상을 요구한다. 쌀 시장을 개방하며 수입 쌀에 500%가 넘는 관세를 부과한 데서 알 수 있듯이 소비자들은 이미 국제가격의 6배를 지불하고 있다. 그런데도 소비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이익 챙기기에만 매달리고 있다.
이런 집단이기주의에 대해 정치권은 원칙 없이 오로지 자신들의 이익인 표만 고려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많은 경우 이들은 재정을 투입해 문제를 미봉하는 방식을 선택한다. 장기적인 재정 부담, 특히 미래세대에 대한 부담은 이들의 정치적 계산에서는 중요한 고려사항이 아니다. 쟁점 사안에 대해 세금을 투입하는 일은 혜택은 특정 집단에 집중시키면서 그 비용은 사회화하는 일인데, 숫자만 많지 조직되지 않은 납세자들은 정치적으로는 무시해도 되는 존재다.
이처럼 모든 집단이 공익은 고려하지 않은 채 집단의 특수한 이익만 추구한다면 그 나라는 어떻게 될까? 《국가의 흥망》이란 책에서 맨슈어 올슨은 통계적 분석을 통해 집단들의 ‘분배투쟁’이 심해지는 만큼 한 국가의 성장률은 둔화한다고 밝히고 있다. 한 해를 마감하며 우리 사회에 만연한 무도덕적 집단주의가 우리나라를 쇠퇴의 길로 내몰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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