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경갑 기자 ] 조선시대 ‘진경산수의 대가’ 겸재 정선(1676~1759)은 두 차례 금강산을 여행하며 수많은 명작을 쏟아냈다. 36세 때 처음 금강산을 찾아 ‘신묘년 풍악도첩’을 남겼고 72세에 다시 노년의 무르익은 필치로 그곳의 진면목을 잡아내 화첩 ‘해악전신첩’(보물 1949호)에 담았다. 총 38첩으로 구성된 ‘해악전신첩’에는 금강산 비경 21폭이 실려 있고 그림마다 김창흡과 이병연의 시가 수록돼 있다.
‘문암관 일출’은 ‘해악전신첩’에 실린 진경산수화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강원 고성군 삼일포 문암에서 바라본 해돋이 광경을 손에 잡힐 듯 묘사했다. 문암(門巖)은 삼일포 몽천암 동쪽의 작은 언덕에 우뚝 서 있는 북고봉이라는 큰 바윗덩어리를 일컫는다. 두 개의 문짝 바위가 깎아지른 듯 서 있고 한 개의 너럭바위가 그 위를 덮고 있어 ‘문암’이라 불렸다.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부감법(俯瞰法)으로 묘사한 이 작품에는 머리를 내미는 붉은 해가 앙증맞게 그려져 있다. 삼일포에 뜨는 해의 밑동을 살짝 가려 ‘비상과 숨김’의 미의식을 동시에 응축해냈다. 복잡한 바위 풍경을 극도로 간략하게 축약해 장쾌한 비경의 느낌을 극대화했다. 또 거대한 돌기둥을 도끼로 바위를 힘차게 내리친 부벽준(斧劈)의 필법으로 묘사해 새벽 일출의 기상을 돋보이게 했다. 잔물결 이는 수평선과 붉은 해가 선율처럼 변주되며 묘한 울림을 자아낸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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